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사람을 보라
“세월호 사건은 우리사회의 민낯을 보여주었지요.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만 살려고 정보가 없는 학생들을 속여 결국 죽음에 이르렀지요. 선장, 선원뿐 아니라 해경, 공무원 등은 정보를 갖고 있었어요. 의료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 언론, 공무원 등은 정보를 갖고 있지만 정보가 없는 환자는 온갖 과잉진료에 희생되고 있어요.”
서울아산병원 이춘성 교수는 척추후만증, 척추측만증 등 척추변형 치료의 국내 최고수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환자의 건강을 위해 검증되지 않은 과잉치료와 싸우는 ‘포청천’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외과의학의 태두인 민병철 전 서울아산병원장이 5년 동안 허리수술을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다른 병원에서도 하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지난해부터 통증이 ‘싹’ 없어졌다고 합니다. 저도 허리가 많이 아플 때 척추를 전공하는 의사가 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과잉 치료하는 전문병원이나 한의원에 가서 불필요한 치료를 받으며 더 고생했을 테니까요.”
이 교수는 40, 50대에 별명이 ‘핏대,’ ‘검투사’였다. 언론에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나 황당한 비법에 대한 기사가 나가면 밤을 새워 반박자료를 만들어 해당 의료인이나 언론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2000년에는 서울 재동초등, 서울중고, 서울대 의대 1년 선배인 형 이춘기 교수와 함께 아프리카에는 디스크 환자가 없다’는 부제를 단 ‘상식을 뛰어넘는 허리병’을 내고 의사들의 과잉의료를 강하게 비판했다. 아프리카에는 의사가 없어 디스크를 치료하지 않기 때문에 디스크가 생겨도 자연 치유된다는 것. 이 교수는 2003년에는 정형외과, 신경외과 교수들과 함께 ‘척추포럼’을 조직해서 과잉치료를 자제하자는 자정운동을 펼쳤다. 지난해에는 상업주의 의료를 비판한 ‘독수리의 눈, 사자의 마음, 그리고 여자의 눈’을 펴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80년대에는 레이저 수술이 유행을 하더니 지금은 신경성형술, 침도요법(FIMS), 혈소판 농축혈장 주사요법(PRP), 프롤로 치료 등 온갖 시술이 신기의 치료법인양 언론을 도배합니다. 모두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선진국의 정통파 의사들은 ‘그게 뭐냐’고 묻는 치료법들입니다. 의사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나중에는 자기최면에 걸려서 수술을 합리화하죠.”
이 교수 형제의 올곧은 성품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선친 이정린 전 숭실대 부총장에서 왔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평이다. 선친은 경제학자였지만 매국노로 낙인찍힌 황사영의 백서를 재해석한 책을 펴낸 용기 있는 학자였다. 실로암안과병원을 설립한 김선태 목사가 숭실대에 입학원서를 냈을 때 교직원들이 “맹인이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고 빈정대자 이들을 호통치고 입학을 관철시킨 지행합일의 지식인이기도 했다.
이 교수는 선친의 영향을 받아서 어릴 적부터 책과 예술을 가까이 했다. 피아노는 수준급이고 사진, 캐리커처, 색소폰, 컴퓨터 등에도 조예가 깊다. 늘 책을 가까이 하기 때문에 문사철(文史哲)의 내공이 웬만한 인문학 교수 수준이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이화여대 의대 정형외과 김동준 교수는 “이 교수의 올곧은 비판정신은 이러한 지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 교수가 앞선 연구나 치료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교수는 2002년 골다공증으로 척추뼈가 내려앉은 환자의 척추뼈 사이에 풍선을 넣어 넓힌 뒤 뼈 성분을 주입해 통증을 누그러뜨리는 ‘풍선 성형 확장술’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과학적으로 일리가 있고 검증이 됐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에 앞서 1996년 세계 처음으로 ‘꼬부랑 할머니병’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미국측만증연구학회의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이 연구결과는 2001년엔 저명 학술지 ‘척추(Spine)’에 초청 논문으로 게재됐다.
이 교수는 몇 년 전부터 꼬부랑 할머니가 줄어들면서 척추측만증 치료에 주력하고 있다. 2009년 초 국내 대학병원 최초로 척추측만증센터를 개설, 한 해 170명을 수술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술 환자의 40% 정도를 수술하고 있는 것. 이 교수는 10세 미만에서 나타나는 측만증(EOS) 수술에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방학에는 측만증 수술만 하고 보통 때에는 다른 의사들이 보낸 척추관협착증 환자를 수술한다.
이 교수는 최근 부인에게 “나의 어떤 것도 자랑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부인은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의 조카손녀이자 우리나라 엉덩이관절 수술의 개척자였던 연세대 안화용 교수의 딸이다. 이 교수는 제자들에게도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겸허하라”고 가르친다. 지난해 울산대 의대생들은 치료와 연구에서도 뛰어난 의사이고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사회적 책무를 하면서도 의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온 이 교수를 ‘올해의 교수’로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