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멀쩡, 속으로 곪는 치매환자도 ‘척척’
1990년대 초만 해도 치매는 병이라기보다는 쉬쉬해야만 했던 ‘남세스런 가족문제’였다. 의사들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제대로 된 진단법도, 약도 없었다. 의사들은 가벼운 증세의 환자 가족에겐 “아직 괜찮다”고 안심시켰고, 중환자 가족에겐 “해 드릴 것이 없다”고 위로했다. 의사도, 정부도 손 놓고 있는 사이에 치매 환자와 가족의 마음은 함께 곪아갔고 집안에는 우울감이 번져갔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영 교수(49)는 스승 우종인 교수와 함께 음지의 병인 치매를 양지에 올려놓아 환자들의 생활이 달라지게끔 초석을 다진 의사로 평가받는다. 스승 우 교수는 1991년 전공의 1년차인 이 교수를 불러 “지금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치매가 관심의 핵으로 떠오를 것”이라면서 치매와 함께 임상약리학을 공부할 것을 권했다. 이 교수는 우 교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약리학과 신상구 교수 아래에서 약물 원리를 캤다.
아니라 다를까, 스승이 예언한 대로 1993년 미국에서 첫 치매 치료제가 개발됐다. 인구 고령화가 지속되면서 치매가 가장 중요한 노인병으로 부각됐다. 사제는 1994년 국내 최초로 치매 및 노화성 인지감퇴 클리닉을 개설했다. 같은 해 한국치매협회를 창립했다. 이 교수는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할 때 교과서로 삼는 치매임상평가집(CERAD-K)을 개발했고 전국의 치매 클리닉 60여 곳 가운데 절반 이상이 쓰도록 보급했다.
이 교수는 고3때 성속(聖俗)의 경계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신부가 되고 싶었지만 세속의 행복을 버릴 자신이 없었다. 결국 진통 끝에 다섯 살 위의 형처럼 의사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는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자 가톨릭학생회(CASA)에 가입, 주말에는 구로공단, 여름에는 농촌으로 진료 봉사를 떠났다. ‘환자와 교감하면서 돕는 훌륭한 임상의사’의 꿈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정신과에 지원했고, 우 교수의 권유에 따라 치매를 전공하게 됐다.
이 교수는 군의관 3년, 전임의 3년을 마치고 경기 용인시의 경기도립노인병원에서 3년 3개월 환자를 봤다.
“이 경험이 제 의사경험에 소중한 주춧돌이 됐습니다. 대학병원에서는 주로 초기 환자가 오고, 말기 환자는 요양병원 또는 요양소로 가지요. 도립노인병원은 초기부터 말기까지 모든 환자들이 있어서 다양한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을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교수는 2003년 서울대 의대 교수로 발령받았고 3년 뒤부터 서울시광역치매센터를 설립했다. 당시 1990년대보다는 치매에 대한 인식이 올라갔지만, 아직도 환자와 가족은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다. 정부에서는 치매를 일찍 발견해 치유하는 것보다 중증 환자를 수용하는 시설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 교수는 오세훈 시장을 설득해서 관악구에서 실시하고 있던 치매관리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고 25개 구 전역으로 확대했다.
각 구청의 치매지원센터는 치매 예방 및 인식개선 홍보사업을 벌였고 무료검진으로 환자를 찾았다. 등록된 환자는 병원이나 지역 복지센터 등에 연결했다. 게임, 음악, 미술 등으로 기억력을 유지하게 하거나 생활이 정상에 가깝게 돕는 프로그램도 개발해서 실행했다. 가족의 아린 가슴을 보듬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환자에게 이름표, 기저귀도 보급했다. 환자들의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치료와 연구의 기본으로 쓰이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교수는 2008~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알츠하이머 뇌영상연구소에 교환교수로 가서 찰스 디칼리 교수와 함께 양전자단층촬영(PET),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으로 치매를 조기치료하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했다.
그는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의 치매 조기진단 예측 시스템 개발사업의 총책임자로 임명돼 서울대 생화학과 묵인희, 성균관대 진단검사의학과 김종원, 조선대 뇌신경과학과 이건호, 컴퓨터공학과 이상웅, 한양대 의용생체공학과 이종민 교수 등과 함께 대한민국 치매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이전에는 치매를 확진하는 방법이 환자가 숨진 뒤 부검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아밀로이드 PET를 통해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증세가 진행되는 사람을 확인할 수가 있게 됐습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서 증세가 나타나기 10~20년 전에 진단이 가능해졌지요. 정확하게 환자를 구분해서 약 효능을 테스트할 수가 있게 됐지요.”
이 교수는 아직은 치매의 완치제가 없지만, 환자와 보호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아무런 방법이 없으면 손이라도 잡아 기운을 불어넣으려고 애쓴다. 초진은 꼭 20~30분 보려고 했지만 전국에서 환자가 밀려와 지난해부터 제다들이 30분 미리 예진을 보고 이 교수가 10분 보는 것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