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제약업계 ‘합종연횡’ 활발
초한지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중국 전국시대에는 제후국들이 대륙의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였다. 가장 강성했던 진나라와 맞서기 위해 각국은 서로 동맹을 맺으면서도 진나라와 따로 동맹을 맺었다. 유명한 합종연횡이다. 역사적으로 정치적 합종연횡은 대개 파국으로 치닫거나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제약산업에서 합종연횡은 ‘따로 또 같이’ 뭉쳐 윈윈하는 일종의 승리방정식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제약사간 코마케팅 또는 코프로모션이 대표적이다.
마케팅에서는 한 제약사가 다른 제약사의 영업망이나 유통망을 빌려(코프로모션) 판매하거나, 양측이 같은 상품은 물론, 고객과 마케팅 채널도 공유하며 공동의 노력을 투입(코마케팅)하는 형태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업계에서는 개발사가 제품을 생산가로 판매사에 팔고, 판매사가 이 제품을 다른 제품명으로 허가받아 양측이 공동 판매하는 방식을 코마케팅이라 부른다. 이 때 개발사는 로열티를 따로 받는다. 코프로모션은 개발사의 제품을 판매사가 제품명 그대로 받아 양측이 공동 판매하고, 제품을 도입한 쪽은 판매 수수료만 챙기는 일종의 도매 방식이다. 보통 공동판매라는 측면에서 코마케팅과 코프로모션은 혼용된다.
새해 들어서도 제약업계에서는 이러한 공동판매가 활발하다. 관절소염진통제인 쎄레브렉스를 국내 출시한 화이자가 제일약품과 코프로모션을 맺었고, SGLT-2 억제제 계열의 당뇨병 신약인 슈글렛을 개발한 아스텔라스는 대웅과 손잡고 국내 런칭을 위한 심포지엄을 연초에 진행했다. 안국약품도 이탈리아 마스텔리사의 재생약물인 플라센텍스를 국산화한 파마리서치프로덕트의 리주비넥스를 국내 독점 공급하기로 했다.
이러한 공동판매는 대개 양사의 약점을 상호보완하기 위해 추진된다. 신약 개발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다국적사가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영업망과 유통망을 장악한 국내사와 손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한양행의 경우 김윤섭 사장 체제에서 최근 3년간 다국적사의 신약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지난해 연매출 1조원을 넘어서는 외형적 성장을 일궜다. 베링거인겔하임의 고혈압치료제 '트윈스타'와 당뇨병치료제 '트라젠타', 길리어드의 B형간염치료제 '비리어드'가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며 매출을 끌어올렸다.
블록버스터 약물을 보유한 다국적사들이 특허 만료를 앞두고 제네릭 출시에 대비해 시장 방어 차원에서 국내사와 협력하는 경우도 흔하다. 쎄레브렉스에 대한 화이자와 제일약품의 코프로모션이 여기에 해당된다. 국내 소염진통제 시장 1위를 점유하며 한해 6백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화이자의 쎄레브렉스는 오는 6월 특허만료를 앞두고 있어 제네릭 출시를 노리는 제약사들의 파상공세가 예고돼 있다.
다국적사와 국내사는 물론, 국내사끼리의 공동판매도 윈윈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영업력이 처지는 국내사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면 규모가 큰 국내사가 해당 제품의 판권을 사들여 코마케팅하는 방식이다. 지나 9일부터 해양바이오 기업인 파마리서치프로덕트의 리쥬비넥스를 프로모션하기 시작한 안국약품의 한 관계자는 “우리 회사가 로컬 영업망에 강점이 있고, 제품 특성상 리쥬비넥스에 대한 수요가 종합병원보다 의원급이 더 높다는 점을 감안해 코마케팅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자국 의약품으로 자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제약주권 차원에서 국내사들이 공동으로 신약개발에 나서 다국적사에 맞서는 파트너십도 태동하고 있다. CJ헬스케어와 대웅제약은 지난 12일 당뇨(메트포르민)와 이상지질혈증(아토바스타틴)을 동시에 치료하는 복합제에 대한 공동개발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 계약에 따르면 CJ헬스케어는 임상 1상과 제품 개발을, 대웅은 임상 3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CJ헬스케어와 대웅제약의 복합제 신약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블록버스터급 약물로 성장할 경우 국내에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여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CJ헬스케어는 “이중제어 방출 기술을 적용해 용법이 다른 두 성분이 체내에서 신속하고 지속적인 약효를 보이도록 개발할 것”이라며 “오는 2017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현재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