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여자가... 두 여인의 혼곤한 잠
●배정원의 Sex in Art (1) / 동성애
‘잠(The Sleep)’은 프랑스의 사실주의 작가 구스타프 쿠르베의 작품이다. 아름다운 두 여자가 나체로 얽혀 혼곤하게 잠에 빠진 그림이다. 금발의 한 여자는 다른 여자의 탐스러운 가슴에 얼굴을 댄 채 잠들어 있고, 그녀의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은 자신의 몸에 가로 걸쳐진 상대의 다리에 놓여있다. 시트가 흐트러진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두 사람은 멋진 섹스를 즐긴 후 잠에 곯아떨어진 듯하다. 이 작품은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동성애를 표현한 많지 않은 그림 중 백미로 꼽힌다.
그러나 현실 속에선 ‘잠’처럼 이렇게 행복한 동성애자를 보기가 쉽지 않다. 최근 이슬람의 극단적 테러조직인 IS(이슬람 국가) 군인들이 젊은 남자 동성애자의 눈을 가리고 손을 묶은 뒤 건물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처형한 동영상이 나돌아 인류를 경악케 했다. 지금도 이란, 나이지리아, 수단 등 이슬람국가에서 동성애자는 발각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누구에게 사랑과 성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가를 성적 지향성(sexual orientation)이라고 한다. 이런 성적 지향성에는 무성애,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의 유형이 있다. 이중 동성애는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에선 나이든 남자와 어린 남자의 성교가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여졌다. 남자들처럼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여자들끼리의 동성애도 있었다. 당대 여류시인이었던 사포도 소녀들을 사랑했는데, 이 때문에 그녀의 고향이었던 레스보스 섬이 ‘레즈비언’이란 말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중세엔 유럽에서 동성애가 크게 유행했으며 동성애자에 대한 탄압도 혹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 화랑과 왕과의 관계에서 동성애를 엿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서는 동성애가 큰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고, 조선왕조 세종대왕 때도 며느리인 세자빈과 그를 모시는 나인, 혹은 시중의 과부와 하녀의 동성애로 여론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동성애자들은 그들이 이성애자와 다르다는 이유로, 특히 그들이 소수인 탓에 억울한 대우를 받아왔다. 한때는 어릴 적 양육방법의 문제나 정신적 쇼크 때문에 생긴 정신병으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뇌 과학의 발달로 동성애가 선천적 경향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1991년 영국의 신경과학자 사이먼 리베이는 게이와 이성애 남자의 뇌구조에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 뇌 시상하부의 간핵 네 개 중 세 번째 것의 크기가 이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데, 이성애 남자가 게이보다 두 배 이상 크다는 것이다. 게이와 여자 사이엔 차이가 없었다.
과학의 영역에서 동성애자는 흑인종, 황인종, 백인종 같이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유전적인 차이, 곧 운명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타고난 운명에 책임질 수는 없으니 이들에 대한 시선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킨제이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전체인구의 4~10%정도가 동성애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숫자가 적다는 것이 차별의 이유가 돼선 안 된다. 만약 이성애자가 그들보다 적다면 오히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가 남자랑 섹스하는 것이 변태로 불렸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에게 결혼을 하지 말라거나, 아이의 입양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어이없는 일이다. 최근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은 서서히 줄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편견이 동성애자들을 울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 동성애자는 여자처럼, 여성 동성애자는 선머슴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부터가 편견이다. 동성애자이면서 의사로, 교수로, 혹은 회사의 최고경영자로 잘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이 커밍아웃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동성애자들의 섹스가 이성애자보다 문란하다는 인식은 어떻게 봐야 할까? 실제로 남자동성애자들은 파트너를 자주 바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두 사람을 한 울타리에 묶어주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성애자들도 동거 커플이 부부보다 쉽게 헤어지지 않는가? 사랑의 간절함은 이성이냐 동성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 개인의 성향이 어떠한가에 좌우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동성애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은 그들이 마치 전염병처럼 동성애를 전염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애적 사고를 가진 청소년이나 어른이 동성애로 바뀌는 일은 없으며 동성애자가 치료돼 이성애자로 돌아오기는 더더욱 어렵다. 어떤 치료나 상담을 통해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로 취향이 변했다는 연구 자료를 읽은 적이 없다.
예전에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이 심할 때, 어른들은 매를 들어서라도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교정시켰다. 그러나 지금 왼손잡이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 심지어 왼손잡이가 여러 면에서 오른손잡이보다 나은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은 왼손잡이를 굳이 오른손잡이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나는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도 이처럼 자연스럽게 바뀌었으면 바란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청교도에 근간을 두어서 그런지 매우 보수적인 나라다. 정치가의 경우 동성애에 대한 태도가 선거의 당락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몇 해 전 캘리포니아 주에서 동성애자의 결혼을 인정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누구보다 당황한 것은 목회자들이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신부, 목사, 스님, 랍비 등의 성직자나 정부가 인정한 공무원만 주례를 설 수 있다. 이들이 결혼문서에 사인을 해야 혼인이 인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성직자들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죄라고 말해왔다. 어느 기자가 한 신부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냐고, 동성애자의 결혼에도 주례를 서실 거냐고... 신부는 고민 끝에 대답했다.
“글쎄올시다. 그런데 내가 지금껏 사람 뿐 아니라 강아지에게도 축복기도를 하고, 새 승용차에도 축복을 하고, 하물며 포도주스에도 복을 빌어주었는데, 동성애자라고 해서 축복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좋아하실지...”
하느님이 동성애를 죄라고 여겼다면 동성애자인 천재를 이 땅에 내려 보냈을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란시스 베이컨, 오스카 와일드, 랭보, 마르셀 프루스트, 차이코프스키..., 이들은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한 동성애자들이다.
글 : 배정원
(성전문가, 애정생활 코치,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