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환자 넘치는데 병원 경영이 어렵다?

대기 환자 넘치는데 병원 경영이 어렵다?

 

배지수의 병원 경영

한 소문난 음식점이 있습니다. 고객들은 음식점 앞에 30분 동안 줄 서서 대기하다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음식점의 내부를 보니, 빈 테이블이 듬성듬성 눈에 띕니다. 그림1 을 보니, 27개 테이블 중 10개가 비어 있습니다. 가동률이 62% (=17/27) 수준 밖에 안 되는 듯 합니다. 이 음식점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아마 대기고객을 빈 테이블로 안내하는 직원이 문제가 있을 듯 합니다. 그 직원은 ‘병목자원(Bottle Neck)’인 듯 합니다.

우리가 운전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길이 막힙니다. 30분 걸려서 겨우 1km 전진하는 지루한 시간을 견디다 보면 자동차 사고가 나 있는 지점을 보게 됩니다. 그 지점을 통과하고 나면 다시 차는 쌩쌩 달리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한마디 합니다. "경찰은 뭐하고 있어. 사고 차 빨리 빼 줘야지"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병목을 해결해야지" 하는 말과 같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병목 현상’이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합니다. 일반적으로 길이 좁아지는 부분을 병목(Bottle Neck)이라고 합니다. 병목 지점의 특성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길이 좁아지는 부분이기도 하고, 속도가 늦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MBA 시절, 오퍼레이션 이라는 과목 시간에 [더 골The Goal] 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약이론 TOC (Theory of Constraint)을 쉽게 설명한 명서입니다.

주인공 알렉스 로고는 한 공장의 공장장입니다. 그의 공장은 만성적으로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날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공장을 폐쇄한다는 본사의 통고를 받았습니다. 그 동안 공장의 기계들을 효율성(단위시간당 처리속도)를 높은 기기로 교체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해 왔었는데 그 공장의 수익성은 올라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때 대학시절 은사인 요나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요나 교수는 공장을 방문해 보고, 재고가 많이 쌓여있는 프로세스의 한 부분을 발견합니다. 그 프로세스를 담당하는 기계는 NCX-10이라는 최신 로봇입니다. 기존에 구식 기계가 있었는데 생산성이 떨어져 최근에 NCX-10로 대치하였고, 이로 인해 그 프로세스의 생산성이 36% 향상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요나 교수는 물어봅니다.

요나교수: 36%라... 놀라운 수치군. 그렇다면 자네 회사는 로봇을 설치함으로써 36%의 이윤을 더 얻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정말 그런가?

알렉스 공장장: 글쎄요. 손익계산은 현실과 많이 다르죠. 현장에서 실제로 수익을 내고 있는 부분은 일부에 지나지 않거든요.

요나 교수: 그렇다면 실제로는 생산성이 증가된 것이 아니군.

알렉스와 요나교수는 공장의 여러 프로세스 중, NCX-10 이 최신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병목 자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NCX-10 은 여러 기계 중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기계임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기계이지만, 그 프로세스 앞에 재고가 쌓여있는 것을 보니 병목인 것입니다.

 

요나 교수는 오래된 구식 기계들을 다시 꺼내어 NCX-10 옆에 추가로 배치하도록 합니다.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 기계만의 처리속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단계의 처리속도를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처리속도가 늦은 기계라도 병렬로 배치해서 그 프로세스 자체의 처리속도를 높이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부분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참 쉬운 얘기입니다. 이렇게 못하고 있다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실제 병원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10여년 된 소아정신과를 인수해서 경영한 적이 있습니다. 소아정신과는 환자가 내원해서 치료받는 경로가 다음과 같습니다.

홍보 노출 => 전화 예약 => 대기 => 의사 초진 => 진단을 위한 심리검사 => 의사와 결과상담 => 치료

 

소아정신과의 수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보면서 발생하는 진료비 수입 (급여)과 치료실에서 놀이치료, 학습치료, 사회성치료 등이 이루어지면서 발생하는 수입 (비급여) 입니다. 10년 정도 된 그 병원은 두 가지 특성이 있었습니다.

