병원 비급여 진료상품, 얼마를 받아야 좋을까
배지수의 병원 경영
"한 벤처회사에서 한국에서 미국까지 10분만에 이동할 수 있는 운송수단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을 항공기 회사에 팔려고 합니다. 이 기술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MBA 졸업반 시절 컨설팅 회사 입사 인터뷰에서 받은 문제입니다. 잠시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항공사 입장에서 어느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할 것인가 고려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10분만에 이동할 수 있다니, 고가의 상품으로 기획해도 될 듯 합니다. 현재 인천에서 LA까지 일등석 항공권을 검색해 보니 500~700만원 정도 합니다. 이 가격의 두 배를 받으면 될까요? 10시간을 10분으로 줄이는 시간 단축의 가치는 고객에게 얼마나 될까요?
항공사는 일반적으로 고객을 크게 이코노미 고객과 비즈니스 고객으로 분류합니다. 이코노미 고객은 보통 자기 돈 내고 여행을 가는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비즈니스 고객은 회사의 비용으로 비즈니스 출장을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터뷰에서 제시 된 상품의 경우, 일등석보다 더 고급스러운 상품입니다. 지루한 10여 시간을 10분으로 단축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등석 타는 사람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사람들이 이용할 듯 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최고위급 임원을 출장 보낼 때, 비즈니스 석이나 일등석 대신 10분만에 가는 새로운 운송수단을 태워주었을 때 얻는 이익은 얼마나 될 것인지, 약 10시간 여유의 가치는 얼마인지를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최고위급 임원들이 시간당 벌어들이는 회사의 수익을 가지고 계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비행 시간을 단축시켜 줌으로써 이들이 회사에 돈을 더 벌어줄 수 있으므로 회사는 그 돈을 기꺼이 부담하려고 할 것입니다. 연봉이 10억인 임원의 하루 인건비는 연봉을 일년 중 주말을 뺀 260일로 나눠서 구할 수 있습니다(10억/260=약 380만원). 하루에 10시간 정도 일한다고 가정하면 한 시간에 38만원 정도 될 듯 합니다.
그런데 이는 임원 측면에서 본 가치입니다. 회사 입장에서의 가치는 이 임원이 일년에 100억을 벌어들인다고 가정한다면, 시간당 가치는 380만원 정도로 올라갑니다. 회사의 입장에서 최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시간당 380만원이라고 하고, 10시간을 벌어주니 3800만원 정도가 회사가 얻는 이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필자는 이런 식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접근해 나가면서 문제를 풀어나갔습니다.
위와 같은 경험을 먼저 언급한 이유는 가격 결정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가격 결정 방식에는 크게 3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1. 고객가치 기반 가격 결정 (Customer Value Based Pricing)
위의 경우처럼 고객이 이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얻는 가치를 구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을 고객 가치 기반 가격 결정(Customer Value Based Pricing) 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고객 가치 기반 가격 결정은 가격의 최대값에 해당됩니다. 고객 가치 이상으로 가격을 책정한다면 고객은 이 상품을 살 수가 없습니다. 얻는 가치보다 나가는 비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고객 가치는 금전적인 가치일 수도 있고, 고객이 느끼는 행복감, 자랑할만한 마음 같은 비금전적 가치일 수도 있습니다.
해마다 세계적인 회사들의 브랜드 가치 순위가 발표되곤 합니다. 이런 브랜드 가치는 어떻게 산출할까 궁금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논리는 모르겠지만 아마 아래의 수식으로 가치평가를 했을 듯 합니다.
[브랜드의 가치 = 브랜드를 붙이고 팔 수 있는 수익 총액 - 브랜드 없이 팔 수 있는 수익 총액]
이런 브랜드 가치는 고객 가치를 기반으로 산출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생수 중 국내 브랜드는 오백원에 팔리는데, 수입 생수가 이천원에 팔리는 것 역시 고객 가치를 기반으로 책정된 예입니다. 똑같은 물인데 고객 가치가 무슨 차이가 나느냐고요? 고객 가치는 상품 본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고객 체험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수입 생수를 마시는 사람은 ‘유럽인이 된 듯한 느낌’을 가진다던가, "자신이 돈 많다는 것을 과시"한다는 등의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항암제가 수천 만원인 반면, 고혈압 약이 몇 백 원 수준으로 가격 책정이 되어 있는 것은 제조원가의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고객이 느끼는 가치의 차이 때문이고, 이 때문에 고객의 지불 의사가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고객 가치를 기반으로 가격을 책정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2. 원가 기반 가격 결정 (Cost Based Pricing)
2003년 경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아파트 원가 공개제도가 시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 논란 끝에 결국 시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시행되지 못한 이유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가격 규제나 통제는 부적절하다는 점, 이로 인해 신규주택의 공급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 값싼 자재로 인해 아파트의 품질이 떨어지는 점 등이 지적되었습니다. 원가를 공개한다면 기업 입장에서 가격을 공개된 원가에서 10% 이상 높게 책정할 수 없게 됩니다. 이는 원가를 기반으로 가격 결정을 하겠다는 대표적 시도입니다.
