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작전에 넘어가 맞은 ‘그녀’... 종도 20개나

딸의 작전에 넘어가 맞은 ‘그녀’... 종도 20개나●이재태의 종 이야기(5)

우리집 고양이 개동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 진학하게 된 딸아이를 싸늘한 봄바람이 불던 학교 기숙사로 데려다 준 후 몇 달이 지나자, 기숙사로 옮겨 주었던 짐이 다시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딸은 그 주말에 버스를 타고 내려왔고, 학원에 다니면서 다시 공부해서 희망하는 대학으로 진학하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딸아이의 “반수(半修)” 수험생 생활이 시작되었고, 다시 여름 가을이 지나고 아이는 두번째 수능시험을 치렀으나, 첫해와 비슷한 성적을 얻었다. 문과와 이과간의 교차 지원이 허락되지 않은 현 제도에서, 문과를 선택했던 녀석이 희망했던 의과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월등한 성적을 얻어야 했으나, 그 해 얻은 수능 성적이 약간 올라갔으나 시험이 비교적 쉬워서 상위 수험생들 간의 분별력이 낮았다. 의과대학은 경쟁이 치열하였기에 문과 시험에 응시하여 얻은 성적에서 10% 감점을 받고 지원한 몇 군데의 대학 입시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한 대학에서는 후보 1번까지 올라가서 내심 기대를 하였으나, 더 이상의 행운은 없었다. 아이는 신학기에 다시 그 학교로 돌아가야만 했으므로 풀이 죽어보였다.

12월 연말 어느 날 저녁 퇴근을 하니, 집사람이 아이가 너무 의기소침하고 의욕이 없어 보이니 아이가 원하는 애완동물을 한 마리 키우자고 넌지시 이야기하였다. 하루하루 바쁘게 출퇴근하며 살아가는 우리 집의 형편에 동물까지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좀 더 생각해 보자고 하였다. 이번에는 고등학교 1학년이던 둘째 녀석이 찰싹 달라붙어, 언니가 저렇게 정신적으로 힘든데 좀 도와주자고 보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출근하기 전에도 모녀가 이구동성으로 고양이 한 마리 키워보자고 다시 애원을 하였다.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하는 수 없이, 아이가 활기차게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고 하고는 출근하였다. 사실 나는 고양이가 무척 싫었다. 항상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것 같은 무서운 눈매, 할퀴면 피가 나는 날카로운 발톱, 어둠속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내는 섬찟한 동물, 거기에다 항상 마귀 할머니의 품이나 어깨에 음흉한 고양이 한 마리가 얹혀있었던 기억들도 나의 고양이에 대한 나쁜 인상을 형성하는데 기여를 하였다.

그 날도 하루 일과를 바쁘게 보내고, 늦은 저녁시간에 집에 왔더니, 아니.. 벌써 조그만 흰 고양이 한 마리가 거실에서 폴짝폴짝 뛰어 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모든 식구들이 주위에 모여들어 공을 굴리거나 끝부분에 나비가 달린 막대기로 고양이를 어르고 달래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사실 딸아이는 몇 주 전에 이 암컷 고양이를 사서 친구의 집에 두고는 나의 눈치를 살피며 집으로 진입시킬 시기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한 해가 바뀌기 전 어느 날을 D-데이로 잡았고, 집사람과 연합 상륙작전을 개시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였던 것이다. 아비가 반대하더라도 자기 꿍꿍이대로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하는 녀석에게 또 다시 패배하였다. 고양이를 집에 들이고는 “나오(Nao)”라는 영문식 이름까지 붙여두었고, 먼저 나서서 고양이는 자기들이 책임지고 키우겠으나 적정을 말라고 하였다. 나는 이 녀석을 “개 같은 동물”이라고 “개동”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다음날 오후 고양이를 보고 있으니, 3개월 된 어린 고양이 녀석이 자주 “그르렁” 소리를 내었다. 열이 있거나 크게 심각해 보이지는 않으나, 저녁시간이면 사람의 경우 상기도가 막히거나 가래를 뱉지 못해 토해내는 병적인 호흡음을 발산하는 것 이었다. 하는 수 없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감기라며 주사를 놓기에 그런가 하고 데리고 왔는데, 그날 저녁에 또 다시 그 소리를 반복하였다. 다음 날 아침에 또 다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주사를 맞혔으나 나아지지가 않았다. 저녁에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았더니, 고양이는 편안하거나 기쁠 때 목구멍에서 작은 모터를 돌리는 진동 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아는 게 병”이라고 내과 의사인 내가 나서서 없는 고양이 병을 만들었고, 그 와중에 돌팔이 수의사를 만나 돈 들고 고양이에게는 고생만 시켰다. 또한 입양한지 2주가 지나니, 딸 아이 들의 얼굴과 팔다리에 습진과 가려움증이 생기기 시작했고, 식구 모두 피부과에서 고양이 곰팡이균 감염으로 진단되었다. 모두는 몇 주간 항진균 연고를 얼굴과 사지에 발라야 했고, 고양이는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하였다.

