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글래스, 의료현장의 ‘핫 디바이스’ 될까

구글 글래스, 의료현장의 ‘핫 디바이스’ 될까

 

김치원의 ‘지금은 디지털헬스 시대’

건강 혹은 의료 분야는 모바일 기술의 발달로 큰 혁신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또한 건강 분야가 모바일에서 큰 사업 기회를 열 것이라 예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모바일 헬스와 관련된 새로운 장비,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면 의료 현장을 바꾸어 놓을 가능성에 대해서 흥분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2년 반 전에 처음으로 소개된 구글 글래스(Google Glass)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손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 시선과 디스플레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장점 때문에 웨어러블 분야의 차세대 아이템으로 각광 받았습니다. 비록 아직 정식으로 출시되지는 않았고, 의료용으로 개발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선도적인 의사들이 그 장점에 주목하면서 의료 현장에 접목하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수술 현장에서의 활용

(1) 수술 중 환자의 이상을 더 빨리 발견하고 수술에 더욱 집중할 수 있습니다.

보통 전신 마취 수술 중에는 마취과 의사가 환자의 생체 징후를 모니터링하고 관리합니다. 하지만, 수면 내시경 등 수면 상태에서 진행하는 시술의 경우에는 별도의 의료 인력이 환자의 생체 징후를 관리하지 못하고 시술자가 수시로 확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스탠포드 의과대학과 바이탈메디컬(VitalMedicals)이라는 앱 제조사에서 공동 연구를 실시한 결과 의사가 시술 도중에 구글 글래스를 사용하여 환자의 생체 징후 (Vital Sign: 혈압, 맥박, 산소 포화도 등)을 확인했더니 환자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발견하는 속도가 빨라졌고 생체 징후를 표시해주는 감시 장비를 덜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수술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 수술 중 CT, MRI 등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생체 징후뿐만 아니라 다양한 환자 관련 정보를 구글 글래스에 띄워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술 집도 의사는 수술 중 CT나 MRI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환자 옆을 잠시 떠나거나 고개를 돌려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 이미지를 확인합니다. 그런데 구글 글래스를 사용하면 수술 필드에 집중하면서도 환자에 대한 중요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디애나 대학 병원(Indiana University Health Methodist Hospital)의 폴 쇼텍 박사는 구글 글래스를 착용하고 수술을 진행하며, 그 내용을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미국 탈장 학회의 연차 총회 자리에 모인 600여명의 의사들에게 전송했습니다. 수술 중 음성 인식 기능을 이용하여 MRI와 엑스레이 사진을 구글 글래스로 불러와서 확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3) 수술 화면을 즉시 전송하여 교육과 협진이 가능해졌습니다.

구글 글래스를 통해서 외과의사가 보는 장면을 전송함으로써 레지던트 혹은 의과대학생을 교육하거나 동료 의사로부터 실시간으로 자문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의학 드라마를 보면 수술실 2층에 일종의 관람실이 있어서 의과대학생이나 레지던트들이 천재 외과의사의 수술 장면을 보면서 경탄하고 배우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관람실은 없으며 설사 있다고 해도 그렇게 먼 곳에서 수술 장면을 관찰하기는 힘듭니다. 또한, 수술 장에 들어간다고 해도 집도의사 뒤에서 혹은 옆에서 수술 장면을 제대로 보고 배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구글 글래스는 집도 의사가 보는 장면을 그대로 실시간 영상 전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한계를 극복 할 수 있습니다.

2. 응급 상황에서 활용

응급 상황에서 현장에 있는 응급 구조사가 낀 구글 글래스를 통해서 먼 거리에 있는 응급의학 전문의가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필요한 처치를 지시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메덱스(MedEx)라는 앰뷸런스 서비스 업체는 시카고에 있는 Advocate Illinois Masonic Medical Center와 파트너쉽을 맺고 병원에 있는 응급의학 전문의가 현장에 있는 응급 구조사의 구글 글래스를 통해서 전송되는 정보를 보고 적절한 처치를 지시하거나 조언하는 시범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명지병원이 응급 상황에서 구글 글래스를 사용하여 시연을 실시한 바 있습니다.

 

3. 원격 진료에 활용

프리스틴(Pristine)이라는 회사가 개발한 구글 글래스 실시간 영상 전송 기술을 이용해서 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에 대해 원거리에 있는 피부과 의사와 실시간으로 상의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런 정도라면 굳이 구글 글래스를 사용하지 않고 핸드폰 카메라만 사용해도 충분할 것 같기는 합니다.

