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진료, 대한민국이 하면 될 것 같은가?
김치원의 ‘지금은 디지털헬스 시대’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에서 원격진료를 실시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원격진료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입니다. 미국에서는 예산 절감 법안과 함께 원격진료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죠. 대한민국이 직면한 원격의료의 문제와는 다르게 미국은 어떻게 해서 수년간 원격진료의 시행이 무난히 이뤄질 수 있었을까요? 워낙 땅덩어리가 커서 의료의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일까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비용 절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원격 진료가 확산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미국에서 원격진료가 본격적으로 도입될 수 있었던 계기는1997년 균형예산법(Balanced Budget Act, BBA)가 통과되면서부터 입니다. 이 때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국가 의료 보험 격인 메디케어(Medicare)에서 원격진료(Telehealth)에 대한 수가를 지불하기로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균형예산법은 1997년에 제정되어 2002년까지 연방 예산 균형을 맞추고자 시행된 법입니다. 1998년에서 2002년 사이에 $169 Bil을 절감하게 되어 있는데 이중에 $112 Bil는 메디케어를 위한 비용 절감입니다. 의료비를 절감하고자 원격진료에 수가를 지불하기로 한 것입니다. 실제 수가 지불은 1999년 1월부터 이루어졌습니다.
초기에는 활성화되지 않아 2000년 9월 30일까지 301건에 대해서 $ 20,000 정도만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일차 진료 의사 부족 지역(federally-designated rural Health Professional Shortage Areas)에 거주하는 환자만을 대상으로 지불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차츰 메디케어에서 시작된 원격진료 수가 지불이 민간 보험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 최초의 원격진료 회사인 텔라닥(Teladoc)이 2002년에 세워진 것도 이런 흐름에 닿아있습니다. 미국에서 원격진료 서비스가 제공하는 가장 큰 가치는 ‘Urgent care service’로, 응급실로 간다면 훨씬 많은 비용이 들 환자들에게 $40~50정도의 비용으로 나쁘지 않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미국과는 다른 의료시스템, 원격진료 효율성은?
우리나라는 내년 의원급 재진료가 10,010원입니다. 당연히 미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원격진료가 이를 대체한다고 했을 때 그 수가는 재진료와 비슷한 수준에서 정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따로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보다 많이 싸진다면 서비스 제공자들이 유지되기 힘들 것입니다. 원격진료의 경우 혈액검사, 영양검사를 시행하기 힘들고 영양 수액 등을 팔 수 없어 진료비가 수익의 전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원격진료의 의료비 절감 효과는 사실상 없는 셈입니다.
오히려 손쉽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의료비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환자의 편의 증진으로 인한 간접 효과, 웰닥(WellDoc)과 같이 의사 진료를 보조하는 의료 서비스가 가능해 지면서 만성 질환 관리가 잘 이루어지는 효과 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원격진료 자체가 우리나라 의료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원격진료, 누구를 위한 서비스인가?
우리나라 정부는 도서 산간지역 등 의료 접근성이 나쁜 지역 주민을 원격진료의 대상으로 내세웁니다. 그럴 듯 해 보입니다. 인터넷 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대한민국다운 구상입니다. 집 근처에 병원이 없는 시골 어른들이 집에서 손쉽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잠깐, 이분들이 원격진료를 받기 위해 컴퓨터나 핸드폰을 잘 이용할 수 있을까요?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뉴스타파에서 이에 대한 기사를 실은 바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자료를 보면 2013년 연말 기준으로 50가구 미만의 농어촌 광대역 통신망 구축률은53%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뉴스타파 취재진이 찾아간 군산시 옥도면에 위치한 한 섬마을의 주민들은 정부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줘도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한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부수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복지부가 생각하는 원격진료 모델에서 처방 받은 약물은 직접 약국에 가서 구입해야 합니다. 즉 인근에 약국이 없는 지역에서는 기껏 원격진료를 받아도 약은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격진료는 의사를 찾아가기는 힘들지만, 약국은 있는 곳에서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지역이 우리나라에 몇 군데나 있을까요?
보건복지부에서 2014년 5월 20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의료기관으로부터 1km이상 떨어져 있어 의약분업 예외지역으로 인정받은 약국은 351곳입니다. 거꾸로 이야기 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관이 가까운 곳에 없는 지역이 생각보다 적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원격진료를 이용할까?
미국 와이오밍주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이 주로 이용할까요? 이를 보여주는 자료가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Thinktank인 RAND의 연구원들이 텔라닥의 청구 자료를 분석한 한 논문을 보면 텔라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외래 혹은 응급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젊고, 동반 질환이 적으며, 그 전에 진료를 받은 적이 적었습니다. 즉 병원에 자주 갈 일이 없고, 기술적으로 비교적 친숙한, 건강한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텔라닥을 포함한 미국의 주요 원격진료 업체들이 내세우는 바와 일치합니다.
국내의 한 의료전문 매체가 미국에서 원격진료를 하고 있는 한인 내과 의사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의 원격 진료를 이용하는 가입자는 대체로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젊고 심하게 아픈 사람들이 없습니다. 원격진료도 간단한 질환 위주로 실시됩니다. 원격진료에서 의료 장비를 이용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환자들이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특별히 상태를 측정할 필요가 없고, 디바이스의 신뢰성도 문제이기 때문에 책임 소재의 문제로 디바이스를 활용한 진단은 아직 활성화돼 있지 않다고 합니다.
즉, 미국에서도 고령 환자들의 의료비를 줄여보려는 목적에서 원격진료를 시작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비교적 건강해서 큰 문제가 없을 만한 젊은 사람들이 간혹 아플 때 이용하는 서비스로 전락한 것입니다.
정부의 우선 순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현재로서는 보건복지부가 원격진료 도입을 서둘러야 할 이유는 대통령 공약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없어 보입니다. 만약 IT 기술을 이용해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겠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원격 진료보다는 의료 앱이나 정보 분석을 통한 질병 관리 지원 서비스 같은 것들을 허가하고 이들 서비스를 활성화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가령 전립선암 위험도 계산 앱을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쓰이는 의료기기에 해당하니 배포를 중단하라”는 등의 의료 서비스 규제부터 수정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