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는 들러리가 아니다
●이춘성의 세상 읽기(2)
야구팬들이 야구장을 찾듯이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류 프로골퍼들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직접 보려고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을 찾는다. 고교동창골프대회나 주말골퍼의 엉성한 샷만 보다가 프로골퍼의 멋진 샷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덤으로 연예인 빰치는 얼짱 LPGA 선수도 볼 수 있고, 홍순상 선수 같은 꽃미남 프로도 볼 수 있으니 골프팬들은 모처럼 시간을 내서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을 찾게 된다.
그러나 골프장을 찾은 팬들, 즉 갤러리들은 골프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조심해야 한다. 야구장이나 농구코트를 찾을 때처럼 긴장을 풀고 들떠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했다가는 낭패 당하기 십상이다. 핸디폰이 울려서도 안 되고, 카메라를 찍어서도 안 된다. 어렵사리 찾은 골프장에서 좋아하는 유명선수가 플레이하는 것을 배경으로 자신의 사진 한장을 남기고 싶은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이건 특히 조심해야 한다. 자칫 선수들의 플레이를 방해한 죄인 취급받기 쉽다.
언제부터인가 갤러리는 행여나 선수들의 플레이에 방해를 주지 않나 계속 눈치를 봐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선수가 샷을 하는데 카메라 셔터를 누르거나 소음을 내면 절대 안 된다. 그 순간 미스샷이라도 나면 선수는 카메라 찍은 사람을 째려보기도 하고, 대놓고 뭐라고 하기도 한다. 주변의 갤러리들도 덩달아 못마땅해한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좋은 공기 마시고 일류 프로들의 경기를 보려 했던 꿈은 다 사라지고 주눅이 들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를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겨보려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사진 한장 남기려는 자그마한 욕심이 엄청 무시당하는 계기가 될 줄이야.
게다가 어떤 선수들은 팬들에게 에티켓 교육을 하려고 한다. 우리 골프 갤러리들의 수준이 골프선진국보다 떨어진다면서 자기가 주관하는 대회에는 핸디폰 사용과 카메라 촬영을 금하는 걸 검토한다나.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게 골프 발전에 대단한 기여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아! 자존심 상한다. 골프장 찾는 갤러리들이 주최자들의 눈에는 골프 에티켓도 잘 모르는 사람들로 보일지 몰라도 대다수 갤러리들은 지킬 건 알아서 잘 지키는 골프 매니아들이다.
샷을 할 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그렇게 플레이에 지장을 주는지 우리 아마추어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야구경기에서 투수나 타자에게 야유를 퍼붓는데도 플레이에 지장이 없는 것을 보면 왜 골프만 유별을 떠는지 모르겠다. 골프는 집중력의 운동인데 잡음이 생기면 집중하는데 문제가 생긴다고? 농구경기에서 상대방 선수가 결정적인 프리드로우를 할 때 골대 근처의 관중들이 수건이나 응원도구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방해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농구선수들에게는 집중력이 중요하지 않나? 농구의 프리드로우 슛 하나하나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골프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로우할 때 골대 주변 관중들이 꼼짝말고 입 다물고 있으라는 주의를 받는 경우는 없다. 방해를 극복하고 슛을 쏴서 성공시키는 게 진정한 프로다. 이에 반하여 골프 현장 중계를 보면 캐디들의 “조용하세요"라는 외침 소리가 계속 들린다.
왜 골프만 팬들에게 최고의 정숙을 요구할까? 물론 오거스타에서 열리는 마스터스대회에서는 갤러리의 카메라나 핸디폰을 압수(?)하고 여차하면 퇴장도 시킨다니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런 마스터스 주최측의 오만한 태도는 골프가 귀족 스포츠였던 시절을 고집하는 시행착오가 아닐까?
근래 골프에도 변화의 조짐이 있는 것 같다. 매년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TPC에서 열리는 피닉스오픈 16번홀은 골프의 해방구다. 야구, 축구장과 같이 함성도 지르고 맥주도 마시면서 축제를 즐기는 가운데 선수들이 샷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샷을 해도 문제가 있다는 선수는 없다. 팬과 선수가 하나가 되어 즐기는 것이다. 앞으로 대중화를 지향해야 할 골프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대회가 아닌가 싶다.
요즘 골프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이젠 골프선수들과 주최측이 달라져야 한다. 아주 심하게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카메라 찍는 것을 어느 정도 용인해줘야 한다. 사진찍지 말라는 지시를 어긴 것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짜증을 내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팬들이 짜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특히 핸디폰, 카메라 사용을 금한다거나, 팬들에게 에티켓을 교육한다는 발상은 절대 사라져야 한다. 아무리 일류선수 플레이를 볼 수 있다고 해도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골프 구경가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골프 관계자들도 팬들을 교육하겠다는 발상 대신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해 줄 수 있는지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골프 갤러리는 더 이상 들러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