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와 피부과, 경영 방식 달라야 한다
[배지수의 병원경영] 생산성, 업종 따라 노동력과 자본력 비중 달라
자본 투자의 힘
의대 졸업반 시절이던 1998년 말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를 맞았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왜 이런 외환위기가 왔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진단이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 라는 진단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성급하게 OECD에 가입했고, 마치 선진국이 된 양 일은 열심히 안하고, 흥청망청 해외여행이나 다니고 과소비를 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은 저는 "역시 한국 사람들은 한심하다."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미국 유학을 가서 좀 의아한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해 훨씬 게으른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면 은행에서 계좌를 하나 개설하는데, 3시간이나 걸립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은행 직원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났습니다.
은행 직원이 다른 고객과 얘기하고 있을 때, 간단한 질문만 하면 되는 상황이어서 "Excuse me." 라고 말을 걸었더니, 그 직원은 "Hey! I'm talking with him." 하면서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물론 다른 고객과 얘기하고 있는 중에 제가 끼어들었으니 제가 잘못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하늘같은 고객에게 화를 내다니.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데,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앞에 앉아있는 고객의 일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걸려온 전화를 응대하기도 하고. 현재 처리하는 고객의 일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으면 그 중간에 다른 고객의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는 우리나라의 은행직원들. 그러면서도 상냥한 미소를 유지하는 우리나라 은행 직원들은 정말이지 슈퍼맨, 슈퍼우먼 들입니다.
이런 광경은 미국 주유소에 갔을 때 더 심했습니다. 미국 주유소는 대부분 셀프 주유소입니다. 주유기가 8대 있는데, 관리하는 사람은 한명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할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고객들은 스스로 알아서 주유를 했고, 관리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앉아있기만 했습니다.
아주 가끔, 주유기가 문제를 일으키면, 관리하는 직원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그럴 때면 그 사람은 거구의 몸을 흔들면서 느릿느릿 걸어 나와 문제의 주유기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주유기를 고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느릿느릿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주유기를 고치는 회사로 전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주유기가 문제가 생길 경우 고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그 사람 일의 전부였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주유소 직원들은 성실하고 빠릿빠릿합니다. 직접 주유를 해 주고, 기다리는 시간에는 유리창도 닦아줍니다. 차 안에 쓰레기 버릴 것이 없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기도 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예쁜 아가씨들이 상냥한 웃음까지 보내, 저 같은 아저씨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심지어는 지나가는 차를 호객하기 위해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합니다. 참 예쁘고 성실한 젊은이들입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미국 주유소 직원 한명과 우리나라 주유소 직원 한명을 비교하면 누가 돈을 더 많이 벌었을까요?
미국 주유소 직원은 한명이 8대의 주유기를 관리했고, 우리나라 주유소 직원은 한명이 한대의 주유기를 관리했습니다. 결국 돈을 번 걸로 따지니 미국 주유소 직원이 상대도 안 되게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공식 1]
Y=A*F(K,N)
MBA 시절 거시경제학 시간에 배웠던 공식입니다.
한 나라의 생산량 (Y, GDP)은 노동량(N)과 투입된 자본량(K)으로 이루어진 함수 값에 생산성(A)을 곱한 값으로 나타난다.
생산성은 노동량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량과 자본량의 곱으로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미국 주유소의 경우 노동량은 적지만 자본량이 많이 투자되면서 한 사람당 노동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얘기였습니다.
같은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도 선진국과 후진국의 인건비가 차이가 나는 이유도 이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골드만삭스 건물의 유리를 닦는 유리창닦이와 후진국 어느 나라의 건물 유리를 닦는 유리창닦이의 월급이 차이가 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노동의 성격은 같은 것 같지만 그 노동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차이가 나는 이유입니다.
이 이론을 배우고 나니, 결국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온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심하고, 게을렀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투자된 자본량(K)과 생산성(A)의 차이가 문제였습니다. 결국 정부 정책과 기업들의 경영 부실을 국민의 탓으로 돌린 셈이었습니다.
이 이론을 병원 산업에 적용시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의사의 노동력을 노동력(N)이라 간주하고, 다른 설비와 직원들의 노동력을 합해서 자본투자(K)라 간주합시다.
성형외과와 피부과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미용을 대상으로 하며, 비 급여 진료를 한다는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의 노동력과 자본투자 둘 중 어느 쪽에 의존하는지를 살펴보면 확연하게 다른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형외과는 의사의 노동력(N)에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습니다. 의사가 수술을 해야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의사가 쉬면 수익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반면 피부과는 의사가 진료를 하고, 처방을 내면 피부관리사가 서비스를 합니다. 의사가 하루 정도 쉬어도 피부관리실은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피부관리사 및 피부관리실은 자본 투자(K)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형외과는 환자 수를 늘리려면 의사의 노동력(N)이 증가해야 하지만, 피부과는 의사의 노동력 증가 없이도 피부관리사(K)를 더 충원해서 환자 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성인 정신건강의학과와 소아 정신건강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모델도 비슷한 논리로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들은 대부분 의사가 직접 환자 상담을 합니다. 이 경우 의사의 노동력(N)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소아를 대상으로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들은 심리상담사, 놀이치료사를 고용해서, 상담치료를 맡깁니다. 의사는 환자를 한 달에 한번 정도 보면서 어떤 종류의 상담치료를 받을지 처방을 하면, 환자는 일주일에 1~3번씩 병원에 방문하여 심리상담, 놀이치료를 받곤 합니다. 이 경우는 심리상담사, 놀이치료사 같은 직원과 치료실을 포함하는 자본투자(K)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원과 요양병원
저는 정신과 외래 진료를 하다가, 최근 요양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정신과 외래 진료는 제가 직접 환자를 다 봐야 하는 반면, 요양병원은 환자를 잘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잘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비즈니스입니다. 저 같은 경우 정신과 외래 진료를 할 때는 제 노동력(N)에 의존해서 비즈니스를 영위했다면, 현재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는 자본투자(K)에 의존해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노동력(N)에 의존하는 비즈니스와 자본투자(K)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중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환자를 직접 대면해서 성심 성의껏 진료하는 것이 전자의 모습입니다.
반면 위험을 감내하고, 자본을 투자하고, 직원들을 교육하고,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여 대규모로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후자의 모습입니다. 의사가 시간 여유가 생기는 것은 후자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후자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을 나의 복제인간으로 만들어 일하도록 만드는 리더십과 경영마인드가 필수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