1. 재진 환자가 많다. => 진료비 (급여) 수입이 많다.

10년된 병원이다 보니 병원에 다닌 지 3~5년 정도된 재진 환자가 많았습니다. 오래된 재진 환자들은 치료실 이용은 잘 안하고, 의사를 만나 약을 받아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료비 수입만 발생하는 셈입니다. 병원에 다닌 지 3~5년 정도 되었으니 매번 방문할 때마다 약 처방이 바뀌지 않고 그냥 리필만 하는 안정된 환자들이었습니다.

2. 치료실 가동률은 60% 정도밖에 안 된다. => 치료비 (비급여) 수입은 적다.

그 병원은 치료실 가동률이 60% 정도로 잘 운영되지 않은 병원이었습니다. (그림4에서 치료실 중 회색으로 표시된 치료실이 빈 치료실입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치료실의 가동률을 올리는 것입니다. 치료실의 가동률을 올리기 위해 처음 제가 생각한 액션은 환자가 적으니 더 많이 오도록 해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케팅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홈페이지를 좀 더 내용이 알차고 세련되게 개선하고, 네이버 광고비 예산을 올리고, 인근 지역 신문에 광고를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답은 대기시간에 있었습니다. 초진 환자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 의사를 만나기까지 2주 정도 대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초진을 한 다음 임상 심리사를 만나 심리검사를 받고 다시 의사가 결과상담을 하는 시간까지 추가로 2주일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결국 치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한달 가까이 대기시간이 걸리는 셈이었습니다.

이 상황은 마치 음식점이 내부는 비어있는데 밖에는 대기 고객들이 줄을 서 있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의사의 진료와 임상심리사의 검사가 병목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환자를 더 오게 하려고 마케팅 비용을 추가로 투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현재 오고 있는 환자들을 더 빨리 진행시키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의사의 진료와 임상심리사의 심리검사로 형성되어 있는 병목을 풀어주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와 임상 심리사를 추가로 고용해야 할 것입니다. 임상 심리사는 한 명 더 고용하는 것으로 병목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의사를 한 명 더 고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의사의 진료 상황을 가만히 보니, 재진 환자가 너무 많아 신환을 볼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오래된 병원이다 보니, 병원에 다닌 지 수년 된 환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처방 변화 없이 똑같은 약만 받아가는 분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에게는 2~3개월치 약을 처방해 주어도 큰 무리가 없지만, 기존에는 2주~1개월씩 약을 처방해 주어 자주 방문하게 해서 진료비 수입을 올리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필자는 처방 기간을 늘려 재진을 과감하게 줄여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진료비 수입이 줄어드는 위험이 있었지만, 대신 신환을 많이 받아서 치료비 수입을 늘리는 것이 더 큰 이익이라 판단했습니다. 또한 약을 계속 받아가는 환자들도 병원을 자주 방문하는 것 보다 2~3개월에 한번씩 방문하도록 하니 더 좋아했습니다. 마치 원숭이가 항아리 속에서 콩을 꺼내야 할 때 너무 많은 콩을 쥐면 손을 뺄 수 없으니, 콩을 좀 놓아서 콩을 빼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재진 환자 중 병원에 방문한 지 2년 이상 된 환자들에게는 그냥 똑같은 약을 주기적으로 처방하는 것이므로, 기존에 한 달에 한번씩 오는 환자들을 2,3개월 분 약을 처방해서 재진 내원 수를 줄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신환을 더 볼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케팅 비용을 추가로 들이지 않고 병원의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병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는 프로세스를 일렬로 나열해 보고, 그 중에 병목을 해결해 주면 효율성이 올라갑니다. 병목을 찾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어떤 프로세스 앞에 대기시간이 가장 긴 시간이 병목입니다. 그 단계를 해결해주면 병목은 해결됩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병목은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한 단계를 해결해 주면 다른 단계에서 병목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한 단계의 병목을 해결했다고 마음을 놓지 말고, 지속적으로 대기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부분을 꾸준히 모니터링 하면서 해결해 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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