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걷던 사람이 ‘벌떡’... ‘우주복 입은 마술사’
“니켈 소재의 귀고리나 반지에 알레르기 일으키는 사람이 많아. 인공관절 소재 코발트가 니켈과 비슷한 성질이므로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지.”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박윤수 교수(58)는 같은 병원 피부과 양준모 교수의 말에 귀가 번뜩였다. 박 교수는 수술은 잘 마쳤는데 통증을 호소하며 절룩거리는 일부 고관절 (엉덩이관절) 환자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셀 지경이었다. 이들 환자는 망가진 고관절 대신 미국에서 개발한 코발트·크롬 합금의 금속 인공관절을 넣는 인공관절치환수술을 받았다.
박 교수는 2004년 환자들의 부작용 사례를 모아서 국제 학회에서 발표하기 시작했다. 금속의 이물반응이 환자에게 염증과 통증을 유발하고 심지어 연결된 뼈를 녹이기도 한다는 주장에 다른 나라 의사들이 수군댔다.
태국에서 열린 인공관절 심포지엄에서 이 주제를 발표하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저명 의사가 조용히 다가왔다. 그는 “주위의 의사들에게 물어봤는데 이런 부작용은 없었다”면서 “당신의 해석이 틀린 것 같으니 수술영상과 통계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말이 요청이지 ‘은근한 협박’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인공관절 회사에서 설계에 참여한 자문의사였다.
박 교수는 이듬해 7월 관절수술 분야의 최고 권위지인 ‘골관절수술지(JBJS)’에 165명에게서 발생한 금속인공관절의 부작용 사례 10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겠다고 하자 학술지 편집위원들이 초스피드로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을 읽은 의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금까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무려 246번 인용됐고 정형외과 학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그 의사도 나중에 만난 학회에서 “내가 결례를 범했고 당신이 옳았다”고 항복했다. 금속 인공관절을 만든 회사 존슨 앤 존슨은 손해배상 및 재수술비로 40억~50억 달러(약 4~5조원)를 써야만 했다. 처음에는 15억 달러를 예상했지만 피해 사례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
박 교수는 논문 발표 뒤 국제학회의 단골 초청 의사가 됐고 다른 나라의 의사들이 먼저 알은체를 하는 ‘스타 의사’가 됐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환자들이 수술 후 벌떡 일어나는 모습에 반해 정형외과를 택했다. 수련과정과 군의관을 거쳐 3년 반 동안 서울의 강남시립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가난한 시민들에게 온갖 정형외과 수술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연구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박 교수는 주말에 대모산을 등산하다가 삼성서울병원이 터를 닦는 것을 보고 ‘이곳이 내가 가야할 곳’이라고 마음에 담았다. 그는 병원에서 의사를 공모하자 피부과 양준모, 외과 전호경 교수 등과 함께 곧바로 지원했다. 그는 병원 개원 전 캐나다 토론토병원 정형외과 휴 카메론 교수의 문하로 들어가 내공을 닦았다. 수술을 직접 하면서 의술을 배우기 위해 밤새 공부해 캐나다 의사 면허증을 땄다.
박 교수는 1994년 8월 개원 멤버로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에 합류했고 2년 뒤부터 고관절 환자만 보기 시작해 지금까지 8000여명의 환자에게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그는 내외부 공기가 차단되고 멸균 상태를 유지하는 인공관절전용수술실에서 우주복과 비슷한 수술복을 입고 수술한다. 수술 감염률은 0.1% 미만으로 세계 최고 수준 병원의 0.3~0.5%보다 훨씬 낮다.
그는 수술 실력으로도, 연구로도 일가를 이뤘다. 2008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인공관절학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지난해에는 대한고관절학회의 회장에 취임했으며 미국인공관절학회의 정회원이 됐다. 올해에는 국제고관절협회의 정회원이 됐다. 2006년과 2012년 대한정형외과학회 학술상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대한의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 대한의사협회 의과학상과 대한고관절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박 교수는 수술 부작용을 줄이는 의료기기의 개발에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2000년부터 서울성모병원 김용식, 서울대병원 김희중 교수 등과 함께 국산 인공고관절을 개발해서 2007년 ㈜코렌텍을 통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2009년부터는 값싸고 빠른 수술용 로봇의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논문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입은 존슨 앤 존슨에서 러브콜이 왔다. 인공관절을 설계하는 자문의사단에 합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자문의사단 10명 가운데 아시아 출신으로는 박 교수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