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후진국’ 한국, 다국적 제약사 타깃으로
결핵 씰에 대한 공공기관의 의무모금은 사라졌지만, 국내 결핵환자 수는 여전히 많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감염병의 40% 이상이 결핵이다. 인구 10만명당 발생률은 1백명 이상, 사망률은 5명 이상으로 OECD 국가 중 최고다. 못 먹어 면역력이 떨어지면 잘 생기기 때문에 ‘후진국병’으로 불리는 결핵이 쉽게 퇴치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의학계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늘고, 사회 양극화로 취약계층이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된 요인으로 꼽는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감소세를 보이던 결핵이 1980년대 들어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개발도상국에서 국내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데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무엇보다 임의로 결핵약을 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결핵 퇴치의 걸림돌이다. 결핵병동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립 서북병원의 한 관계자는 “결핵 치료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임의로 치료를 중단해 약제에 내성이 생기는 다제내성결핵 환자가 늘고 있어 문제”라고 했다.
다제내성결핵은 이른바 ‘수퍼 결핵’이라 할 수 있다. 다제내성결핵은 1차 결핵치료제인 리팜핀과 이소니아지드 등의 약제에 내성이 생긴 것을 가리킨다. 1차 치료제는 물론, 레보플로사신, 사이클론세린 등의 2차 치료제에도 내성이 생긴 결핵도 포함된다. 다제내성결핵의 치사율은 1차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경우 26%, 1.2차 치료제 모두 내성이 생긴 경우 50% 정도다. 전문의들은 “결핵 치료를 받다 회복기운을 느껴 임의로 약을 중단하면 내성균만 살아남아 증식된다”고 경고한다. 현재 국내 다제내성결핵 환자는 2천명이 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다제내성결핵 환자가 많은 우리나라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타깃이 됐다. 지난 3월 한국얀센이 출시한 서튜러(성분명 베다퀼린푸마르산염)가 선두주자다. 서튜러는 얀센이 40년만에 개발한 다제내성폐결핵 신약이다. 결핵균의 에너지원 생성에 필수적 효소인 마이코박테리아의 ATP 합성효소를 억제해 결핵균의 복제를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따르면 서튜러는 2상 임상시험에서 위약군보다 2배 더 많은 환자에서 치료효과를 보였고, 높은 음성 전환율과 빠른 음성 전환시간을 나타냈다. 서튜러는 1차 표준치료제인 이소니아지드와 리팜핀에 모두 내성이 생긴 환자에게 병용 투여할 수 있으며, 내년 5월에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등재될 예정이다.
서튜러에 이어 출시된 다제내성결핵 신약은 한국오츠카의 델티바(성분명 델라마니드)로, 지난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았다. 델티바는 결핵균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미콜산의 생성을 억제해 살균 효과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다제내성결핵은 강한 내성 때문에 치료하는 데 2년 이상 걸린다. 하지만 일반적인 결핵은 발견 후 6개월 정도 꾸준히 약을 먹으면 완치할 수 있다. 만 12세 이하 어린이는 결핵을 예방하는 BCG를 꼭 접종하고, 결핵균 보균자는 미리 결핵약을 먹어 결핵 발병을 막아야 한다. 결핵은 감기와 증상이 비슷해 쉽게 넘어가기 쉽다. 대한결핵협회는 기침과 가래가 보름이상 지속되면 가까운 보건소나 의료기관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