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헬스킷, 디지털 헬스 시장 바꿀까
김치원의 ‘지금은 디지털헬스 시대’
올해 애플 세계개발자 회의인 WWDC 2014에서 애플은 건강 서비스 플랫폼 헬스킷(Healthkit)과 건강 정보를 정리해서 보여주는 헬스(Health) 대쉬보드 앱을 내놓았었습니다.
발표된 내용을 보면, 헬스킷은 다양한 건강 관련 앱을 비롯해 센서를 통해 측정된 사용자의 건강 정보를 모을 수 있는 서비스 플랫폼입니다. 기존에 나와있는 운동량 측정계, 체중 측정계, 혈당/혈압 측정계 등 다양한 앱들이 사용자의 상태를 측정한 결과 및 정보를 한꺼번에 모을 수 있습니다.
또한 EMR(전자의무기록)과의 연계를 통해 의무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내 대형 EMR 회사인 에픽시스템(Epic Systems)과의 협력을 통해 정보를 당겨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욱이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도 이 플랫폼을 통해서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 그 일환으로 메이요클리닉(Mayo clinic)과의 협업을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헬스킷을 이용하여 헬스앱을 통해 모인 건강 관련 정보와 EMR에 올려져 있는 정보를 토대로 메이요클리닉 의료진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헬스킷과 EMR과의 통합 정도는?
애플이 에픽시스템스와의 협업도 발표하면서 이 회사의 EMR을 이용하고 있는 존스홉킨스병원, 클리블랜드 클리닉 등 유수의 의료기관들도 언급됐습니다. 헬스킷과 에픽시스템스의 EMR간에 상당한 수준의 정보 통합이 가능하지 않을까 가늠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즉 사용자(환자)들이 헬스킷을 통해 에픽의 EMR에 있는 의무기록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에픽시스템스 EMR내에서도 헬스킷에 나오는 정보를 볼 수 있는 쌍방 데이터 교환이 가능해 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가령 의사가 환자를 앞에 두고 EMR을 켜놓은 상태에서 옆에 또 애플 노트북 혹은 아이패드를 열고 확인해야 한다면 매우 번거롭겠죠. 병원에서 의료진이 사용하는 의무기록에서 헬스킷의 정보를 손쉽게 볼 수 없다면 메이요클리닉 등 유수의 의료기관이 이 플랫폼에 참여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의료 서비스 플랫폼은 없는가?
이미 다른 회사나 단체들도 이런 형태의 건강 관련 서비스 플랫폼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개 개인들이 자신의 의무기록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PHR(Personal Health Record) 관련 업체들이 이를 플랫폼화 하려고 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인디보(Indivo)입니다.
하지만 인디보가 사용자가 쉽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지 못한 반면 애플은 모바일에 대한 강점을 이용해 헬스킷을 내놓은 것입니다. 과거 애플이 아이튠즈(itunes)를 통해 디지털 음원 시장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헬스킷이 디지털헬스 시장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예측이 많습니다. 과연 헬스킷은 어떤 장점이 있고, 이로 인해 디지털헬스 시장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헬스킷의 역할 1_서로 다른 EMR의 의료 정보를 한 자리에
다른 EMR vendor들이 참여한다면, 서로 다른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아도 진료 기록을 한 곳에 모을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헬스킷으로 통합되기 힘든 경우들이 많아 그 유용성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요 의료기관이 아닌, 환자들이 흔히 이용하는 1차 의료 기관들 가운데 아직 EMR을 사용하지 않는 곳이 많고EMR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표준을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헬스킷의 역할 2_의료 정보 표준화 확산
헬스킷의 가장 큰 장점은 하나의 표준이 되는 플랫폼을 내어 놓음으로써 수많은 건강 앱들이 다른 서비스와의 결합 방식에 대한 고민 없이 헬스킷과의 결합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는 점입니다.
