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해진 환자들...의사는 좀 더 솔직해지라”

“똑똑해진 환자들...의사는 좀 더 솔직해지라”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며칠 전 주부 김은미(34)씨는 7살 아들의 감기로 소아과를 찾았다. 의사는 열을 동반한 단순감기라며 약을 처방했고 3일 뒤 다시 내원할 것을 권유했다. 김씨는 아이에게 약을 먹여도 호전이 없고 급기야 아이 얼굴에 울긋불긋한 발진까지 생겨 불안한 마음에 다시 소아과를 찾았다. 의사는 단순감기가 아닌 성홍열인 것 같다며 항생제를 다시 처방해 주었다. 김씨는 감기가 아니라는 말에 놀라 성홍열이 왜 감기로 오진됐는지 그 이유를 의사에게 물었다. 김씨의 질문에 의사는 말끝을 흐리며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김씨를 안심시켰다.

김씨는 의사의 설명이 석연치 않아 성홍열과 관련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성홍열이 감기로 진단받을 수 있다는 정보에 오진의 가능성을 이해했다. 그러나 말끝을 흐렸던 의사의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의사가 오진임을 인정하고 조금 더 자세한 치료계획을 말해 주었다면 보호자로부터 신임을 얻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증상에 근거한 진단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설명을 의사가 보호자에게 충분히 제공한다면, 의사와 환자 관계는 한층 신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가 호소하는 병적 징후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단을 내린다. 여기에 추후 발생될 위험 신호를 감지하기 위해 환자에게 증상의 변화나 호전에 관한 세심한 관찰을 당부한다. 이처럼 의사의 주의 관찰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진단을 잘 못 내리게 되면 환자는 병을 오래 앓거나 최악의 경우 치료시기를 놓쳐 생명을 잃기도 한다. 그렇기에 의사의 진단과 치료는 최악의 결과를 염두에 두고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진료하는 의사도 진료받는 환자도 알고 있는 명백한 원리원칙이다. 귀중한 생명을 담보로 장사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의사는 진단을 내릴 때 자신의 임상경험에도 비추어 환자의 상태를 가늠해 본다. 이렇게 아무리 신중한 진료를 한다고 해도 누구나 진단에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문제는 환자에게 어떻게 이해시키며 양해를 구하는 가에 있다. 환자는 의사가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 주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의사가 오진을 의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환자는 알기 때문이다. 다만 진단명에 이르는 과정까지의 인과관계를 좀더 설명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클 것이다.

요즘은 일반인도 검색어 하나로 풍부한 의학지식을 접할 수 있다. 증상 하나만 검색해도 진단을 내릴 만큼 의학정보들이 넘쳐나다 보니 의사의 오진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환자는 오진을 밝힐 수 있는 만큼의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 돼 있다는 사실을 의사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의사는 진료 중에 자신의 오판에서 비롯된 오진이라는 사실을 환자가 눈치채지 못하길 바란다. 의사들은 오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전문성을 빌미로 자신의 실수를 얼버무린다. 환자가 모를 것이라는 착각을 한 채 말이다.

실제로 의사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는 곧 의료사고나 의료과오를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오진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의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며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의심받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인 문제가 오히려 환자와 소통을 막는 장벽이 되는 셈이다.

어느 새 ‘사과’는 의료계의 금기어가 됐고, 잘잘못을 법정에서 가릴지언정 오진에 대한 사과는 절대적으로 피하는 분위기다. 우리 의료계는 도의적인 사과 자체도 어려워 하는 분위기가 있다. 실수에 대한 사과가 아닌 상황 자체가 발생한 것에 대한 유감의 표현 조차도 어려운 게 의사들의 현주소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생명을 허투루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의사를 대한다. 의사가 최선을 다해 진료해 주고 치료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환자도 마음이 편하다. 의료사고가 아닌 이상 의사의 사소한 오진에 환자는 너그럽게 반응할 것이다. 오진으로 진단명이 처음과 달라질 지라도 환자를 존중하는 의사의 솔직하고 진심 어린 태도만 있다면 환자는 치료에 대한 궤도수정을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다. 더불어 의사를 신뢰하는 마음까지 커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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