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릴까봐.... 직장인 우울증 진단 기피 심각
“직장에서 판단력이 저하되는 등 업무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면 우울증을 의심하세요.”
직장인들의 적은 우울증이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직장인들은 우울감이나 불면증, 체중과 식욕 변화 이외에도 단순 업무 처리가 늦어지거나 실수가 많아지는 등 직장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집중력이 저하되면서 결정을 망설이고 건망증 등의 증상을 보여 인지능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울증을 앓기 전에 최상의 업무 수행도 비율이 평균 26%였다면, 우울증을 앓고 있을 때는 6%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직장 내 승진 등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울증 진단을 꺼려하고, 회사에 이를 알리지 않아 심하면 업무 부적응으로 퇴출 압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
따라서 직장인 우울증은 개인적 접근보다 업무생산성 측면에서 관리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사장 김영훈)는 제46회 정신건강의 날(4월 4일)을 맞아 직장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우울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현재 직장을 다니거나 1년이내에 근무한 적이 있는 16세~64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우울증에 대한 인식과 현황을 조사한 것이다. 이번 조사결과 우울증의 심각성에 비해 진단율은 낮고, 직장 내 관리도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들은 일상 생활에서 해로운 영향을 주는 질환으로 심혈관 질환과 뇌혈관 장애 다음으로 우울증을 꼽아 질환의 인지도는 낮지 않았다. 하지만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비율이 국내 직장인은 전체 7%으로 나타나 유럽과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비율을 보였다. 호주는 26%, 캐나다 21%, 유럽 7개국 평균은 20%에 이른다.
이와 관련해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우 교수는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매우 높은 실정임을 비교해 볼 때 우울증의 유병율이 외국보다 낮다기 보다는, 사회적 편견이나 직장 내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직장 내 관리자들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직원을 알았을 때 반응이 ‘우울증 관련 이야기를 회피(30%)’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름(29%)’ 의 순으로 나타나, 직원의 우울증 관리에 대한 대처 능력이 매우 낮았다.
반면 유럽의 경우, 직장 내 관리자들이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문의(49%)’, ‘의료전문가 상담지원(37%)’ 등 우울증을 앓고 있는 직원에 대해 문제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접근을 우선시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이번 연구에서 우울증 환자로 진단 받은 전체 응답자의 47%가 업무중 집중력저하, 결정 못함, 건망증 등의 인지능력장애를 겪어 업무 생산성에 악영향을 주고 있었고, 이로 인해 회사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우울증을 진단 받은 사람의 4명중 1명(26%)은 우울증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뒀으며, 휴직한 경우는 31%에 해당됐다. 휴직을 한 경우에도 약 35%가 회사에 구체적인 사유로 우울증을 밝히지 않았으며, ‘직장생활의 위협’과 ‘개인 문제’를 이유로 꼽았다. 이 같은 우울증에 대한 직장 내 편견이 우울증을 알리는데 가장 큰 방해요인 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김영훈 이사장은 “우울증은 심리적 우울감뿐만 아니라 인지기능이 떨어져 업무 능률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직장인 우울증은 개인의 문제보다는 기업의 생산성 차원에서 인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직장과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우울증을 알리기 보다는 숨기는 경향이 강해, 실제로 우울증으로 인한 업무 능력 저하가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유럽과 선진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직원 50인 이상의 사업장은 근로자 지원프로그램을 의무화하여, 직장에서 정신건강상담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회사 내에서 시행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정부 및 기업 차원에서 우울증 조기 발견 및 조기 치료를 통해 직장 내 생산성향상을 위한 포괄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