가령 당뇨병관리 서비스 웰닥(WellDoc)의 경우, 과거에는 개별 EMR vendor들과 일일이 협상을 해서 결합했어야 한다면 이제는 헬스킷에만 연결시키면 여기에 참여하는 EMR vendor들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미 미국에는 EMR 표준이 있는 만큼 이를 지킨다면 EMR과의 결합이 기술적으로 힘들지는 않았겠지만 규모가 작은 개별 건강 서비스 업체들이 대형 EMR vendor들과 협상하는 것은 상당히 성가시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일 것입니다.
따라서 헬스킷은 이런 지난한 작업을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더 많은 건강 서비스 회사들이 생겨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헬스킷과 EMR의 통합이 필수입니다.
헬스킷의 역할 3_메이저 기관들 유입으로 시장 확대 가능성 높임
에픽시스템스나 메이요클리닉 등 메이저 기업 및 의료기관들과 협업을 형성한 만큼 다른 경쟁 업체 및 병원들도 헬스킷에 참여하는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환자들이 헬스킷에 있는 자신의 의무기록을 이용해서 헬스킷에 참여한 병원으로부터 손쉽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면,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 병원들은 환자를 놓치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미 에픽시스템스의 EMR을 이용하고 있는 존스홉킨스병원, 클리블랜드 클리닉 등 유수의 병원들은 손쉽게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높은 의료수준으로 명망이 높은 메이요클리닉을 끌어들인 것 또한 큰 강점 중 하나입니다. 메이요클리닉은 헬스케어 혁신의 선두주자입니다. 올 2월 메이요클리닉은 EMR에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의료진들이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CDS(Clinical Decision Support) 서비스 회사 Ambient Clinical Analytics설립을 주도했습니다.
필자는 의료 정보 분석 서비스 회사를 세우는 것 또한 헬스킷을 통해서 유입될 다양한 의료 관련 정보를 잘 분석하기 위한 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해 봅니다. 만약 필자의 생각이 맞다면 메이요클리닉은 정말 대단한 의료 조직입니다. 과연 병원 중에서 ‘전통적인 순수한 진료 활동’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 이 정도의 전략을 세우고 꾸준히 실행해갈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요?
또한 Mayo Clinic은 올 4월 의료 앱인 Better를 통해서 해당 병원의 간호사들이 의료 상담을 해주는 채팅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헬스킷에서 나오는 정보를 결합할 경우 훨씬 강력한 서비스로 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헬스킷은 의료공급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고 있는 만큼 단순 건강정보 제공 수준의 서비스를 넘어, 본격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바탕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헬스킷이 헬스케어의 아이튠즈가 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헬스킷의 등장이 과거 아이튠즈의 등장만큼 디지털헬스에 큰 영향을 미칠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튠즈는 좋은 음악이 이미 세상에 많이 나와 있는 상태에서 이를 손쉽게 살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기 때문에 대히트를 쳤습니다.
헬스킷은 건강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디지털헬스에서는 ‘의료적으로 의미 있는 서비스’ 자체가 적습니다. 아이튠즈에 비유하자면 아직 세상에 좋은 음악이 많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player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인가?
헬스킷은 1. 건강관련 app 2. EMR vendor 3. 의료기관을 포함시켜mHealth의 가장 필수적인 player들만을 현재 끌어들이고 향후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player의 종류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미국에는 Pharmacy Benefit Manager(PBM)라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보험회사 혹은 환자들을 대신해서 제약회사, 약국들과 협상하여 약품비를 절감하는 역할을 합니다.
웰닥 서비스의 경우 원래 의사의 처방을 받은 환자가 PBM을 통해 그 서비스를 구입하게 됩니다. 즉, PBM을 헬스킷에 포함시키면 그 과정이 단순해져 사용자들이 매우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언젠가 미국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스테이크홀더인 보험회사들(payer)도 결국 포함되어 의료보험 커버를 받는 mHealth 서비스들이 보다 원활하게 보험회사와 연계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애플의 입장에서는 헬스킷으로부터 수익 창출을 기대해 볼 만 한 것입니다. 보험회사들이 결국 의료 시장에서 큰 돈을 내는 주체인 점을 생각하면 애플이 어떤 식으로든 이들과의 협업을 이루려 할 것입니다. ‘사용자 경험의 단순화’를 추구하는 애플이 PBM을 비롯한 다른 healthcare player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노력할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