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 발랄... 내 청춘시절의 왈가닥 애인
●이재태의 종 이야기(23)
사랑스러운 말괄량이 처녀 베티 붑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것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 정적인 장면을 편집을 통하여 원래는 없었던 움직임, 생명력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제작자나 신문의 삽화를 그리던 작가들이 시도되었고,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다.
월트 디즈니는 30년대의 애니메이션의 전성기를 꽃피우게 한 애니메이션의 대부였다. 그는 최초의 발성작품인 ‘미키 마우스’ 시리즈 중 ‘증기기선 윌리(1928)’과 최초의 색채작품 ‘숲의 아침(32)’도 탄생시켰다. 또한 첫 장편만화 ‘백설공주(37)’에 이어서 ‘3인의 기사’를 통해 만화와 극영화 화면을 합성하는 등 많은 명작들을 제작하였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플라이셔 형제는 ‘베티 붑(Betty Boop)’과 ‘포파이’등의 애니메이션을 등장시켰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배우들의 연기를 공유한다. 영화가 끝난 후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관중들은 최대한 영화 속에 오래 머물면서 주인공들과 즐겁게 지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고, 만화영화 속에서 천진난만하고 무궁한 상상력을 펼치던 극중 영웅들은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다. 이러한 인간의 욕구를 파악하고, 영화 속의 이미지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영화 캐릭터’들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을 ‘캐릭터 상품’을 통해 직접 만나며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그들 마음의 우상들과 함께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행복을 느낀다. 오래 세월동안 생명력을 유지해온 캐릭터는 단순히 예쁜 이미지 보다는, 나름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불쌍하고 눈물이 나도록 애처롭다. 즉, 단순한 장난감이나 말초적인 성적 흥미를 자극하는 물품이 아니라, 우리의 희노애락을 같이하는 감정의 친구들인 것이다. 캐릭터는 영화 수익의 일부이거나 마케팅 도구에 국한되지 않고, 차츰 패션과 문구, 인형, 교육자료, 광고의 영역으로 진출하여 왔다. 하나의 유명한 캐릭터가 올리는 매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베티 붑은 영화 자체는 사라졌으나 지금도 인기가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청춘시절의 애인이다. 나는 1993년 첫 번째 베티 종(bell)을 만난 후, 20년이 지나서 여성들의 유방암예방 캠페인 프로그램에서 판매한 두 번째 베티 종을 구입하였다. 상큼한 말괄량이 처녀 베티는 종소리를 통하여 유방암 환우들에게 “언제나 희망을 잃지 말라‘는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언제나 속옷 차림에 온 몸의 1/4을 엉덩이와 머리가 차지하는 큰 바위 얼굴 베티 붑은 20세기 초의 등장한 애니메이션 캐릭터이다. 처음 베티 붑이 등장할 때는 인간이 아니라 개였다. 애니메이션 영화 ‘고양이 펠릭스’의 큰 성공 이후 개를 소재로 한 캐릭터를 개발하려던 파라마운트 영화사는 플라이셔 스튜디오의 작가인 ‘그림 네트윅’에게 눈이 큰 강아지를 등장시킨 동영상을 제작하도록 하였다. 이 캐릭터는 프랑스의 푸들 개를 모델로 만들어 졌으나, 맥스 플라이셔가 최종적으로 사람으로 바꾸어 등장시켰다. 축 늘어진 푸들의 귀는 굴렁쇠 모양의 귀걸이로, 푸들의 검은 코는 단추 같이 동그란 소녀의 코로 바꾼 것이다.
베티 붑은 1930년 8월 9일 발표된 플라이셔의 ‘Talkartoon’ 시리즈의 여섯 번째인 ‘요란한 접시(Dizzy Dishes)’란 6분짜리 단편 만화에 처음 등장하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노출과 8등신의 미녀라기 보다는 친숙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애니메이션 영화 자체보다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으로 더욱 사랑을 받게 되었다. 베티에게는 생각이 깊기보다는 마음이 따듯하고 활달한 소녀의 조연 역할이 주어졌었다.
