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품값 절감 장려비 제도’ 설명회 큰 관심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강당. 병원 약제팀과 제약사, 약국 관계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약품비 절감 장려금 제도(이하 장려금제)’에 대한 정부의 설명을 듣는 자리였다. 강당도 모자라 맞은편 구내식당까지 빼곡히 채울 만큼 의약계는 민감했다. 약값 규제를 위한 정부 정책이 주먹구구식이라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실패한 ‘시장형 실거래가제’
약값이 건강보험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이다. 정부는 약값의 실거래가를 파악해 해마다 상한가를 떨어뜨린다. 약값이 떨어지면 건강보험 재정은 건실해지고, 보장성이 강화돼 환자들에게 이익이다. 병원이 약을 싸게 사서 처방하면 가능해진다. 하지만 처방과 조제를 분리한 의약분업을 실시하면서 병원의 약품 구매 차익은 불법이 됐다. 저수가 체계의 반대급부가 사라진 셈이다.
이후 병원들이 싸게 산 약품을 상한가로 신고해 뒷돈을 챙기고, 리베이트를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졌다. 약품 유통구조는 여전히 불투명해 실거래를 파악하기는커녕 건강보험 재정 절감 효과도 미미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는 2010년 10월 ‘시장형 실거래가제’를 도입했다. 약품을 상한가보다 싸게 산 병원에게 차액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돌려줬다. 이 지급률은 70%에 이른다.
하지만 제도적 허점이 많았다. 차액을 키우기 위해 병원은 지나친 약품 할인을 요구했고, 제약사들의 과다 경쟁 속에 약 한 알을 1원에 낙찰받는 기형적인 초저가 낙찰이 등장했다. 한편으론 리베이트 쌍벌제의 돌파구가 됐다. 제약사들이 1원 입찰을 해도 병원 처방 품목에 등재된 약품은 결국 약국에서 정상가에 팔리기 때문이다. 유통 구조상 약품 매출의 80%는 약국에서 발생한다.
국민 세금인 건강보험 재정으로 병원의 배를 불리고, 불법 리베이트를 양성화한다는 비난 속에 시행 1년여 만인 2012년 2월부터 유예된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올 해 2월 부활됐다. 약값의 실거래가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 등에 따른 조치였다. 그 사이 정부는 여론을 수렴해 이 제도의 맹점을 수정, 보완했다. 이렇게 건강보험법 시행령을 다시 고쳐 입법예고한 제도가 바로 장려금제이다.
‘장려금제’, 무엇을 보완했나
반기별로 지급되는 장려금제는 병의원의 저가구매뿐 아니라 약품 사용량을 줄이려는 노력도 평가한다. 상한가보다 약품을 싸게 사면 차액의 10~30%(기본지급률 20%)를 돌려주고, 약품 사용량을 줄여 기대치보다 약품비를 절감하면 차액의 10~50%(기본지급률 35%)를 장려금으로 더해준다. 현행 시장형 실거래가제보다 저가구매 인센티브의 폭은 줄이되 약품비 절감 노력을 고려해 장려금을 차등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장려금 지급대상도 병의원에서 약국까지 확대됐다. 약국의 경우 저가구매에 따른 인센티브와 대체조제 장려금이 주어진다. 장려금제 설명회에서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이윤신 사무관은 “치과와 한방 병의원은 약품비 비중이 적어 단계적 도입을 고려할 것”이라며 “요양병원과 조산원, 보건소, 보건지소도 제외됐다”고 말했다. 이들 기관은 저가구매에 따른 인센티브 기본지급률 20%만 받게 된다.
이와 함께 병원급 이상은 9개 진료과목이 장려금 산출대상에서 빠졌다. 이 사무관은 “현행 외래처방 인센티브에서 약품비 비중이 작고, 처방이 일반적이 않아 제외됐던 과목들은 이번에도 빼기로 방침을 정했다”며 “이에 대한 병원협회의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해당과목은 핵의학과, 성형외과, 영상의학과, 직업환경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진단검사의학과, 병리과, 결핵과, 예방의학과이다.
