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앞선 전술...벼락같은 함포전으로 결판
●장정호의 충무공 톺아보기(4)
이순신 해전의 특징 ②
이순신이 극복해야 할 일본군에 대한 과제는 속도와 등선 육박 전술이었는데 그는 마치 바람과 천둥이 치듯 대포와 화살을 쏘아 속전속결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꼼꼼하고 정확한 이순신은 해전에 관한 구체적인 기술을 하고 있지만 현대의 방식과는 다른 점이 많아 전투의 구체적인 모습을 추측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순신 전승의 신화가 시작된 옥포해전 부분을 보자.
‘... 그리하여 양쪽으로 에워싸고 대들면서 대포를 쏘고 화살을 쏘아대기를 마치 바람처럼 천둥처럼 하자, 적들도 조총과 화살을 쏘아대다가 기운이 다 떨어지자 배에 싣고 있던 물건들을 바다에 내던지기에 정신이 없었는데, 화살에 맞은 놈은 부지기수였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헤엄쳐서 달아나는 놈도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옥포파왜병장 )
다시 사전포에서의 전투상황을 기술한 부분이다.
‘... 그래서 먼저 거북선으로 하여금 적선들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서 천․지․현․황 등 각종 대포를 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러자 산위와 언덕 아래에 있던 왜적들과 세 곳에 모여서 배를 지키던 왜적들도 총알을 쏘아댔는데 어지럽기가 마치 빗발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간혹 우리나라 사람도 저들과 섞여서 쏘았으므로 신은 더욱 분하여 노를 재촉하여 앞으로 나가서 적의 배를 공격하자 여러 장수들도 일제히 구름처럼 모여들어 철환․ 장편전․ 피령전․ 화전․천자․지자 대포들을 비바람이 몰아치듯이 쏘아대며 저마다 있는 힘을 다하니 그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습니다. 적들은 중상을 입고 엎어지는 놈, 부축해서 끌고 달아나는 놈들이 부지기수 였습니다. 그리고는 퇴각하여 높은 언덕에 모여서는 감히 앞으로 나올 생각을 못했습니다.’(당포 파왜병장 )
이런 상황을 본다면 이순신은 단순히 적들에게 ‘비처럼 바람처럼’ 혹은 ‘구름처럼 대포를 쏘아’대어서 이긴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왠지 그렇게 해서 승승장구 하다가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이끈 우리 군이 완전히 궤멸되어 참패를 한 이유가 속 시원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순신은 어떻게 해서 상대 적선을 320척이나 격파하고 12척을 나포하는 전과를 올리는 중에 아군 선박의 피해는 단 한 척도 없었을까. 이순신 역사 연구회의 이름으로 발간된 책,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보면 당시 이순신이 펼쳤던 전술은 근대의 함대전에 쓰이는 주요 전략이 300년 전에 쓰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순신의 주요 해전 전투 전략은 ‘일시집중타법이 동원된 함포전’이라는 것이다.
세계 열강이 식민지 개척의 제국주의로 각축을 벌이던 시기, 20세기 초, 그 절정의 시기에 함포전이 등장한다. 함포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이를 근대에 들어와서 극적으로 활용한 이가 러일 해전의 영웅 일본의 도고 제독이다. 이후 태평양 전쟁의 시기까지 이 함포전은 해상 전투의 교과서적 방법이 되었다. 도고 제독의 함포전, 그것은 옛 일본의 해전사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기술을 인용하여 ‘이순신과 임진왜란’에서는 이의 시초를 이순신의 해전에서 찾고 있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두 배 이상 규모의 러시아 함대를 한 번의 전투로 궤멸시킨, 그래서 러일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쓰시마 해전(일본에서는 일본해 해전: 1905년 5월 27-28일)의 주인공 도고에 의해 지휘된 당시의 전투 상황은 그림과 같다.
러일해전의 영웅 도고제독이 활용한 이순신 해전의 전략. 이순신 해전의 전투 부분을 더 살펴보자.
이순신이 한산도 해전 이후 장계(조정에 올리는 보고서)에 기술한 전투 부분이다.
