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 건강검진, 해마다 받으면 뭐하나
국내 성인남녀의 절반 이상이 받고 있는 건강검진을 손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적지 않다. 형편상 손을 못 댈 뿐 세부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만성병 관리가 주 전공인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지난 10일 열린 대한가정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현재 정기건강검진 형태로 시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건강검진들의 다양한 문제점들이 쏟아졌다. 원칙과 시행과정상 개선해야 할 내용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선 해마다 천편일률적인 건강검진의 형태가 도마에 올랐다. 국내외 의학계에서는 일정한 검진 항목으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건강검진을 연례행사처럼 받는 데 대한 무용론이 나온 지 오래다. 한 해외 연구는 정기 건강검진을 받게 한 350명을 추적 관찰해 이들 중 사망자의 49%가 사망 직전 받은 마지막 건강검진에서 사망원인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발표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대부분의 건강검진이 집단적으로 실시되는 것도 문제로 꼽혔다. 이렇다보니 혈액과 소변, 영상 촬영 등 단순 검사에 치우친다. 본래의 목적인 상담과 진찰을 통한 예방보다 진단을 위한 검사로 본말이 뒤집힌 셈이다. 예방접종 등 예방서비스도 검진에 포함돼 있지 않다.
검진결과의 기초자료 구축도 미진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검진 후 사후관리 체계가 없다보니 다른 의료기관으로 건강정보를 보낼 수도 없다. 이상소견을 추적할 때 중복검사와 필요 이상의 검사가 반복돼 비용부담을 키우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분석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검사 항목이 많을수록 건강에 좋다는 생각은 무지의 소치라고 전문의들은 단언한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신호철 강북삼성병원장은 “개인의 연령별, 성별, 위험요인별 특성을 고려한 선택적인 검진항목의 채택과 문진을 통한 건강 상담, 진찰 등을 강화해야 한다”며 “환자교육과 예방접종 등도 포함시키는 형태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인의 사망과 상병, 그리고 건강 관련 역학적 통계에 따른 우리나라 고유의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건강검진 모형을 시급히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여러모로 손봐야 할 것들이 많은데도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건강검진의 영역인 1차 의료를 다루는 동네 의원 자체가 걸림돌이다. 주치의로서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을 다루기보다 임상 전문과로 환자를 보내는 초진 창구 역할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치의 보유율은 16%에 불과해 80% 이상인 주요 선진국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이재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건강검진은 1차 의료 전문의와 연계되지 않은 기형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며 “국가 건강검진이 효율성을 위해 1차 의료와 연계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검진 후 사후관리를 동네 의원에게 맡기는 방법도 제시됐다. 조비룡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건강검진에만 수가가 책정돼 있어 관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며 “사후관리에 대한 수가를 따로 책정해 그 역할을 동네 의원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