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은 예술” 클래식 속 메스 드는 ‘무르팍 도사’
경희대병원 정형외과 배대경 교수(68)는 지난 8일 태국 푸껫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9~11일 열린 제8회 아시아태평양무릎관절학회에 참석해서 쉴 틈 없이 활약했다. 인공관절수술에 대한 논문을 분석하는 세미나에서 좌장을 맡았고 ‘퇴행성관절염의 절골술’에 대해 각국 의사들을 대상으로 하이라이트 특강을 했다. 또 인공무릎관절수술에서 컴퓨터의 유용성에 대해 특강했다. 학회가 끝나자 임원회의에 참석해서 2018년 학회를 서울로 유치했다.
배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지금쯤 집에서 편안하게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청소년 때 피아니스트가 꿈이어서 하루 종일 피아노와 붙어 지냈지만 고1 때 콩쿠르에 구경 갔다가 ‘현실의 벽’을 실감하고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대신 의사로서의 고뇌와 피로를 음악으로 풀었고 정년이 되면 음악과 보다 더 친해지려고 했지만 그러기엔 현실이 녹록치 않았다. 전국의 병원에서 손을 놓은 각양각생의 무릎관절염 환자가 배 교수를 찾아 몰려오기 때문이다. 2012년 병원에서 정년퇴직했지만 환자를 떠날 수가 없었다.
배 교수는 대신 수술실에서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등의 음악을 틀어놓고 메스를 든다. 그는 정년퇴직 후에도 한 해 연인원 5,000명의 환자를 보고 이 가운데 350~400명을 수술한다. 다른 병원을 전전한 노인 환자가 많으며 수술 환자의 15%가 80대, 5%가 90대 노인이다.
해외학회 초청도 멈추지 않아 매년 7, 8번은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8차 세계정형외과기술학회, 7월에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제1회 국제인공관절태평양학회 등에 초청특강을 했고 세미나 좌장을 맡아 중견의사들을 이끌었다. 내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인공관절학회에서도 ‘초청 임원 특강’이 이미 예정돼 있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대한정형외과학회, 아시아인공관절학회, 정형외과컴퓨터수술학회 등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올 상반기 국제학술지에 2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하반기에 3편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이토록 바쁘게 지내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서 건강도, 가족행복도 챙겨야 한다. 그는 10년 째 매일 아침 5시 반부터 30분 동안 요가를 하면서 일상을 시작한다. 요즘은 수시로 ‘카카오톡’에 글과 사진을 올려 부인, 아들, 딸, 며느리 등과 수시로 대화한다.
배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정형외과 전공의 과정을 마쳤지만 모교에는 ‘교수 자리’가 없어 경희대병원으로 향했다. 김영롱 교수가 국내 최초로 인공관절시술을 했고 유명철, 이석현, 안진환 교수 등 쟁쟁한 서울대 의대 출신의 선배들이 칼을 갈고 있었다.
배 교수는 1981년 미국 위스콘신의대 성 프란시스 병원에 연수를 가서 ‘무릎의 세계’에 눈을 떴다. 그곳 교수들은 눈에 띄게 성실한 배 교수에 반해서 병원에 남을 것을 제안했다. 당시에는 서울대, 연세대 등 명문의대를 나오면 미국 이민 가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배 교수의 동기만 해도 수석인 자신을 빼고 2~5등이 모두 미국에 정착했다. 배 교수는 잠시 생활물품이 넘쳐나는 미국에서 살 것인지 고민했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내가 미국에 온 것은 견물을 넓히기 위해서였지 호사스러운 삶을 위해서는 아니다. 조국의 환자를 위해 되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려 펴졌다.
위스콘신의 스승들은 배 교수가 이런 생각을 전하자 오히려 적극 도와줬다. 배 교수가 1년 동안 미국 메이요 클리닉, 클리블랜드 클리닉, 영국 왕립국가정형외과병원, 독일 엔도 클리닉 등 세계 10대 병원에서 연수하도록 주선한 것. 배 교수가 ‘강호의 고수’들을 섭렵하고 귀국할 때쯤에는 ‘무르팍 도사’가 돼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무릎에 이상이 생기면 진통제를 먹고 참아야 했던 시기였다. 인공관절 수술법의 전도사가 돼 병원을 돌며 치료법에 대해서 강의하면서 전국에서 몰려오는 환자를 치료했다. 배 교수는 30여 년 동안 환자를 보면서 쌓인 경륜으로 환자에 따라 다양한 치료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환자의 무릎 연골을 다듬어 통증을 줄이는 관절경수술, 다리뼈를 자른 뒤 교정해서 양 무릎의 무게 균형을 맞추는 절골술, 인공관절로 바꾸는 관절치환술 등을 선택해 시술한다.
수술법과 기구를 향상시키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그는 2003년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수술하는 ‘인공관절 자동항법장치’를 개발해 인공관절, 절골술 등에 활용하며 치료율을 높이고 있다. 2006년에는 무릎관절 수술에 쓰는 ‘교정절골술 기구’의 국산화에 성공해 이 기구로 수술하고 있다. 그는 이 기구의 모든 권리를 중소기업에 넘겼다.
“수술은 정성에 비례합니다. 환자마다 무릎의 모양, 크기 등 해부학적 구조가 다 다르므로 공장에서 만든 인공관절이 모든 환자에게 맞을 수가 없어요. 이를 정성껏 다듬어서 환자에게 보다 더 맞추려고 노력하면 환자의 만족도가 좋아지겠지요.환자 한 명 한 명에게 혼신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술은 곧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포크라테스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말했을 때 ‘예술’이 곧 ‘의술’을 의미한다는 것은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