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청바지를 팝니다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를 팝니다●이춘성의 세상 읽기(1)

 

“어떤 남자가 서울역 앞에서 청바지를 무더기로 쌓아놓고 ‘스티브 잡스가 입던 청바지’라고 큰 소리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도 신기해서 모여들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스티브 잡스의 희귀한 청바지란 이유로 보통 청바지의 열 배 값을 받았다. 빙 둘러싼 사람들이 정말 스티브 잡스가 입던 거냐고 의문을 제기하자 장사꾼은 목숨을 걸고 보장한다고 큰 소리를 쳤다. 구경꾼 가운데 한 사람이 이런 사기꾼을 그냥 놔두면 안 된다고 인근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출동한 경찰이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라는 증거를 대보라고, 그렇지 못하면 당장 사기죄로 잡아가겠다고 호통을 치자 장사꾼은 ‘스티브 잡스가 이 청바지들을 입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으면 대보라’고 당당하게 맞받아친다. 순간 경찰은 장사꾼의 주장을 반박할 수 없어 말문이 막혔다. 기세등등한 장사꾼은 곁에 있는 경찰 보란 듯이 목청을 더 높이며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황당한 에피소드다. 하지만 이런 일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 하는 사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인체를 다루는 의료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어쩌면 더 심각할지 모르겠다. 척추 분야에서 살펴보자.

2,000년대 초반 기승을 부렸던 레이저디스크 수술은 전문가들 사이에 그 효과에 관해서 논쟁이 심했다.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치료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았으니 당장 사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지지하는 의사들은 효과가 있는 걸 직접 경험했는데 웬 트집이냐고, 효과가 없다는 증거를 대보라고 큰 소리를 쳤다. 청바지 장사꾼의 배짱과 다를 바 없다. 결국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레이저 수술은 계속되었고 비보험수가로 돈을 버니 너도나도 따라하게 되었다. 보험공단이나 심사평가원에서도 레이저 수술에 효과가 없다는 증거가 있어야 무슨 조치를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난감해했다. 앞에서 본 청바지 에피소드와 판박이다.

20여 년 세월이 흐르면서 레이저는 유행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는 신경성형술이라는 난해한 이름의 치료법이 물려받았다. ‘수술 대신 시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운 이 치료법은 작금 거의 열광적인 수준으로 우리나라 척추 분야를 휩쓸고 있다. 척추 통증의 원인은 유착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논리 하에 유착을 풀어준다는 고가의 시술은 그 근본논리, 효과, 비용에 대한 다수 전문가들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비보험수가라는 매력 때문에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퍼져버렸다. 과거 레이저 열풍은 쨉도 안 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기현상이다. 게다가 이 치료법은 점점 더 묘하게 진화하고 있다. 꼬리뼈 성형술, 레이저, 고주파, 내시경, 풍선확장술 등 감칠맛 나는 단어들이 신경성형술에 추가되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다.

신경성형술 외에도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치료들은 끝을 보이지 않는다. FIMS라는 주사로 척추불안정성을 치료한다거나, 인대강화주사로 요통을 치료한다거나, 혈소판 농축혈장(PRP: platelet rich plasma)을 주사해서 요통과 무릎 통증을 치료한다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 방법들은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비보험수가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 치료법을 사용하는 의사들은 효과가 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런 검증되지 않은 치료들에 대해서 강한 우려를 표시하며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다는 증거를 들이대지 않는 한 달리 제재할 방법이 없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어떤 치료법의 허용 여부를 결정할 때 아래의 (1)과 (2)의 기준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1) ‘치료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만 허용한다.

(2) ‘치료효과가 없다’는 증거가 없다면 허용해야 한다.

답은 당연히 (1)이 되어야 한다. 특히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의학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현실은 (2)로 가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2)는 청바지 장사꾼의 논리이다. “효과가 없다는 증거를 대라”라는 배째라식 주장은 논리학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궤변이자 오류이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무지에 호소하는 오류(argumentum ad ignorantiam)’라고 부른다. 철학자 김용규씨는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이라는 저서의 도입부에서 “명왕성에는 분홍코끼리들이 살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반박하기가 만만치 않음을 기술하고 있다. “명왕성에 분홍코끼리가 없다는 걸 증명해봐라”라는 배짱성 대응 때문이다. 모두 (2)와 동일한 궤변이다. 어떤 사실을 주장하려면 그것을 증명해야 하며 증명의 책임은 당연히 그것을 주장한 사람에게 있다. 그런데 (2)의 논리는 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궤변이자 말장난이다. 이 궤변을 따르게 된다면, 살인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아무나 연행하여 ‘당신이 살인범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라고 닥달할 경우 누구나 살인범 신세를 면할 수 없다고 한다.

(2)의 논리를 인정하면 우리사회는 혼돈에 빠지게 된다. 계룡산, 치악산의 도인들이 산에서 무더기로 내려와 시내에 치료소를 열고 자신들의 비법으로 온갖 환자를 치료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그 비법이 효과가 없음을 누군가 입증하기 전까지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 분야 곳곳에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들이 난무하는 현상! 누군가 짠 하고 나타나서 바로 잡아줄 것을 기대하기는 난망이다. 보건당국자들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이 분들에게는 ‘치료효과가 없다는 증거’가 절실하다. 설령 보건당국이 과감하게 어떤 치료법을 금하는 조치를 취한들 실효성이 별로 없다. 약삭빠른 비보험수가의 전문가들은 곧 대안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의 학술적 모임인 학회에 기대할 수 있을까? 이것도 답이 아니다. 학회 내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설령 있더라도 그들이 공연히 나서서 ‘효과가 없다는 증거’를 찾을 이유가 없다. 자칫 송사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언론? 기대 난망이다. 지금까지의 행태로 볼 때 언론은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들의 장점과 밝은 면 위주로만 보도를 해와서 이들이 널리 퍼지는데 기여했을 뿐이다. 이런 편파적인 보도만 하지 않아도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막을 수 있을까? 쉽지 않다. 단지 ‘중구삭금’ 이라는 사자성어를 소개하면서 희망을 본다.

중국의 생체장기이식 건수는 중국 내 사형수의 숫자를 몇배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알고 보니 중국감옥소, 병원 및 정부관련자들의 음모와 방관 속에 파룬궁 신도들이 생체장기이식의 공여자로 희생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인권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해도 중국정부는 부인(否認)으로 일관했다. 이런 중국 정부로 하여금 해명 내지는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답을 받아내는데는 '강제장기적출에 반대하는 의사들(DAFOH :Doctors against forced organ harvesting)'이란 NGO의 집요한 노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달걀로 바위를 깬 것과 같은 DAFOH의 성과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평가받는 것이 바로 중구삭금이었다. 입소문을 통해서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진심이 통하면서 금도 녹인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 널리 사용되기 전에 검증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알게 된 사실, 피해를 본 사례 등을 주변사람들에게 적극 이야기함으로써 의료에 관한 국민들의 민도가 높아지는 것을 기대하는 중구삭금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사진 출처 = 위키백과]

 

    코메디닷컴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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