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 기억 되살린다” 새로운 뇌의학 선도
“돋보기로 햇볕을 모아 종이에 불을 붙이듯, 초음파를 모아 뇌의 특정부위를 지져 손떨림증, 파킨슨병, 강박장애를 치유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오전8시 미국 워싱턴DC의 르네상스 호텔에서 열린 미국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ASSFN)의 학술대회. ‘기능신경외과의 과거, 현재, 미래’란 제목의 오프닝세션에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장진우 교수는 ‘고집적 초음파 뇌수술의 미래’에 대해 특강해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의사 600여 명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 특강에서 세계 처음으로 파킨슨병과 강박장애 환자, 세계 두 번째로 수전증 환자에게 고집적 초음파 뇌수술을 시행한 결과에 대해 발표했다. 미국고집적초음파연구재단과 마이클 제이 폭스 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고 있는 연구였다.
장 교수는 기능신경외과학의 세계적 대가다. 신경외과는 뇌와 신경계, 척추 등을 수술하는 분야. 이 가운데 뇌신경계의 미세한 이상 때문에 인체의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된 것을 수술로 치료하는 분야가 ‘기능신경외과학’이다. 기능신경외과학 중 컴퓨터로 뇌의 이상 부위를 찾아서 수학의 3차원 좌표 원리에 따라 수술하는 분야를 ‘정위기능신경외과학’이라고 부른다.
장 교수는 1996년 미국 시카고대로 연수를 가서 2년 동안 주말을 잊고 파킨슨병의 동물실험과 유전자 치료 등의 연구에 매달렸다. 1998년 귀국해서는 “매년 국제 권위지에 최소 5편의 논문을 쓰겠다”고 공언했다. 다른 교수들은 “용기는 가상치만…”이라는 반응이었다. 당시 의사들이 국제학술지에 한 해 한 편의 논문도 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 교수는 이듬해부터 이 약속을 지켜 매년 5~8편, 지금까지 130 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정위기능신경외과학지’, ‘신경조절’ 등 국제 학술지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장 교수는 한 해 얼굴경련 및 3차신경통, 파킨슨병, 근긴장 이상증, 수전증, 난치성 간질, 강박장애 환자 등 350여 명을 수술로 고친다. 매주 150여 명의 외래환자를 진료한다. 또 연세대 신경외과 주임교수와 뇌연구소 소장으로 행정과 교육까지 책임지고 있다. 이 같은 진료, 수술, 강의 등의 일정 때문에 1초, 1분을 아껴 쓴다. 매일 5시에 일어나 6시 이전에 병원으로 향하고 토, 일요일에도 공식 행사가 없으면 병원으로 향한다.
그는 세계 각국의 주요 학회와 대학의 특강 요청을 거르고 걸러 한 해 평균 7~8회의 해외 출장을 가지만 ‘2박4일,’ ‘3박5일’ 등의 강행군으로 다녀온다. ASSFN 학술대회도 토요일 낮에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화요일 오후 귀국하는 ‘2박4일’의 일정이었다. 기내가 ‘침실’이 될 수밖에 없다.
장 교수는 2000년 2월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 전극을 심어 자극, 운동장애를 치료하는 ‘뇌심부자극수술(DBS)’을 국내 첫 성공했고, 강박장애 환자에 대한 뇌심부자극수술, 경직 환자에 대한 바클로펜 펌프의 삽입술, 중증 난청 환자에 대한 뇌간 청신경핵 자극수술 등 수많은 수술을 국내 최초로 시행했다.
장 교수는 국제복원신경외과학회 회장, 아시아태평양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 회장, 세계신경외과학회 신경재생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지난해 세계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의 사무총장 겸 재무이사로 선임됐다. 대한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 회장, 대한신경외과학회 학술위원장, 대한통증연구학회 회장 등을 맡아 국내 학문의 발전도 이끌고 있다. 그는 2004년부터 서울대 공대 초미세생체전자시스템연구센터 김성준 교수팀과 함께 DBS의 국산화 프로젝트를 수행해 시제품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DBS는 뇌의 위치만 파악해서 자극을 줬지만 최근에는 뇌의 전기신호를 해독해서 자극의 강도와 주기 등을 조절하는 첨단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기능신경외과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파킨슨병과 각종 운동장애, 간질, 만성통증, 손떨림증 등의 증세를 개선하는 것이 초점이었다면 뇌기능을 복원하는 것으로 치료의 방향이 이동하고 있지요. 치매 환자의 기억력을 되살리거나 우울증과 각종 중독을 치유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뇌에 컴퓨터장치를 심어 로봇 팔다리를 움직이게 한다든지, 말을 하게 하는 것이 가능해지지요. 줄기세포를 이식해서 여러 병을 근원적으로 고치는 것도 머나먼 미래의 일은 아닙니다. 새로 펼쳐지는 뇌의 세계에서 세계 각국의 학자들이 선의의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 분야를 이끌어가는 것, 멋지지 않습니까? 제가 하루 종일 병원과 연구현장을 떠날 수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