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생기를....영양 만점, 감자전복 고로케
● 한주연의 꽃피는 밥상(4)
눈앞에 찐감자가 있었다. 평소 어머니가 간식으로 가져오면 ‘호랑이는 풀을 먹지 않는다’며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그날 배가 너무 고팠다. 호랑이도 배가 고파 미칠 정도면 풀을 먹는다! ‘이것이 감자’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머니가 살짝 소금 뿌려 쪄낸 감자가 입에 들어갔다. ‘아차 이건 내가 안 먹는…’하는 찰나에 묘한 흙냄새와 함께 단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두 세 개가 연거푸 들어갔다. 고구마는 물 없이 못 먹는데, 감자 속살은 살살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녹아들어갔다.
한 번 경험하면 두 번, 세 번은 자연스러운 법. 그날 이후로 1년 내내 매일 찐 감자를 먹었다. 간식으로도 틈틈이 먹고 밥 대신으로도 먹었다. 싱거운 듯, 단맛이 나는 포삭포삭한 질감과 더불어 살았다. 배만 채웠을 따름인데 통통했던 살이 빠지면서 여드름이 사라졌다. 피부색도 감자의 뽀얀 속살처럼 맑아져갔다. 여중2학년 때 별명이 ‘통통이’, ‘멍게’에서 ‘말라깽이’로 바뀌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어렸을 때 첫 경험 탓일까? 감자에서는 흙이 느껴진다. 굽거나 삶고 튀겨도 흙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강원도 감자에서는 비탈길 노지의 맨흙, 제주감자에서는 새까만 흙, 호남 감자에서는 붉은 황토의 기운이 느껴진다. 감자의 색깔과 맛은 닮았다. 강원 감자는 구수하면서도 단맛이 서려있는 깊은 맛이다. 제주 감자에서는 산뜻한 바다흙 냄새가 녹아있어 통통 가벼운 맛이 있다. 제주 햇감자에는 바다의 기운이 배어있어서인지, 소금 없이 먹으면 풍성한 흙 내음이 더 강하다.
감자의 유전자에는 안데스 고원의 흙냄새가 새겨져 있다. 감자는 7000년 전부터 남미 인디언들의 허기를 달래다가 16세기 스페인의 남미 침략 때 유럽에 전파됐다. 유럽 사람들은 감자가 울퉁불퉁 못생긴데다가 성경에 없는 곡물이어서 ‘악마의 선물’로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열량과 영양소가 풍부하고 온갖 곳에서도 잘 자라 유럽 전역으로 퍼져갔다. 우리나라에는 19세기 초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
요즘 감자는 노지뿐 아니라 비닐하우스에서도 재배되기 때문에 철이 따로 없지만, 지역별로는 출하시기가 다르다. 강원 노지 감자는 8~10월에 본격 출하된다. 오뉴월에는 제주 노지 감자가 한창이고 영호남 노지 감자가 선보이기 시작한다. 제주에서 노인들에게 ‘감자’를 달라고 하면 고구마를 받기 십상이다. 제주에서는 고구마를 감자 또는 감저로 부르고, 감자는 지실 또는 지슬로 불러왔다.
감자는 탄수화물뿐 아니라 단백질, 비타민, 식이섬유와 각종 무기질이 풍부하다. 비타민C가 녹말 입자 사이 켜켜이 스며있기 때문에 열에 견디는 힘이 강해 익혀도 살아남는다. 세계적으로 감자는 다양하게 조리해서 먹는다. 강원도에는 감자전, 감자옹심이, 감자송편, 감자만두 등 다양한 향토요리가 있다. 감자탕의 감자는 원래 돼지등뼈 안쪽 뼈와 뼈 사이에 물렁뼈처럼 보이는 노란 힘줄을 가리켰는데, “감자탕에 왜 감자가 없냐?”고 화내는 손님 때문에 곡물 감자가 감자탕의 안주인이 되기도 했다.
감자는 고로케의 주재료이기도 하다. 고로케는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 빵 크로켓의 일본 용어다. 프랑스에서 고기나 야채를 넣고 끓인 ‘라구(Ragout)’에 빵가루와 향신료를 묻혀 튀긴 것이 네덜란드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 가 현지화된 것. 크로켓(Croquette)은 ‘입으로 물다’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Croquer’에서 왔다.
많은 사람이 고로케하면 기름기 좔좔 흐르는 일본 것을 떠올리지만, 요리법에 따라 열량은 최소화하면서 맛과 영양은 최상인 ‘건강 고로케’도 충분히 가능하다. 제주 감자는 짧은 시간에 익으므로 여기에다 전복, 당근, 양파를 넣어 만들면 기름기는 거의 없으면서 고소한 감자 맛에 짭짜름한 바다의 향, 싱싱한 채소 향이 섞인 영양 간식이 태어난다.