옛날부터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이 많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은 동물을 위해,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가축은 노동과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 들짐승의 대부분은 양식이나 가죽과 기타 도구 등의 쓸모 있는 물건들을 얻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다. 오늘날 인간을 위해 존재하다는 명제에 가장 부합되는 동물은 반려동물일 것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노동, 양식, 가죽을 제공하지 않는다. 반려동물은 효용보다는 즐거움을 위해 키우는 가축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반려동물의 필수조건은 효용이 아니라 무용이라고 믿고 있다. 오로지 사람의 정서적 위안을 위해 존재하고, 오늘날 반려동물은 종교 다음으로 사람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는 존재로 부상했다. (박민영 『즐거움의 가치사전』)

최소 12000년 전부터 가축화 되었던 개와는 달리, 고양이의 인간과의 관계는 약 5000여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 대부분의 기간도 인간의 주거 구역에서 창궐하는 쥐를 잡아 먹어서 인간에게 식량 조달을 쉽게 해주는 '공생'의 형태로 지내왔다. 제러드 다이아먼드(총,균,쇠: 銃,菌,釗)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기에 좋은 동물은, 성격이 순하고 먹이가 까다롭지 않으며 인간과 같이 지내도 불안함을 적게 느끼며 인간의 손 아래 번식이 잘 이루어지는 동물들이라 하였다. 야생에서 무리를 짓는 특성을 가진 동물은 우두머리를 따르는 습성이 있어 인간을 따르게 하기 쉽고, 초식이나 잡식성 동물은 기르는데 비용이 적게 든다. 육식성 동물은 인간이 먹을 고기도 부족하니 먹이를 주며 기르기엔 좋을 리도 없고 성격도 흉폭하다. 그러니 개보다 작은 몸집에 야생적인 사냥본능과 공격본능이 있고 큰 귀, 날카로운 송곳니를 갖춘 완전한 육식성 동물인 고양이를 반려동물화 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들었을 것이다.

고양이와 인간과의 관계는 가족의 개념이며,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된다고 한다. 고양이는 별다른 교육 없이도 자신의 주인을 어미처럼 인식하거나, 아무리 낮더라도 같은 무리의 소속원으로 취급하며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이다. 상하복종관계가 확실한 개와 정 반대되는 개념이다. 개는 품에 안고 있으면 대체로 꽤 오랜 시간 얌전히 있는 편이지만, 고양이는 몇 분을 버티지 못하고 빠져 나가려고 아둥바둥거린다. 반면에 주인이 자기를 내버려두고 다른 일에 열중할 경우에는, 안절부절하며 주인의 주의를 끌려고 필사적이 된다. 그러나 자주 보면서 먹을 것을 주고 귀찮게 하지 않으며 고양이와 친해지면, 애교 부리면서 같이 놀기를 좋아하고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는다.

우리 집 고양이를 입양시켰고 녀석을 책임지고 양육하겠다던 두 딸은 수도권의 대학으로 진학 후 모두 집을 떠났고, 집에는 우리 부부와 고양이만 남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인적이 없는 아파트의 주인 노릇을 하는 녀석은 우리가 저녁에 퇴근을 하면 아파트 문 입구로 나와 뒹굴며 온갖 애교를 떤다. 그러나 참치 통조림 한 조각을 얻어먹고 배가 그득해지거나, 주변에서 다른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면 순식간에 몸을 숨겨버린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잠자리에 들 때쯤에는 슬그머니 나타나서는 머리를 나의 다리에 문지르거나 배를 긁어달라고 보채면서 다시 그르렁거린다. 집사람은 아이 키우듯이 고양이 집, 사료, 배설물 통, 장난감등을 사서 날랐고 녀석의 비위를 맞추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이렇게 우리 집의 유일한 어린이 겸 어른 역할을 하며 산지 10년이 되었으니 고양이의 수명으로 녀석의 나이가 인간의 수명으로는 50대 후반으로 가는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이제 나도 개동이의 눈빛을 보고 그 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된 수준에 도달했고, 개동이도 언제 쯤 어떻게 행동하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와 그녀 사이에서는 가끔 신경전이 벌여지기도 하나, 서로 암묵적으로 통하는 눈짓도 있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내가 수집한 종들 중에는 언제 구입한지도 모르는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종들도 어느새 20개가 넘은 것 같다.

※ 이재태의 종 이야기 이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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