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의사는 환자에 여전히 ‘갑’이어야 하나?

왜 의사는 환자에 여전히 ‘갑’이어야 하나?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대한민국 ‘갑을’ 논쟁이 사회 연초부터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갑과 을의 관계는 의료계에도 존재한다.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의사=갑, 환자=을이라는 주종관계다. 물론 의료진 중에는 환자가 ‘갑’이라는 생각으로 낮은 자세에서 성실히 치료에 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위치에서 따지자면 환자는 ‘갑’이 아닌 ‘을’임을 암시하는 접점들이 병원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례로 병원에서 환자가 진료받을 때 앉는 의자를 살펴보자. 대부분 환자의 의자는 등받이가 없고 바퀴 달린 간이 형태가 많다. 간혹 유아나 어르신이 앉기에 조금 불안한 점도 있어 보호자나 진료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 반면에 의사가 앉는 의자는 어떤가? 장시간의 업무시간을 고려해 편안한 등받이에 안정적인 모습이다.

단순히 의사와 환자의 의자 특성을 놓고 좋고 나쁨을 가늠해 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시간 치료를 받고 떠나는 환자의 의자가 굳이 의사의 의자만큼이나 크고 편안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진료의 편리성이 아닌 환자의 안락함이라는 관점에서 환자가 느끼는 불편을 생각해 보면 그간 놓치고 있었던 서비스 콘텐트를 찾아낼 수 있다. 의자 하나로 환자의 불편함이 무엇인지 눈높이에 맞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의 눈높이에 맞는 의료 서비스, 이는 매우 기본이긴 하지만 쉽게 할 수 있는 서비스는 아니다. 어쩌면 ‘의사=갑’이라는 잠재적 권위 심리에 가리워져 드러나기 쉽지 않은 서비스일지도 모른다. 환자의 눈높이에 따른 다는 것은 스스로 갑의 권위에서 내려오는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진의 서비스 마인드는 곧 모든 직원의 마인드로 연결되며, 나아가 불특정 다수의 ‘을’들로부터 삽시간에 서비스 평가가 이뤄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고객인 환자의 만족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병원 직원 전체의 서비스 프로세스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고정된 장소에서 안내된 환자를 진료하는 패턴을 갖는다. 진료공간은 의사의 진료실(Doctor’s Office)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이는 의사의 소모적 움직임이 덜해 빠른 시간 내 환자를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세스에서는 몸이 불편한 환자가 직접 의사가 있는 곳으로 움직여야 한다. 진료를 받기 위해 환자가 진료실로 찾아가야 하고 주사를 맞기 위해 주사실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당연한 치료과정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역으로 보면 왜 아픈 환자가 움직여야 하는 것인가에 의문을 가질 필요는 있다. 환자를 ‘을’로 여길 수 밖에 없는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의료분야가 서비스업으로 뿌리깊게 자리잡은 미국의 경우,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면 진료보조자가 개별 대기실(Patient Room)로 환자를 안내하고 진료받도록 준비한다. 그 다음 단계에서 의사는 환자가 대기한 환자 방으로 직접 찾아가 상담하고 진료를 한다. 치료처방에 따른 간호서비스도 여기에서 이뤄진다. 별도의 장비를 요하는 검사가 없다면 환자는 앉은 자리에서 모든 과정을 마친 다음에야 최종적으로 수납을 한다. 수납을 여러 번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는 점과 환자를 위해 의료진이 움직여 준다는 점은 우리에게 낯선 모습이지만 서비스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료진에 맞춰 환자가 움직이는 우리나라에 반해 환자를 위해 의료진이 움직이는 것이다. 병원에서 환자를 ‘갑’의 위치에 놓고 서비스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과 같은 물리적 진료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환자를 중심에 두고 다시 말해 ‘갑’으로 두고 이뤄지는 사고의 차이가 프로세스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점은 깊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의료서비스는 제한된 고객 수를 놓고 다수의 공급자가 경쟁하는 자본주의식 논리로 운영된다. 경쟁력을 갖추는 병원이 구매력을 갖는다는 뜻이다.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환자가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생각을 열어두고 철저히 맞춰가는 서비스의 마인드야 말로 서비스종사자의 기본적인 자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 의자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병원 진료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자의 의자는 의사의 편의에 맞춰져 있는 형태다. 의사가 환자에 다가가기 쉽게, 의사가 환자를 이리저리 살펴 볼 수 있게, 단순하게 구성된 의자다. 의사의 등받이 의자와 환자의 간이 의자, 병원에서 갑과 을의 관계는 이 의자에서부터 드러난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환자의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 마인드를 꿈꾸는 의사라면 지금 당장 환자의 의자에 먼저 앉아볼 것을 권한다.

    코메디닷컴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2
    댓글 쓰기
    • 김*** 2021-05-27 20:48:08 삭제

      환자 등도 청진해야 하고 등을 만져봐야 할 때도 있는데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으면 어렵겠지요? 환자를 뒤로 돌려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는 고정형 의자에 앉으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불편하겠지요? 환자진찰을 위해 의자가 그런거지 그걸 갑을 관계라 생각하면 안되지요. 환자가 의사한테 오는건 잘 치료받기 위함이지 대접받기 위해서가 아니잖아요? 등받이가 있는 소파에서 편안하게 대화만 나누는 것보다 잠시 불편한 의자에서 이리저리 진찰을 당하는 편이 환자를 위해 좋다고 생각됩니다만... 저도 의사입니다.

      답글0
      공감/비공감 공감0 비공감0
    • 김*** 2021-05-27 20:45:52 삭제

      환자 등도 청진해야 하고 등을 만져봐야 할 때도 있는데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으면 어렵겠지요? 환자를 뒤로 돌려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는 고정형 의자에 앉으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불편하겠지요? 환자진찰을 위해 의자가 그런거지 그걸 갑을 관계라 생각하면 안되지요. 환자가 의사한테 오는건 잘 치료받기 위함이지 대접받기 위해서가 아니잖아요? 저도 의사입니다만 좀 이해가 안가는 글이네요

      답글0
      공감/비공감 공감0 비공감0

    함께 볼 만한 콘텐츠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