보험 회사에서 보험상품의 가격을 정할 때도 원가를 기반으로 합니다. 각 보험 상품은 그 나름대로의 비용 구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암 보험을 생각해 봅시다. 상품을 팔면, 영업사원에게 인센티브를 주어야 합니다. 보험회사 건물 속에 있는 수많은 직원들 월급도 주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오버헤드 비용도 나갑니다. 이를 운영 비용이라고 합니다.
보험 상품의 목적에 맞게 가입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비용도 있습니다. 암 보험의 경우 보험 가입자 중 암이 발생할 경우 치료비를 지급해야 합니다. 이 비용은 ‘암 발생율 x 암 발생시 지급하는 금액’ 이 됩니다. 이를 사고 비용이라고 합니다. 보험회사는 암 발생률만으로 보험료를 산출하지 않습니다. 보험료를 미리 받기 때문에 여기에 발생하는 이자도 계산을 합니다. 또 돈을 받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가 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산 운용을 합니다. 이 때 비용이 들어갑니다. 이를 재무 비용이라고 합니다.
보험회사는 이렇게 운용비용, 사고비용, 재무비용을 합한 비용의 총합을 구한 다음 거기에 이익율을 더해서 금융감독원에 신고를 하고 상품 가격을 허가 받습니다. 병원의 의료보험수가는 대표적인 원가 기반 가격 결정의 예입니다. 문제는 현재 수가는 원가의 70% 에 맞춰져 있다는 점입니다. 원가보다 적게 수가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 좀 황당한 상황입니다.
일반적으로 원가 기반 가격 결정은 가격의 최소값에 해당됩니다. 원가 이하로 가격이 책정되면 기업은 이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없습니다. 손해를 보면서 사업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병원의 경우 원가 이하의 가격을 받기 때문에, 의료의 왜곡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리나라 의료시장이 미용 시장, 비급여 시장이 기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3. 경쟁 기반 가격 결정 (Market Pricing)
가격 결정에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경쟁자의 가격 결정입니다. 내가 고객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해서 높게 책정했는데, 후발 주자가 들어와서 가격을 내려 버리면 나 역시 따라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경쟁 기반 가격 결정의 대표적인 사례는 경매입니다. 경매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한가지는 가치가 정해진 제품의 경매이고, 또 한가지는 가치가 정해지지 않은 제품의 경매입니다. 예를 들어 동해안에 유전이 발견되었다고 합시다. 정부는 시추권을 경매를 붙입니다. 이 경우는 가치 평가가 가능한 경매입니다. 비록 유전에 원유가 얼마나 들어있는지는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비록 알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원유가 들어있는 양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경매에 참여하는 회사들 입장에서는 원유가 과연 얼마나 들어있을까 모르는 상황에서 경매를 하게 됩니다. 경매는 가격을 높게 부르는 쪽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치(원유량)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격을 높게 부를수록 이익이 줄어들게 됩니다. 자칫 하다가는 실제 가치보다 높게 가격을 부를 경우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를 승자의 저주 (Winner's curse) 라고 합니다.
미술품을 볼까요? 김환기 화백의 ‘새와 달’ 이라는 그림은 2009년 K-옥션 경매에서 시작 가격 4억으로 나왔습니다. 경매가 진행되면서 과열이 되었는지, 7억에 낙찰되었습니다. 이 경우 너무 비싸게 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지금은 ‘2009년 K-옥션 경매에서 7억에 낙찰된 그림’이라는 명성과 함께, 김환기 화백의 그림은 7억짜리’라고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치평가가 어려운 상품의 경우 승자의 저주가 상대적으로 적용이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고객가치기반으로 결정된 가격은 최대치를 형성합니다. 원가 기반으로 결정된 가격은 최소치를 형성합니다. 만일 원가 기반 결정 가격이 고객 가치 기반 가격보다 높다면, 이는 상품성이 없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경쟁 기반으로 결정된 가격은 그 중간 어디에 위치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가격 결정을 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비급여 상품이 유일합니다. 이 때 그냥 비싸게 받는 것이 좋은 것도 아니고, 싸게 받아서 고객 수를 늘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위의 논리를 생각해 보면서, 여러 가지를 고민하면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원가 이하의 수가 체계는 하루 빨리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