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장기 이식, 당뇨-실명의 눈물 닦아줄까

동물장기 이식, 당뇨-실명의 눈물 닦아줄까

 

돼지 신경세포 이식, 뇌졸중 극복 마라톤까지

뇌졸중으로 몸의 왼쪽이 모두 마비됐던 미국의 마리베스 쿡(당시 34세, 여)은 지난 1994년 돼지 신경세포를 뇌에 이식받은 후 보조기를 차고 마라톤에 출전할 정도로 증상이 호전됐다.

왼쪽 반신마비 환자였던 아만다 데이비스(1999년 당시 21세, 여) 역시 돼지 신경세포를 손상된 뇌에 이식받아 보조기 없이 보행이 가능하게 됐다. 파킨슨병 환자 짐 핀(1997년 당시 47세)이 혼자 걷고 서는 데 성공한 것도 돼지 신경세포를 뇌에 이식받은 덕분이었다.

급성 간부전을 앓고 있던 로버트 페닝톰(20세, 남)은 지난 1997년 돼지 간을 이식 받아 3일 동안 성공적인 연명을 하기도 했다. 인간이 기증한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동안 체외에 돼지 간을 연결해 버틴 결과다. 

췌도 각막 부분은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고

이처럼 종이 다른 동물의 세포, 조직, 기관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은 지금도 치료의 꿈을 잃지 않고 있는 환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종이식 중 췌도(장기 중 이자의 내분비 세포 군집)와 각막 부분은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고의 기술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의 ‘2단계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TXRC)’은 무균 미니돼지의 췌도와 각막을 이식하는 시술법에 있어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종췌도이식의 최대 수혜자는 1형 당뇨병 환자들이다. 지난 2012년 건강보험공단에 등록된 1형 당뇨병 환자는 6059명으로, 발병률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당뇨병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집중적인 인슐린 치료를 받지만 이 치료만으로는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합병증을 예방할 수 없다. 또 저혈당으로 사망하는 환자들 역시 적지 않다. 

인간 장기 기증 턱없이 부족, 속절없이 기다려야

서울대 의과대학 신준섭 연구교수는 “1형 당뇨병 환자들은 정도에 따라 인슐린 주사를 매일 3~5 차례 맞는데 인슐린 용량이 과다 투여되거나 포도당 대사에 이상이 생기면 심각한 저혈당 현상이 일어난다”며 “한 연구에 따르면 환자의 66%가 1년에 3차례 의식불명의 저혈당 현상을 경험한다. 또 10~25년간 추적 조사 결과, 7.5~10%의 환자들은 저혈당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말했다.

당뇨병 환자의 저혈당 쇼크와 합병증 발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췌도 이식이다. 하지만 현재 인간의 장기 기증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장기기증 건수가 대기 환자 수의 10분의1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각막맹(각막이상으로 시력을 잃는 증상) 환자들을 위한 동종각막이식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KONSOS)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내각막이식 대기자수는 3776명인 반면, 최근 10년간 각막이식 건수는 350여건에 불과하다. 국내각막 이식자의 평균 대기시간도 300일을 넘는다.

서울대병원 안과 김동현 전임의는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듯, 시력은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하는 요소”라며 “국내를 포함한 여러 동아시아권 국가들은 특유의 유교적 전통으로 신체 기증을 터부시 해왔던 터라 각막 기증이 원활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백내장 수술 및 굴절 수술 환자의 증가로 각막 기증자의 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어 동종각막이식에 대한 새로운 대체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종교단체들 “이종이식은 사랑, 자비” 긍정적

TXRC 연구팀은 동종이식의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이종이식을 선택했다. 장기 부족 현상과 장기매매, 원정 장기이식, 장기 기증자의 사망 등을 극복하기 위해 이종이식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TXRC 연구팀의 이종췌도와 이종각막 이식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세계이종이식학회(IXA) 국제 가이드라인 기준에 부합하는 무균 미니돼지를 독자적으로 구축하고 있으며 미니돼지로부터 췌도와 각막을 분리하는 공정기술에 있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영장류에게 돼지 조직을 이식하는 실험에 성공을 거두며 IXA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이종이식 임상시험 진입요건에도 만족하는 성과를 거뒀다. TXRC 연구팀의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는 실용화 단계로 넘어가면 당뇨병 환자 및 각막맹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른 동물의 조직을 인체에 이식한다는 점에 대한 거북한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서울대 의과대학 모효정 연구교수는 “2007년 동물장기이식에 관한 시민합의회의를 통해 이종이식에 대한 종교단체들의 입장을 질의하는 자리를 가졌다”며 “종교단체들은 인간의 생명을 지키고 건강을 회복시킨다는 관점에서 이종이식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대학교 박병기 교수는 2008년에 발간된 시민합의회의 종합보고서를 통해 “가톨릭은 인류의 복지를 위한 동물의 유전적 변형을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권능을 적절하게 사용’한 경우로 보았고, 돼지 식용을 금지하는 이슬람교와 유대교도 인간의 복지를 위해 사용되는 장기는 금지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라며 “불교 역시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의 고통을 감해주는 이종이식은 자비를 베푸는 행동이라는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의학자들도 이종이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는 “난치병으로 고통을 받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이식으로 새로운 삶을 향유할 수 있으나 절대적인 장기와 세포의 부족으로 기약 없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며 “개인 맞춤형 줄기세포 혹은 장기 개발이 해답이지만, 현재 연구 수준과 발전 속도를 봤을 때 가장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방법은 이종이식”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종이식의 장애요소로 지적되는 부분은 이종 면역 거부반응과 이종이식 시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 발생 위험”이라며 “거부반응은 이종이식센터의 지난 9년간의 연구를 통해 상당 부분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고, 감염병은 무균 돼지가 그 요건을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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