영화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베티는 굴곡 있는 몸매를 노출시키는 옷을 입은 그 당시의 재즈세대 왈가닥 여성의 모습이다. 1930년대 중반 할리우드 영화계는 미국 종교계의 압력에 굴복하여 얌전하고 비속하지 않으며 성적인 장면들을 규제하는 규범(Hays Code, 헤이스 코드)을 수용하였다. 이 규범에 의하여 영화장면에 제약이 가해지기 전까지는 영화에서 요란스럽고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팽배하였는데, 당시 베티 붑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이었다.
초창기의 베티 붑 카툰은 흑백이었으나 1934년에 제작된 ‘불쌍한 신데렐라’에서 천연색 카툰이 되었다. 그녀는 지금 보는 바와 같은 검은색이 아닌 붉은 머리카락을 한 소녀였다. 베티는 미국의 대불황기인 1930년대의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처음이자 가장 유명한 섹스 심볼이었고, 그녀는 건강한 재즈세대 청춘의 상징인 것이다. 당연히 어린이 보다는 성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는 성적이며 세상을 초월한 듯 한 정신적인 요인이 포함된 초현실주의 적인 면이 있는 만화 ‘Talkartoon - 떠돌이 미니’의 인기에 기인한 것이었다.
‘떠돌이 미니’에서 베티는 완고한 생각을 가진 부모를 둔 신세대 10대 소녀였다. 그녀는 부모와 의견이 달라서 삐걱거릴 때면 집을 나와서 남자친구 빔보와 음침한 분위기의 동굴에 들어가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 동굴에서는 유령 같은 바다코끼리 캘로웨이가 다른 유령들이나 해골들과 함께 유명한 노래 "떠돌이 미니"를 부른다. 유령들의 합창은 베티와 빔보를 놀라게 하고, 결국 이들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베티는 이 카툰으로 스타가 되었는데, 1932년 이후에는 베티를 위한 독자적인 시리즈가 만들어져서 7년간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베티는 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 주인공이었다. 같은 시대의 대부분의 여성 카툰 주인공은 디즈니사의 생쥐캐릭터 미니 마우스처럼 속옷이나 짧은 여성용 바지를 입은 어린이나 코믹한 스타일이었고 베티처럼 성장(盛裝)한 여성의 모습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여성 카툰 주인공들은 남성 주인공들의 짝을 맞추어 주는 스타일로서, 긴 속 눈썹과 여성의 목소리에 장면마다 옷을 자주 바꾸어 입었다. 그러나 베티는 짧은 머리에 하이힐, 스타킹과 가슴이 강조되었고, 드레스는 상체 부분을 가르며 많이 노출시킨 모습이었다. 영화에서 그녀의 남자 상대역은 주로 그녀가 일하거나 그녀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 때에 슬그머니 그녀를 엿보는 모습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어느 정도의 청순한 소녀 스타일은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머리의 크기도 성인보다는 소녀의 체형으로 그려졌으므로, 사람들은 그녀를 섹시한 말괄량이 모습에 더하여 순수한 소녀 모습을 지닌 여성의 양면성을 느끼게 되었다.
영화가 성공하자, 영화 밖에서는 그녀는 상업적으로 변모되어 청순한 모습에서 섹시한 모습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1931년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그녀와 산타 클로즈와 침대에 같이 누워서 윙크를 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공식인 그녀의 나이는 16세였으나, 상업적 목적을 위하여 많은 아이를 둔 여성이나 목소리가 우락부락한 여자로 변모되기도 했다.
청순한 모습을 배제시키는 모습들은 영화에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1932년에 만들어진 영화 “Boop-Oop-a-Doop (처녀성 virginity)”에서는 베티가 고공 줄타기를 하는 서커스단의 소녀로 나온다. 서커스단의 악랄한 연기 감독은 베티를 음흉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줄을 타는 베티를 아래에서 쳐다보며 “좀 더 짜릿한 것 한번 해봐!”라는 노래를 부른다. 베티가 공연 후 텐트로 돌아오면, 감독은 그녀를 따라 들어와 다리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자기의 말을 듣지 않으면 서커스단에서 해고하겠다고 위협한다.
베티는 "나의 처녀성을 탐하지마!"라는 노래를 부르며, 더 이상 성희롱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텐트 바깥에서 연습 중이던 광대 코코가 이들의 소란스런 대화를 듣고, 뛰어 들어가서 베티를 구해준다. 코코는 감독을 묶어서 대포에 넣고 포탄 장약에 점화한다. 그리고, 나무망치로 대포를 두드리며 안에 들어있는 감독에게 베티의 안부를 묻는다. 그러면 베티가 "아니요..그는 나의 처녀성을 가질 수 없어요"라는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이다.
