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의사, 금성에서 온 환자

화성에서 온 의사, 금성에서 온 환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베스트셀러 서적이 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어쩔 수 없는 차이를 재미있게 보여준 책인데 이렇게 남자와 여자만큼이나 소통과 감정 수용체계가 다른 두 주체가 또 있다. 바로 의사와 환자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80세가 넘었다. 그런데 건강수명은 아직 70대 초반이다. 마지막 전 5~10년은 골골거리다 세상을 뜨는 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람들은 이 시기에 일생의 의료비 중 절반을 소비한다는 점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연구진은 “당신의 유전 정보를 보니 당신은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남보다 5배 높다”고 통보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활습관을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조사를 진행했다. 이 병원에서 유전자 테스트를 받은 사람 1000명을 추적 조사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통보받은 사람 중 40%에서 운동과 식단에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 의사와 적극적으로 질병을 예방하는 법에 대한 상담을 시도하기도 했다. 질병위험도 예측을 위한 하이테크가 효과를 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 변화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가 관건이다. 첨단 기술로 무언가를 확인한 다음부터는 소통의 몫이다. 이렇게 환자가 마음을 열고 소통을 시도했을 때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지지 못하면 개인은 이내 다시 원래의 생활습관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소통은 다음 네 가지 분야에서 힘을 발휘한다. 이것이 바로 ‘4P의료’이며 참여(Participatory), 예방(Preventive), 맞춤(Personalized), 예측(Predictive)이 그 것이다.

①참여(Participatory)

지난해 의학자들이 참여하는 큰 국내 학술대회에서 한 환자가 기조강연을 맡았다. 의대교수 등이 담당하던 기조강연을 환자가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강연이 끝나자 2000명이 넘는 청중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답례를 보냈다.

“말기암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 나선 나 스스로의 참여와 환자동호회 덕분”이라는 말에 대해서였다. 참여의료의 한 단면을 보여준 강연이다.

참여란 의사가 환자의 생각을 알아내고 환자의 사회ㆍ경제적 상태에 맞춰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의 생각을 어떻게 알아내는가?

의사와 환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에 동참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미 일부에서는 환자와 의사가 권위적 관계에서 벗어나 동반자, 친구관계가 돼 가고 있다. 실제로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의사의 의학적 결정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 ‘의료인으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얻는다고 느끼는 환자들이 의료행위에 대한 관여도와 만족도가 실제로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의료 정보 및 기술의 발달은 사회적 관계망(이하 SNS)을 활성화 하였고, 이를 통해 집에서도 사실상 치료가 가능한 시대가 도래 했다. 똑같은 항암치료를 받은 암환자라도 SNS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치료를 병행하면 치료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②예방(Preventive)

환자와 의사의 수평적이고 서로 돕는 관계는 예방의료에서 두드러진다. 예방의료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세계는 앞 다퉈 달려가고 있다. 영국은 향후 5년간 10만 명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여 건강지표로 활용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다. 유전자 정보와 임상 데이터를 많이 확보할수록 예측의 정확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인 안젤리나 졸리는 지난해 5월,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기고문을 게재했다. 56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의 어머니를 난소암으로 잃은 그는 유전자 테스트 결과 자신이 유방암 및 난소암 발병과 관련 있는 BRCA 유전자1돌연변이를 어머니에게 물려받음을 알게 됐다.

BRCA 유전자 돌연변이는 전체 유방암 환자의 5%, 난소암 환자의 10~15%에서만 발견되지만 이 흔치 않은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으면 평생에 걸쳐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약 55~65%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졸리는 아직 건강한 상태지만, 암에 걸릴까 두려워하며 살기보다는 예방 차원에서 미리 양쪽 유방 절제술을 받는 것을 선택했다.

안젤리나 졸리의 충격적인 선택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는데, 개인 유전정보의 의학적 해석과 그에 따른 안젤리나 졸리의 예방적 수술이 충분한 소통을 거쳐 적절하게 결정됐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FDA도 유전자 검사를 받은 소비자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적절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그러므로 4P의 의학적 남용을 막기 위한 적절한 수준의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

③맞춤(Personalized)

의사가 “아직 수술할 필요 없으니 허리가 아플 때는 어떤 자세를 하고, 어떤 스트레칭을 하라”고 아무리 가르쳐 줘도 환자는 허리가 아플 때 파스를 찾거나 침을 맞는다. 의사는 “답답하고 자기 관리 못 하는 환자”라고 비난하고, 환자는 “제대로 된 해결책도 못 주는 그렇고 그런 의사”라고 의사를 인식하게 된다. 서로 간의 의사소통에 실패한 것이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소통을 통해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우선 의료 소비자가 자신의 상태를 잘 인식하고 이를 의사에게 알려야 한다. 자신의 경제적인 상황이 어떠한지, 자신의 상태는 어떠한지 올바른 정보교류가 필요하다. 심리 상태도 꼭 전달해야 한다. 두려운지, 희망을 보고 있는지 등 자신의 마음을 의사에게 얘기하고, 의사는 환자에게 충분히 공감하면서 의학적 입장에서 접점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유방암 위험이 높다는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안젤리나 졸리처럼 예방적 수술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려면 충분하게 소통해야 한다. 의사는 예방적 수술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환자에게 알려줘야 하고, 환자는 수술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신체적 부담에 대해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④예측(Predictive)

4P의료에서 기대되는 것은 개인이 참여해서 만드는 빅데이터에 근거해 질병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고령화추세로 인해 헬스케어 지출이 높아지고 있고 이 중의 상당 부분은 당뇨병, 비만, 심장질환 등의 만성 질환의 치료와 관리에 쓰이고 있다. 만성 질환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면 의료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질병 예방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 중 가장 각광받는 방법이 환자 자신의 프라이빗 뱅크에 일생 동안의 건강데이터를 넣어 두고 가까운 타인에게 이를 관리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는 의료의 포괄성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병력을 감추려는 의료소비자의 인식 개선과 의료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예측 의료는 이러한 개인건강기록(PHR) 분야의 빅데이터 분석에서 시작된다. 빅데이터가 유전자 정보와 다른 점은 그 안에 소통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어떤 주치의에게 어떤 치료를 받았고, 어떤 약을 처방받았고, 성장 과정에서 어느 병원에 다녔으며, 평소 어떤 생활습관을 지속하고 있는가에 대한 모든 정보가 빅데이터에는 들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종양학에서 이미 치료받은 암환자의 유전자, 조직학적 검사, 임상적 소견에 대한 빅데이터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 데이터를 분석하면 새로운 환자가 발생했을 때 환자의 예후를 미리 예측할 수 있고, 치료 방침도 결정할 수 있다.

재발이나 병의 진행 가능성이 높은 환자에게는 적극적 치료를, 가능성이 낮은 환자에게는 적극적 치료를 시행하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치료를 피할 수도 있다. 이처럼 예후를 예측하는 많은 연구와 노력이 계속 시도되고 있다.

“사람들은 질병 위험도가 높다는 말을 들으면 일시적으로는 생활습관과 행동패턴에 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생활습관은 장기적인 문제다. 이를 오래 끌어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한데, 그것이 소통이다.”

 

 

    코메디닷컴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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