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미안해? 참 이상한 한국 환자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종식 교수는 캐나다의 최고 의료기관에서 의술을 펼치다 국내로 되돌아온 의사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의학자들과 함께 파킨슨병의 메커니즘에 대해 연구하면서 줄기세포치료, 유전자치료 등을 이끌고 있다.
이 교수는 서울대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인턴을 마친 뒤 부모를 따라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미국에서 의사 자격증을 땄고, 의대생 때부터 흥미로웠던 ‘뇌 의학’을 전공하기 위해 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병원 신경과에 지원했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이 교수는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병원에서 말 대신 몸으로 움직여야 했다. 영어가 달려 응급실에서 비상호출을 받으면 전화 통화를 포기하고 무조건 달려갔다. 늘 예스, 노가 헷갈렸고 숫자를 금세 이해하지 못해 늘 머뭇거려야 했다. 그러면서 “살아남아야 한다”를 되뇄고, 결국 살아남아 교수직에 올랐다.
당시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신경과에서는 양전자단층촬영(PET)으로 파킨슨병을 연구하는 도널드 칸 교수가 있었다. 칸 교수는 영국 출신으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을 거쳐 캐나다에 둥지를 튼 뇌영상 연구의 대가였다. 스웨덴에서 온 과학자들은 도파민 세포를 이식해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 교수는 여기에 매혹돼 신경과의 여러 분야 중 파킨슨병을 전공하기로 결심했고 칸 교수의 문하로 들어갔다.
그는 칸 교수 아래에서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다가 스웨덴 룬드 대학교로 연수를 가 안더스 뵤클런드 교수의 문하로 파킨슨병의 세포이식 치료법에 대해 연구했다. 이 교수는 쥐에게 특정 약물을 투여해 파킨슨병을 발생시킨 뒤 도파민 세포를 넣어 좋아지기까지의 전과정을 역구해서 국제학술지 ‘브레인’에 발표하는 등 굵직한 논문들을 쏟아냈다. 그는 1997년 서울대의대 동창회가 선정하는 ‘함춘 의학상’의 첫 해외 부문 수장자로 뽑히면서 국내 의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교수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로 돌아와서 차곡차곡 연구 성과를 쌓았지만 임상에서 한계를 느꼈다. 그곳 보험시스템 때문에 환자의 영상사진 한 장 찍으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했다. 다른 병 환자에 밀려 파킨슨병 환자를 입원 진료하는 것도 언감생심이었다. 마침 모국에서 파킨슨병 환자가 늘어나서 골치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2005년 일본 교토에서 준텐도 의대의 요시 미즈노 교수가 개최한 학회에 참석했다가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신경과 이명종 교수를 만난 뒤 고국으로 돌아와 의술을 펼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밴쿠버 발, 서울 행 항공권을 끊었다.
“캐나다에서는 1주일에 40~50명의 환자만 보면 됩니다. 첫 환자는 1시간까지 볼 수가 있어요. 연구시간이 보장되고 연구에 대한 체계적 행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40여 명씩 1주일에 200명에 가까운 환자를 봅니다. 처음에는 헉헉댔지요. 연구도 환자를 보면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합니다. 개인보다 조직을 중시하는 문화도 처음엔 이질적이었어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의사가 성심껏 환자를 치료할 수 있고 병원에서 뒷받침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교수에게 한국 환자의 문화도 낯설었다. 병에 대한 정보는 없고 근심이 많았다. 대부분의 환자가 자기를 치료해온 의사 이름도, 약 이름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약에 부작용은 없는지, 자식에게 언제까지 폐를 끼칠지, 치매가 오면 어떡하나 걱정 투성이였다. 환자들은 당연한 권리이지만 짧은 진료시간을 의식해서인지 의사에게 병에 대해 묻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다. 환자들은 당연한 질문을 “물어봐도 됩니까?”하고 입을 뗐다.
“환자에게 원하는 것과 궁금한 것을 다 들어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당연히 환자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지요. 환자들에게 정해진 대로 2~3분 진료시간을 지키는 것이 좋을지, 좀 기다리더라도 할 말 다하는 것이 좋을지 물었더니 후자가 좋다고 하더군요. 못 들은 것은 상당간호사에게 궁금증을 풀 게 하고 간호사가 대답할 수없는 것은 나중에 제가 다시 알려주지요.”
이 교수는 “인터넷에서 파킨슨병은 불치병이니 약을 먹으면 온갖 부작용에 시달린다는 등 온갖 소문이 떠돌고 있지만 파킨슨병은 당뇨병, 고혈압처럼 약과 생활요법을 통해서 충분히 관리가 가능한 병”이라고 단언한다. 간혹 약이 듣지 않은 경우에도 뇌심부자극술 등을 통해 증세를 개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파킨슨병과 유사한 다계통위축증, 진행성핵상마비, 파킨슨치매 등 ‘파킨슨증후군’은 치료가 힘들지만 이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 그는 일반인의 파킨슨병에 대한 오해를 씻으려고 2007년 하버드대 의대에서 출판한 파킨슨병 안내서를 번역한 ‘사랑으로 치유하는 파킨슨병’을 출판한 데 이어 조만간 새 책을 낼 예정이다.
이 교수는 현재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차병원, 세브란스병원 등과 함께 줄기세포로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또 세계 각국의 우수한 연구진과 함께 파킨슨병을 보다 효과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미국 파인슈타인연구소. 데이빗 아이델버그 박사와 PET과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을 이용해서 파킨슨병과 파킨슨증후군을 구별하고 줄기세포와 약의 치료효과를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스웨덴 룬드 연구소 데니스 키릭 박사와는 파킨슨병의 유전자 치료법에 대해서, 국제파킨슨병 및 관련질환학회 회장인 네덜란드의 에릭 윌터스 박스와는 파킨슨병의 세포치료에 대해서 공동으로 연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