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화가 ‘달리의 나라’에서 부활한 앨리스
●이재태의 종 이야기(4)
달리랜드의 앨리스 (Alice in DaliLand)
오늘은 천재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와 관련된 종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한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은 워낙 독특하고, 현대 회화사적 기준에서도 중요하며 획기적이다.
사실 미술에 별 다른 조예가 없는 내가 달리에 처음 관심을 둔 이유는 1970년경 달리가 만들었던 “달리랜드의 앨리스(Alice in DaliLand)“라는 은종(silver bell) 때문이었다. 달리가 월트 디즈니와 협동 작업을 할 때, 잘 알려진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를 모티브로 하고, 거기에 자기의 상상력을 더하여 제작한 은종이며, "달리 영토의 앨리스" 란 뜻이 된다. 긴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 양손에 줄을 든 모습이며 치마자락에 물결 모양과 꽃잎 무늬가 장식되어있고, 치마 중심부에 횡으로 그려진 허리띄에는 "SD+G"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Salvador Dali(SD) 와 그의 아내인 Gala(G)의 약자이다. 프랭클린민트 회사를 통하여 1000개 한정으로 만들어졌고, 나도 오랬동안 노력한 끝에 천재 예술가 달리가 조각한 은종을 구입하였기에 2014년 충북 진천종박물관의 "내가 사랑하는 종: My Favorite Bells" 기획전에 전시하고 있다.
(Alice in DaliLand, 높이 16,2, 직경 7,2 cm, 234gm)
1904년 5월 11일 스페인의 피게라스에서 출생한 달리는 14세 때부터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하였으나 괴팍하고 과격한 성격 때문에 결국 1926년에 퇴학을 당하였다. 그러나. 감수성이 강하였던 그는 소년시기에 일찍 예술에 눈을 떴고, 인상파, 점묘파, 미래파의 특징을 터득하고 입체파, 형이상 회화 등의 감화를 받으며 일찍부터 다양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5년경부터는 르네상스 예술의 영향을 받은 정밀한 세부묘사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으나, 이후에는 정신 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이론에 공감하여 의식 속의 꿈이나 환상의 세계를 자상하게 표현한 초현실적(Surrealism)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초현실파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그의 대표작품인 '기억의 지속'은 1931년에 탄생하였으며 이후 1950년 초까지는 밀레의 만종에 영감을 얻은 그림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다수의 초현실파 그림들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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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지속 (1931년작) : 그를 유명하게 만든 초현실파적 그림. 멀리 바다와 해안선, 항구, 절벽 풍경이 보이고, 앙상한 나뭇가지와 각진 모서리의 판, 신체 일부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시계, 개미떼가 올라타있는 주황색 회중시계가 있다. 이 그림에는 프로이드의 영향을 받아서 억제하고 있는 욕망을 나타내었고, 개미가 올라가있는 회중시계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 세대의 중고등학교 미술책에 항상 있었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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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 대전을 겪은 달리는 이후 미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초현실주의마저도 넘어 버렸고 초현실을 넘어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의 예술적인 능력은 그림 뿐만 아니라 영화, 건축, 사진, 패션등 많은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가능케하였는데, 특히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그의 예술적 끼를 발휘하였다. 월트 디즈니와 에니메이션을 응용한 작품 활동, 알프레드 히치콕크와 협동한 영화 활동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평론가들은 이 시기의 활동을 초현실파 화가로서의 활동보다 평가절하하기는 하나, 그의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20세기 중후반기의 활동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달리는 상상력이 엄청 풍부했으며 독특하고 엄청난 스케일의 다채로운 경험을 즐겼기에, 그의 행동은 가끔 그의 작품보다 더 주목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많은 비판자들을 만들었고, 초기 그의 작품세계를 아꼈던 추종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기도 하였다.
그의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은 러시아 출신의 그의 아내 갈라(Gala)이다. 우리 기준으로는 애처가보다는 거의 공처가라 불릴 정도로, 달리는 이 연인에 헌신하였다. 그가 처음 갈라를 만났을 때, 그녀는 달리를 후원하던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10년 연상이었는데도 달리는 첫눈에 갈라에게 정신을 빼았겼다고 한다. 나의 눈높이로 사진을 보았을 때는 그녀는 미인과는 거리가 먼 길쭉한 얼굴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으로 구애하는 달리에게 갈라도 곧 마음을 열게 되었고, 둘은 바로 사랑에 빠져 동거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갈라는 달리의 열쇠이자, 하늘이자, 땅이었다고 한다. 갈라는 달리라는 남자를 만나 "허공에 붕붕 떠다니는 천재를 지상의 천재"로 만드는데 온 인생을 바쳤다고 알려져있다. 갈라를 만나기 전의 달리와 그녀를 만난 후의 달리의 생각과 인생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달리의 사랑은 유아적이고 맹목적이었고, 노년의 갈라가 병원에 입원하자 그녀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의사의 가운에 매달려 심각하게 울부짖어, 초현실주의 그룹 전체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갈라는 89세의 나이로 달리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고, 달리는 갈라를 생전에 그녀에게 선물하였던 푸볼 성에 안치시키고 매우 불안한 만년을 보냈다. 이후 이 천재의 일상 생활은 피폐화되었고, 파킨슨병과 자살 기도, 침실 화재로 인한 수술을 받으면서 힘든 노년을 보냈고, 84세에 갈라의 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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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살바도르 달리와 그의 부인 갈라)
달리는 자신의 태아였을 때를 기억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자신의 다니던 학교에서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평가를 거부하는 듯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을 천재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니던 괴짜였다. 하지만 그의 이런 자만에 가득찬 자신감이 불쾌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당연히 자신에 말에 책임을 질 만한 많은 걸작들과 문화 예술 업적을 쌓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는 “광기 아니면 삶!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늙어 죽을 때까지 생생히 살아 있을 나와 광인의 차이는 내가 광인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말년까지도 자신이 천재라고 거침없이 주장을 하였다.
그가 쓴 자서전에는 여러 명의 유명한 화가들을 다양한 항목으로 구분하여 1-20 의 점수를 매긴 비교평가표를 넣어두었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벨라스케스, 라파엘로, 베르메르 정도가 15점 정도로 비교적 좋은 점수를 주었고, 자기에게는 거의 19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어 최고의 화가라고 썼다. 그러나 피카소에게는 신비적 요소가 2점, 19세기 말 인상파 화가 마네는 천재성이 0점, 긴 얼굴 인물을 그린 모드리안은 0점이 6개라고 자신있게 썼다.
195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온 달리는 다양한 영역과 협동하고, 때로는 크로스오버를 하였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하여 애니메이션 작업에도 참여하고 디즈니랜드를 만든 월트디즈니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동화 모티브의 작품을 남겼다. 이 시기에 자기의 얼굴과 월트 디즈니의 얼굴을 그린 애니메이션 같은 작품들도 몇 점 남아 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 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다수 발표하였다. 그는 상상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재미있고 생동감 넘치는 일들을 그의 감정으로 다시 해석하고, 환상적인 색채로 표현한 다양한 그림들을 남겼다. 엘리스를 재해석한 조각품들도 남아있는데, ”달리핸드의 앨리스“라 명명된 이 은종도 이 시기의 달리의 크로스오버 시기에 제작이 된 것이다. 습기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은도금이 산화하여 녹이 잘 쓰기 때문에 자주 정성스럽게 얼굴을 닦아주어야 만, 앨리스의 얼굴에 묻어있는 달리의 숨길을 느껴볼 수 있다.
(달리와 디즈니 얼굴을 그린 동화같은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던 그림(위)과 조각 작품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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