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 수술과 전립선 암, 연관 있나 없나
정관수술을 하면 전립선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질까. 수십 년간 되풀이돼 온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지금까지도 의료계에서 엇갈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최근 정관수술을 받은 남성의 경우 치명적인 전립선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놔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연구팀은 4만9400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24년간 자료를 분석해 이 같은 답을 제시했다. 분석 대상 남성 중 6천명에게 전립선암이 발생했고, 암이 발병한 이들 가운데 811명은 치명적인 암이었다. 정관수술을 받은 남성은 전체의 25%를 차지했는데, 이들은 수술 받지 않은 남성들보다 전립선암의 위험이 10% 높았다. 특히 온건한 전립선암에서는 연관성을 보이지 않은 반면, 진행성 전립선암과 치명적 전립선암에서는 위험도가 각각 20%, 19%씩 늘었다.
흥미로운 것은 전립선특이항원(PSA)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 정관수술을 한 남성의 경우 치명적 전립선암의 위험이 56%나 증가했다. 연구팀은 “젊은 시기에 정관수술을 받은 남성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강했다”면서도 “이 연구결과를 임상적으로 사용하려면 관련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러한 전립선암과 정관수술의 연관성 논란은 지난 1993년 미국 브리그햄병원의 조반누치 박사가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조반누치 박사는 연구를 위해 정관수술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각각 2만2천명씩 장기간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정관수술을 받은 남성군에서는 113명이 전립선암에 걸린 반면, 수술을 받지 않은 남성군에서는 70명만 전립선암에 걸렸다. 조반누치 박사는 “정관수술을 받은 지 15~20년이 지난 뒤부터 전립선암 발생의 위험이 높아졌다”며 “정관수술 후 전립선 분비능력이 떨어지는지, 종양면역기능이 저해되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반누치 박사의 연구에 앞서서도 전립선암과 정관수술의 연관성을 밝히려는 연구는 미국에서 7건 정도 진행됐다. 이 중 4건은 연관이 있다, 3건은 연관이 없다는 엇갈린 결과를 보였다. 학계에 따르면 하버드팀의 이번 연구결과 전에도 전립선암 발병률이 높은 미국과 유럽, 뉴질랜드 등에서는 정관수술과 전립선암이 무관하다는 발표들이 잇따랐다.
비뇨기과 전문의들은 하버드팀의 연구에서 나타난 것처럼 일찍이 정관수술을 한 사람들일수록 PSA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다는 점을 눈 여겨 보고 있다. 연세크라운비뇨기과 임헌관 원장은 “정관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수술 후 무정자증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정기검진이 필수적”이라며 “초기 증세가 거의 없는 전립선암은 이러한 정기검진이 없다면 조기에 발견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정관수술이 전립선암 조기발견과 치료의 계기가 된 셈”이라고 했다. 정관수술을 한 남성들의 조기검진으로 이들의 전립선암이 많이 발견돼 전립선암 발병 위험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