무엇보다 새로 시행될 장려금제는 병의원이 약품을 저가구매해도 사용량 감소 노력이 부족해 처방한 약품비가 높으면 장려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를 위해 약품고가도지표(PCI)가 활용된다. PCI는 처방 품목 수와 저가약 처방 횟수 등 처방행태를 종합해 요양기관 종류별로 상대비교한 뒤 산출된다. PCI 수준에 따라 장려금의 지급률이 달라진다. 입원 PCI와 외래 PCI 중 하나라도 절감하면 장려금 대상에 포함되며, 의원의 입원 PCI는 병원과 동일하게 환자당 약품비가 아니라 투약일당 약품비로 산출된다.
제약업계는 장려금제의 성패가 PCI에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제약협회는 설명회에 앞선 지난 18일, “PCI를 산출할 때 가격요소를 빼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PCI에 실거래가를 반영하면 종전처럼 병원들이 가격을 후려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이 사무관은 이에 대해 “PCI 산출기준은 상한가”라고 분명히 밝혔다.
약가인하 방향과 병원.제약계 반론
장려금제가 시행되면 정부의 실거래가 조사와 약가인하 방법도 달라진다. 정부는 명세서 등 요양급여 청구내역에서 약품 공급내역 중심으로 조사방향을 바꿔 약가인하 메커니즘을 강화할 방침이다. 요양기관은 물론 의약품 공급업자까지 조사대상이 확대되고,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 현지 확인 권한이 주어진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평가 이후 장려금을 지급하는 한편, 올해 2월부터 내년 1월까지 실거래가를 조사해 내년 말 약값 인하를 단행할 계획이다. 이 사무관은 “실거래가 평균가격으로 상한가의 10% 이내에서 약값을 인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연구개발 투자액이 전년 기준 50억원 이상인 우수기업에게 주어졌던 약가 인하율 감면혜택은 인증된 혁신형 제약기업만 받을 수 있게 된다. 현행 30~60%인 인하율 감면혜택은 장려금제에서 30%로 제한된다.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된 곳은 현재 총 41곳이며, 정부는 올해 7곳을 추가 선정할 예정이다.
다각적인 보완에도 불구하고 장려금제에 대한 제약업계의 반론은 만만치 않다. 제약협회는 특허만료로 30% 약가인하가 예정된 약품 등은 저가구매 장려금 대상에서 빼달라는 입장이다. 협회는 “약가 인하율 10%를 상쇄하고도 남아 중복 적용되면 불공평할뿐더러 건강보험 재정만 낭비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특허 약품을 제외해 달라고 제안하고 있다. 제약업계는 또 인하율 감면혜택을 혁신형 제약기업에만 한정해서 주면 선정되지 못한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 동기를 저해할 수 있다며 형평성을 고려해 현행대로 존치해 줄 것도 요구하고 있다.
대형병원의 장려금 독식구조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지난해 발표된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저가구매 인센티브로 나간 금액은 2339억원으로, 건강보험 재정 절감액(738~1878억원)을 크게 웃돌아 건강보험 재정에 손해를 끼쳤다. 특히 인센티브의 91% 이상은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의 몫이었다. 장려금제에서도 PCI 2.0을 넘어 장려금을 못 받는 대형병원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제약업계는 전망한다. 이러면 대형병원은 가만히 앉아서 저가구매 장려금을 챙기게 된다. KRPIA 김선호 전무는 심평원 설명회에서 “저가구매 장려금은 삭제해야 한다”며 “이는 약제비 상환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병원계는 사용량 절감 장려금의 모순점을 지적한다. 전년을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해마다 사용량을 줄였다 늘리는 방식으로 장려금을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심평원은 이러한 ‘파도타기식’ 청구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심평원 관계자는 “제도적 패널티가 없지만,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복지부와 상의해 보완책을 찾겠다”고 했다. 약국에게 주어질 대체조제 장려금도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약사법상 의사나 치과의사의 사전 동의 없는 대체조제는 불법”이라며, 대체조제 거부운동과 더불어 환자들을 대상으로 대체조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