‘...(전략)... 그래서 쫓아가 보니 큰 배 36척, 중간 배 24척, 작은 배 12척이 진을 치고 정박해 있었는데..(중략)... 먼저 판옥선 5,6척으로 선봉의 왜적들을 쫓아가 공격할 기세를 보이도록 하자, 여러 배의 왜적들도, 일제히 돛을 올리고 쫓아왔습니다. 그때 우리 배가 일부러 물러나서 돌아오니 왜적들은 끝까지 쫓아 와서 바다 가운데까지 나왔습니다.
이때 다시 여러 장수들에게 학의 날개를 편 모양의 진형을 이루어 일제히 진격하라고 명령을 내리니, 각각 지자, 현자 등 각종 총통을 쏘아대어 먼저 적선 2,3척을 깨뜨렸습니다. 그러자 여러 배의 왜적들은 기가 꺾이어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모든 장수와 병사들 그리고 군관들은 승리한 기세를 타서 펄쩍 펄쩍 뛰면서 서로 앞다투어 돌진해 들어가서 화살과 총탄을 교대로 쏘아댔는데 그 형세는 마치 바람 불고 천둥치듯 했습니다. 그래서 적의 배를 불태우고 왜적을 사살하기를 한꺼번에 해치워버렸습니다. ...(후략)....‘ (견내량 파왜병장)
여기서도 ‘바람 불고 천둥치듯’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한꺼번에 화력을 쏟아 붓는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다만 상상할 때 조심할 것은 대포를 바람처럼 천둥처럼 퍼부었다고 적의 배가 포탄에 의해 폭발이 되었다기보다, 폭발력은 없지만 관통력이 강한 육중한 포탄들에 배들이 깨져나갔다고 보면 된다.
먼저 두세 척의 배에 집중타를 퍼부어 배를 깨트린다. 만약 배의 깨진 부분이 평균 20군데가 되면 침몰한다면, 이순신의 함대에서 당시 거북선과 판옥선 모두 한편으로 각 6개의 포혈을 가지고 있었으므로(머리와 꼬리에도 2문이 있었으므로 좌우 6개씩 12개 그리고 앞뒤로 2개, 모두 14개의 포혈을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각 6발씩 4척의 함대가 집중해서 먼저 깨트린다. 두세 척을 깨트리기 위해선 4척이 아니라 8척에서 12척이 필요하겠지만 실지로 정확도 등을 고려하면 더 많은 배가 전방의 두세 척에 집중타격을 가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적선이 70여척이라고 해서 포탄을 분산하여 쏘았다면 피해는 없지 않겠지만 작동 가능한 적선은 이미 다가와서 왜군들이 우리 측 배에 올라타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비록 일부 깨어지긴 했지만 손상된 부분은 다시 복귀하여 수리하면 적의 전력은 고스란히 살아나게 된다.
그러나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천지를 울리는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같은 편의 배 두세 척이 산산이 깨져 침몰하는 것을 본 일본 군사들은 이미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도 그런 상황이 이해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군들은 300년 뒤에나 일반화되는 함포전에 대해 대응 불가능한 혼란과 공포를 맛보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시 하에 무조건 해상전 회피 전략을 택하게 된다.
임란 당시 혹은 중세시대 해전은 주로 ‘등선육박’ 전술이었다. 다시 말해서 일단 상대의 배로 올라타든, 기어타든, 건너뛰든 상대의 배로 건너가서 육박전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고대부터 이어져 중세 혹은 근세에 이르도록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해상 전투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등선 육박 전술로 상대를 초토화한 후 혹은 선제공격 시 상대의 배에 불을 지르는 방법이 병행된다. 이런 장면은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조니뎁(Johnny depp: John Christopher depp Ⅱ)주연의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에 나오는 해상 전투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근세에 들어와서도 캐리비언의 해적에 나오는 선박간의 전투는 포탄이 등장하지만 그래도 결국 ‘등선 육박’전술로 마무리한다.
왜군의 등선 육박 전술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해전, 300년 뒤에나 등장할 함포전의 개념으로 이순신은 일본 왜선들을 깨뜨려나갔고, 일본은 부서진 배에서 바다로 빠져 거의 수몰당하거나 운 좋은 왜군은 헤엄쳐서 인근 섬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의 전공 기준 중에 하나가 ‘왜군의 목을 얼마나 베었느냐’ 인데 원균은 패잔병 왜군을 찾아 그 목을 베러 쫓아다니느라 혈안이 되었고, 이순신은 이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에게는 전공은 자신이 직접 확인하고 있으니 왜군의 목을 베는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