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취임 뒤 실적 부진... 연임 뒤 대반전

대표 취임 뒤 실적 부진... 연임 뒤 대반전

 

제약 CEO 프리즘 / 유한양행 김윤섭 사장

국내 제약산업의 내수시장은 정체기를 맞고 있다. 복제약 위주로 시장은 포화되고, 다국적 제약사와의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약제비 절감을 위한 정부의 약가 인하 압력과 강력한 리베이트 규제, 예고된 허가특허연계제도 도입 등 국내외 여건도 녹록지 않다. 이때 내수를 통한 단기적 성과에 연연할지, 신약개발에 눈을 돌려 세계로 나아갈지는 최고경영자(CEO)의 마인드에 달려 있다. 지난해 실적을 통해 국내 제약사 CEO들의 새해 의지를 점검한다. [편집자주]

김윤섭 유한양행 사장은 반전 있는 인물이다. 공동대표로 취임 후 실적 부진을 겪다 단독대표로 연임에 성공한 뒤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를 걸어 지난해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유한양행이 지난 달 19일 금융감독원 공시자료를 통해 밝힌 총매출액은 1조1백억원. 연말까지 매출계획은 1조4백억원으로, 전년대비 11.6% 불어난 규모다.

김 사장의 전략적 선택이 주효했다. 다국적 제약사의 우수한 신약을 도입해 공동 판매하는 방식으로 매출의 저변을 넓힌 것이 들어맞았다. 지난 2010년 베링거인겔하임의 고혈압치료제인 ‘트윈스타’를 비롯해 2012년 이후 당뇨병치료제 ‘트라젠타’, 길리어드사이언스의 B형 간염치료제 ‘비리어드’, 화이자의 폐렴구균 백신 ‘프리베나’ 등을 속속 출시하면서 해외거래선과 라이선싱 계약에 주력했다.

전체 매출의 65%를 차지하는 전문의약품 가운데 비리어드와 트라젠타, 트윈스타 등 3개 도입 신약이 급성장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지난해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누적기준으로 비리어드가 649억원, 트라젠타 583억원, 트윈스타 581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비리어드는 전년 동기 대비 79.5%, 트라젠타는 45.9%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여기에 40년 가까이 유한양행에서 영업맨으로 잔뼈가 굵은 김 사장의 발로 뛰는 영업 전략이 더해져 시너지를 냈다는 것이 제약업계의 분석이다.

동부증권 정보라 애널리스트는 “2014년 11월 누적기준으로 유한양행의 처방액 증가율이 상위 25개사 중 가장 높은 20.7%를 기록했다”며 “추가로 당뇨신약인 ‘자디앙(SGLT-2 저해제)’을 도입해 올해 중반부터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어서 전문의약품 사업부는 도입신약으로 인해 꾸준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김 사장은 도입 신약의 공동 판매로 외형을 불리면서 원료의약품 수출에도 공을 들였다. 현재 유한양행은 계열사인 유한화학에서 생산된 항생제와 에이즈치료제, 당뇨병치료제, 소염효소제 등의 원료를 국내외에 공급하면서 다국적 제약사와 공동으로 신규원료를 개발 중이다.

특히 유한양행의 원료수출은 올해에도 시장의 기대치를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주력이던 에이즈와 항생제 원료가 성장정체기에 접어든 반면, 지난 2011년부터 임상용으로 수출하기 시작한 길리어드의 C형간염치료제 ‘하보니’ 원료의 매출이 지난해 670억원대로 급증했다. 전체 원료 수출을 통한 매출도 지난해 15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30% 성장했다.

아이엠투자증권 노경철 애널리스트는 “길리어드의 ‘하보니’가 지난 10월 미국 FDA로부터 제품허가를 받아 제품허가 제출용 원료 물량과 제품출시를 위한 상업적 원료 물량이 수출돼 유한양행의 매출도 크게 확대됐다”며 “유한양행이 원료를 공급하고 있는 또 다른 다국적 제약사의 C형간염치료제도 2015년 1분기 중 제품허가를 받을 전망이어서 C형간염치료제의 원료 수출은 올해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는 김 사장의 행보에 기대만큼 우려도 뒤따랐다. 외형을 불리면서도 연구개발비는 제자리걸음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시자료를 보면 매출 1위인 유한양행의 연구개발비는 매출액의 6%에 불과해 업계 10위권에도 명함을 못 내밀고 있다. 연구개발 실적도 지난 2007년 1월에 출시한 위궤양치료제인 ‘리바넥스’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이렇다보니 매출에 급급해 외국 의약품 도매상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유한양행의 판매대행을 통한 상품매출은 전체 매출의 약 70%에 이른다.

하지만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제약산업의 패러다임이 ‘열린 혁신’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협업과 상생을 통한 열린 혁신은 탄탄한 글로벌 파트너십이 근간이다. 김 사장이 코프로모션을 통해 구축한 신뢰와 글로벌 파트너십은 향후 연구개발과 해외진출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 1조원 달성이 갖는 상징성과 1조2천억원에 이르는 사내유보금, 안정적인 원료의약품 수출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유한양행이 오는 2016년까지 1조1천억원의 견고한 매출 실적을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는 3월 임기가 끝나는 김 사장은 유한양행이 연구개발에 주력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유한양행이 진행 중인 연구과제는 신약과 개량신약을 합해 모두 24종에 이른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얻은 고혈압과 고지혈증 복합신약인 듀오웰도 올해 발매될 예정이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도물질과 후보물질, 제제연구, 임상 등 연구과제의 폭이 넓어 연구개발비는 점차 확대되고, 신약 파이프라인도 확대될 전망이다. 김 사장은 지난 2일 시무식에서 “임직원이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한 해를 만들어 달라”며 미래사업 발굴육성과 시장지향 연구개발 등을 혁신과 가치창조를 위한 경영지표로 제시했다.

    배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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