베티 붑이 인기를 끌자 가수인 헬렌 케인은 1932년 의도적으로 자기를 닮은 커리켓쳐를 만들어 그녀의 이미지를 부당하게 이용했다며, 맥스 플라리셔와 파라마운트사를 상대로 25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케인은 1920년대에 ‘순수한 처녀’를 발표한 스타였기는 하나, 파라마운트사가 베티를 등장시킨 시기는 그녀의 인기가 추락한 뒤였다. 케인의 모습도 독창적인 것이 아니고, 베티와 케인은 모두 파라마운트사 소속의 톱스타였던 클라라 보우와 닮았다고 한다.
제작자 플라이셔는 재판정에서 그가 독창적인 상상력에 직원들의 디테일을 더하여 베티를 만들었다고 증언한다. 케인은 이에 대하여 베티의 아기처럼 노래하는 모습이 그녀의 독창적인 스타일이라고 다시 주장을 했으나, 여러 증인들이 이것 역시 흑인가수 베이비 에스더의 목소리와 같다고 증언한다. 결국 케인이 패소한 이 에피소드는 당시 베티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던가를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
베티의 전성기는 재즈 소녀로 등장하여 성인이 되고 싶은 순진한 성적매력을 보여주었던 처음 등장 후 3년간의 기간이었다, 그러나, 1934년 발효된 헤이스 규범이 만화영화에도 적용되면서 자유분방한 말괄량이의 모습을 주로 하였던 베티 붑 카툰의 제작은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심지어는 초기부터 베티의 깜직한 섹시미의 상징이었던 윙크나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도 부도덕한 모습이니 영화에서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베티는 남편이 없는 여성, 정장 차림의 젊은 직장 여성 등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에 따라 그녀 머리의 웨이브는 점점 줄어들고, 금팔찌와 큰 링 모양의 귀걸이도 사라져서 성숙하고, 매우 현명한 모습의 주인공으로 바뀌어 갔다. 제작자는 베티에게는 새로운 남자친구인 프레디를 만들어 주고, 퍼지라는 강아지와 함께 출연한 카툰이 만들었다.
1935년에는 괴팍한 발명가 그램피 영감님과 함께 출연하는 ‘베티 붑과 그램피’라는 작품도 제작되었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건전한 내용을 담아 청소년 관중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밋밋한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러므로 초기의 영화의 감칠 맛 나는 재미가 없어졌고 그녀의 인기도 점차 추락하게 된다. 그녀가 출연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에서의 그녀의 배역도 줄어들게 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베티에게 노래를 부르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였고, 당시 인기있던 희극 캐릭터나 1933년에 발표된 ‘포파이’와 짝을 이룬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었다. 특히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스윙음악을 영화에 도입하고, 재즈소녀에서 스윙스타로 탈바꿈하기 위하여 1938년 ‘베티붑과 샐리 스윙’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결국 1939년 스윙음악 을 즐기는 소녀 베티가 출연한 ‘인디언 보호구역의 리듬’을 마지막으로 TV와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1940년 이후 수십 년 동안 베티 붑은 컬러 애니메이션에 밀려 사라지는 듯했으나 1970년대의 거센 우먼파워의 등장 이후 여성적 매력과 상냥함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줄 아는 개성 넘치는 현대 여성의 아이콘으로 재등장하게 되었다. 베티를 그리워하는 올드 팬들의 열망에 의하여 베티 붑 이야기는 공중파 TV파에 소개되었고,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하는가?’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최근 베티 붑 애니메이션은 다시 부활하고 있고 코믹만화나 영화, TV,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광고로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베티 붑은 2002년 ‘TV 가이드’에서 선정한 ‘50개의 위대한 카툰’에서 17위였고, 2009년 한 신문사가 선정한 ‘가장 매혹적인 카툰 주인공’ 2위를 차지하였다. 아울러 베티 캐릭터 상품의 인기도 다시 높아졌고 그녀의 모습을 따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베티 캐릭터 상품은 정숙한 모습보다는 초기의 작품에서 보여준 섹시하고 발랄한 인상을 담은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