4. 의무기록 전사 (EMR Dictation)

전자의무기록으로 인해서 외래 진료할 때 의사가 환자의 눈을 마주보는 시간보다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고 자판으로 정보를 입력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그메딕스(Augmedix)회사는 의사가 환자와 주고 받는 말과, 구글 글래스에 보이는 정보를 손쉽게 의무 기록으로 입력할 수 있는 앱을 개발했습니다. 디그니티헬스(Dignity Health)병원은 어그메딕스의 앱을 외래 진료에 활용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5. 진료 편의 증가

환자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스 이스라엘 병원은 구글 글래스를 통해서 응급실 환자 병실 바깥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 하면 그 환자에 대한 정보가 글래스에 뜨도록 하는 앱을 자체 개발했습니다. 새로운 환자들이 계속 들어오지만 사전 정보가 제한적인 응급실에서 담당 의사가 빠르게 환자를 파악하고 진료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3개월간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거쳤으며 응급실에서 진료하는 의사들은 원한다면 사용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의료현장에서 구글 글래스의 미래

구글 글래스가 상용화 되면 의료 현장에서의 미래는 어떨까요? 구글 글래스를 써보지 못한 필자로서는 편의성 등 구글 글래스의 장비로서의 특성을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국내 의료현실에 입각해 구글 글래스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누구의 돈으로 구입할 것인가: 의사 VS 병원 VS 보험자 VS 국가

구글 글래스는 의사가 자비로 구입해서 사용해야 할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구글 글래스가 병원 매출 혹은 이익을 높여줄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몇몇 선구적인 의사들이 구글 글래스가 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환자 안전과 관련된 것이 많으며 몇 가지는 의사의 업무 생산성과 관련돼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의료비 증가 추세에 부담을 느끼고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병원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이익을 높여주지 못하는 곳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투자비용이 많이 들면서도 의료적 가치를 확실하게 입증되지 못한 로봇 수술의 경우, 비싼 수술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병원들이 앞다투어 도입한 바 있습니다.

보험회사에서 구글 글래스의 가치를 인정하고 충분한 수가를 책정하거나 국가 차원에서 환자 안전을 위한 예산을 따로 배정하여 장비를 구매해주지 않는 이상, 병원들이 자체적으로 구글 글래스 도입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환자 안전을 중요시 하는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위해서 제한적으로 도입하거나 도입하는 척만하고 신문 방송에 실리는 효과만을 노리는 경우도 우려됩니다.

이는 암환자를 진료할 때 여러 진료과의 의사가 함께 진료하여 환자가 최적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하는 ‘다학제 진료’가 도입된 과정과 유사합니다. 다학제 진료는 2014년 8월부터 별도의 수가가 인정되었는데 그 이전까지는 병원들이 다학제 진료를 제공하지 않거나 제공한다고 해도 일부의 환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수가가 인정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 의사들이 자비로 구글 글래스를 구입할 것인가?

아직 구글 글래스는 정식으로 출시되지는 않았으며 2014년 4월에 판매되었을 때 그 가격이 $1,500로 책정됐습니다. 즉, 손쉽게 구입할 정도의 제품이 아닙니다. 이정도 가격의 제품을 개인적인 용도와 무관하게 병원에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비로 구입하는 의사 수는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이전에 PDA 폰이 출시되었을 때 이를 진료에 활용할 수 있었지만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일부 의사들을 제외하고는 자비로 사서 쓴 경우가 별로 없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구글 글래스의 의료계 적용 사례 가운데 의무기록 전사와 같이 의료진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 실제로 입증되고 생산성 향상 정도가 매우 뛰어나다면 구입을 고려하는 의료진들이 생겨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3. 의사들의 신기술 수용도가 일반인들보다 빠를 것인가?

한가지 더 생각 해보아야 할 것은 의사들이 최신 기술 도입에 익숙할 것 같지만 일반인들과 별 다를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개원 당시인 10여년 전에 직원들에게 PDA 폰을 지급하고 병원 EMR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실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상보다 적은 의료진들만이 PDA 폰을 사용했습니다. PDA폰이 지금의 스마트폰 보다 사용하기가 불편하다는 점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사용할만한 장비가 아니면 의사들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분명한 것은 스마트폰 처럼 일반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수용되어야 의사들도 스마트 글래스를 사게 되고 개인적으로 산 스마트 글래스를 병원에 가져와서 쓸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구글 글래스가 진료 현장을 혁신할 가능성이 자주 언급되는 것은 구글 글래스를 일반 대중이 바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고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틈새 시장이 의료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료분야, 특히 의사들의 구글 글래스 수용은 일반 대중과 같은 속도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방위 산업 혹은 일반 기업 분야 등에서 그 가치를 입증하고 성능을 개선한 다음에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게 되면, 의료 분야에서도 적극 활용하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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