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에서 난치병까지... 똥이 희망인 이유
●박용우의 착한세균 톺아보기(1)
더럽고 냄새나는 똥이 앞으로 난치병을 치료하는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 들어보셨나요?
건강한 사람의 장내세균을 질병을 가진 환자에게 이식해서 치료하는 대변 세균총 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약자로 FMT)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약 100조 마리의 세균이 살고 있습니다. 비강, 구강, 피부는 물론 여성 생식기 안에도 살고 있습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은 위장관, 특히 대장에 살고 있고 장내 세균 숫자는 우리 몸속 세포 수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장내세균을 제2의 장기라고 부르는 학자들도 있는데 과언이 아니란 생각입니다.
흔히 세균이라고 하면 염증을 일으키고 감염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장내세균은 인류 진화와 함께한 공생(共生)세균입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침략자들은 극소수인데다 그마저도 이런 공생세균에 의해 증식이 억제됩니다.
그렇다면 공생세균은 단순히 사람에게 서식지만 제공받아 살고있는 걸까요?
2006년, 장내세균이 비만을 결정할 수 있다는 연구논문이 ‘네이쳐’지에 실렸습니다. 제가 유산균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된 연구결과이기도 한데요,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의 장내 세균 분포가 다르며 뚱뚱한 사람이 체중감량을 하면 장내 세균도 마른 사람과 비슷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낸 겁니다. 또한 쥐 실험으로 무균생쥐에게 비만생쥐의 분변을 이식했더니 2주 만에 체지방이 47%가 증가한 결과를 토대로 장내세균과 비만의 연관성을 입증했습니다. 장내세균이 사람의 신진대사에도 영향을 준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마른 사람의 대변을 뚱뚱한 사람의 장에 이식하면 살이 빠질까요?
학자들은 대변 세균총 이식(FMT)이 비만, 당뇨병, 알레르기 질환, 암 등 다양한 질병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실용화 단계에 이르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아직까지 FMT는 장기간 항생제 투여로 인해 항생제가 듣지 않는 대장염 설사에 한해 건강한 사람의 분변을 이식하는 용도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항생제를 장기간 투여할 경우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Clostridium difficile)이라고 하는 세균이 증식하면서 이 균이 내는 독소 때문에 대장염이 생길 수 있는데 이 균은 웬만한 항생제에 거의 듣지 않습니다.
2013년, 저명한 의학논문지인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는 이 대장염 환자에게 FMT를 시행했을 때 전통적인 항생제치료보다 훨씬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고 발표했습니다. 16명 중 15명이 호전을 보였고 이 효과가 워낙 우수한 것으로 밝혀져 이 임상시험은 조기에 종료되었습니다.
클로스트리듐 대장염 치료는 FMT의 서막에 불과합니다.
장내세균이 우리 몸의 면역과 대사, 그리고 장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유산균 제품이 전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에서는 2007년부터 무려 1억 7500만 달러를 투자한 인간 미생물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를 시작했습니다. 공생세균들이 나라마다 인종마다 다른지 지도를 만들어보고 사람의 생명 유지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하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공생세균들은 유해한 세균이 들어왔을 때 사람의 면역세포에 신호를 보내 방어를 지원하도록 작동합니다. 박테리오신이라고 하는 천연 항생제를 분비해 유해균의 증식
을 막아줍니다. 또한 사람이 스스로 분해할 수 없는 식이섬유와 올리고당 등을 분해하여 단쇄지방산 같은 유익한 물질을 만듭니다. 소화가 잘 안되는 해조류 등의 소화를 돕고 심지어 단백질, 지방산을 분해해주거나 비타민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우리 몸이 완전한 무균상태에 있었던 유일한 시기는 엄마의 자궁 안에서 9개월을 보냈을 때입니다. 임신한 상태에서는 질내 유산균이 늘어납니다. 출산 때 산도를 따라 아기가 세상에 나오면서 엄마 몸의 유산균을 먹는 것이 공생세균과의 첫 접촉이 되는 것입니다. 출생을 시작으로 모유를 통해, 또 부모 형제자매와의 접촉을 통해, 음식물을 통해 새로운 균들이 계속 몸속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유익한 공생세균들에게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항생제의 노출이 바로 그것입니다. 항생제는 유해균만 선택적으로 죽이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항생제에 자주 노출될수록 공생세균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18세에 이르기 까지 10~20회 항생제에 노출된다고 합니다. 아이가 조금만 열이나고 감기증상을 보여도 병원에 데려가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여기에 위생수준이 좋아져 다양한 미생물에 노출될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면역시스템을 교육시킬 기회가 줄어든 것입니다.
현대인들에게 크게 증가하고 있는 알레르기질환, 자가면역성질환, 그리고 비만이나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의 원인 중 하나가 몸속 공생세균의 감소 때문이라면?
앞서 언급한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은 현재까지 나와있는 가장 강력한 항생제인 반코마이신에도 듣지않지만 공생세균이 늘어나면 대항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지금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 제제보다 세균의 종류도 훨씬 더 다양하고 숫자도 수조 마리 이상으로 더 많아야 합니다. FMT가 필요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에 대한 얘기들을 풀어가려 합니다. 그 첫 번째를 대변 이식에 관한 글로 시작한 이유가 뭘까요?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암과 혈관질환은 아직까지 생활습관을 바꾸는 기본이 바탕에 깔려있지 않으면 예방과 치료가 어렵습니다. 줄기세포에 로봇수술 까지 첨단의료기술의 가파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50여년 전부터 시행되어온 대변이식에 학자들이 다시 눈을 돌린다는 건 그만큼 질병치료에도 기본이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식물의 뿌리가 건강해야 줄기와 잎이 건강해지듯 장이 건강해야 몸전체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대변 이식이 새롭게 재조명받는 현상에서도 찾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