전복은 잘 알려진 대로 비타민과 칼륨, 칼슘, 인 등 무기질이 푼푼한 영양의 보고다. 타우린, 베타인, 아르기닌 등이 풍부해서 간 해독, 소화 촉진, 신경 안정, 혈관질환 예방 등에 효과적이다. 남성 정력을 강화하는 해산물로도 유명한데 정액의 주요성분인 아르기닌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당근은 비타민과 섬유질 덩어리이고 양파는 뇌와 혈관 건강에 최고인 채소로 알려져 있다. 제주에서는 당근과 햇양파가 제철이다.
살짝 삶아 으깬 감자, 채로 썰어 슬쩍 볶은 전복 살, 조각조각의 당근과 양파를 조몰락조몰락 뭉쳐 살살 빚은 ‘완전식품’을 한 입 넣어 볼까? 한라산 자락 비탈밭의 검은 흙 내음과 성산포 앞바다 소금향이 번지면서 온몸에 생기가 쫘~악 퍼지겠지?
감자전복 고로케
재료(4인분) : 24개 분량
감자 중간크기 3개(600g), 전복 3마리(150g), 당근 1/4개(30g), 양파 1/4개(30g), 녹말가루 1컵, 빵가루 1컵, 달걀 2개, 소금 1.5t, 참기름 1/2t, 식용유 5컵(1L), 물 5컵(1L)
*고로케 양념 : 소금 1t, 후춧가루 약간
*초간장소스 : 진간장 1/2T, 물 1/2T, 식초 1/2T, 설탕 1/4T, 깨소금 1/4T
만들기
① 전복은 흐르는 물에 검은 살 부분을 솔로 깨끗이 문질러 씻는다. 칼이나 숟가락을 껍질안 내장이 붙어있는 쪽으로 집어넣어 살살 도려내듯이 발라내고, 딱딱하고 빨간 ‘이빨’ 부분을 칼로 제거한다.
② 감자는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지 않고 길이로 4등분해 썬다. 당근과 양파는 잘게 다져 썬다. 전복 살은 0.2㎝ 두께로 썬다.
③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감자를 10분 정도 삶는다. 체에 받쳐 식기 전 뜨거운 상태에서 껍질을 벗긴다. 살짝 손톱만 대도 껍질이 스르르 벗겨진다. 삶지 않고 쪄도 되는데, 찔 때는 찜기에 젖은 면보를 깔고 감자 위에 소금을 뿌려서 10분 정도 기다린다.
④ 전복 살은 참기름과 소금 1g을 넣고 센 불에서 슬쩍 재빨리 볶는다. 양파와 당근도 각각 식용유 3㎖(1/2t 정도)를 두른 후 소금 1g씩을 넣고 재빨리 볶는다.
⑤ 감자가 식으면 작은 덩어리가 남도록 손으로 대충 으깬 뒤, 볶은 양파와 당근을 모두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하여 골고루 섞는다. 원기둥 모양으로 만든다(모양은 취향에 따라 달리 한다).
⑥ ⑤에 녹말가루, 풀어 놓은 달걀, 빵가루 순서로 튀김옷을 입혀 160℃로 가열한 식용유에 노릇하게 튀긴 뒤 철망에 올려 기름을 뺀다. 160℃는 빵가루 또는 굵은소금 한 알갱이를 넣었을 때 살짝 들어갔다가 식용유 표면에서 금세 파악 퍼지는 정도의 온도.
⑦ 접시에 기름종이나 초록 잎을 깔고 소복하게 담아낸다. 초간장이나 케첩 등을 곁들여도 좋다.
TIP
감자 구입요령
단단해 보이는 것을 골라 갈라진 데가 없는지 살핀다. 감자는 재래시장이나 할인마트 등 어디에서나 살 수 있다. 봉지에 담겨있는 것 보다는 직접 골라서 사는 것이 좋다. 값은 1kg에 3000~3500원 정도.
전복 구입요령
-양식이 활발해져서 1년 내내 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8~10월이 제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로 한반도 연근해의 수온이 올라가면서 제주도에서는 지금 전복이 한창이다.
-눌러 보아서 빨리 오므라드는 것이 싱싱한 것이다.
-전복은 양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격이 잘 안 바뀐다. 3년생 이상부터는 먹잇감(다시마, 미역 등)의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크기에 따라 가격차이가 나는데 고로케에 쓰이는 한 마리에 50g정도의 볶음용은 2500~4000원 정도. 그보다 작은 것은 탕이나 찌개용으로 적당하고 더 큰 것은 횟감으로 좋다.
어울리는 술
-단맛이 살짝 묻어나고 새콤하며 시원한 리슬링의 화이트와인이 어울린다.
-홉(Hop) 향이 좋고 가벼운 에일 맥주와 어울린다. 쓴맛이 강한 브라운 에일이나 다크 에일보다는 상쾌한 페일 에일 정도가 좋다. 쓴맛이 강한 브라운 에일이나 다크에일, 인디아 페일 에일은 안 어울린다. 맥주에 지식이 많지 않은 사람은 병이나 캔에 ‘페일 에일(Pale Ale)’이라고 표시된 것 중에서 평소 자신의 느낌을 생각하며 고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