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상상을 뛰어넘는 기묘한 종들

[의사는 겉보기와는 달리 힘들고 고달픈 직업이다. 병을 고치고 생명을 구하는 데서 보람과 자부심을 갖지만 이에 따른 고뇌와 스트레스도 많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제대로 하려면 의술 못지않게 체력도 좋아야 하고, 인내와 평정심도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의료 업무 외에 다양한 활동으로 이런 능력을 배양하며, 그러다 그 분야의 대가가 되거나 기행으로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이런 의사들을 ‘화제의 의인(醫人)’으로 소개한다.] 

 

이런 것도? 상상을 뛰어넘는 기묘한 종들화제의 의인(醫人) / ① 종 1만여점 수집 이재태 교수

디지털화된 기계음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종소리는 어떻게 들릴까. 낯설고 생소한 소리 내지는 이국적이고 신비한 소리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중년층 이상에게 종소리는 정겨운 추억이다. 고즈넉한 저녁 골목에서 들려오던 두부장수의 종소리, 시골 논밭에서 정겹게 울리는 워낭소리, 멀리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교회나 학교 종소리가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각각의 기억을 바탕으로 종소리에 대한 로망을 추억한다할지라도 막상 종을 수집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나라 종하면 연상되는 것은 사찰 범종처럼 거대한 종이기 때문이다. 서구권 국가처럼 일반가정에서 장식품이나 일상도구로 종을 소유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지 않다.

의대교수이자 종 컬렉터인 경북대병원 핵의학과 이재태 교수는 올해로 22년째 종을 수집하고 있다. 그의 종 수집 역시 국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지난 1992년 미국 워싱턴 근교 국립보건원 연구원으로 있던 시절 우연히 들른 바자회에서 구입한 도자기 인형 종이 종 수집의 시작이었다.

그 전까지는 외국에 나가면 여행가들이 으레 하듯 코인이나 열쇠고리를 간간이 수집해온 경험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교수가 전문 수집가가 된 것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예고된 결과였다. 이 교수는 “초등학교 때 등교 전 아침 일찍부터 우체국 앞에 줄을 서서 우표를 구입한 적이 있다”며 “정리된 우표책을 보고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감에 도취되곤 했다”고 말했다.

애착 가는 물건이면 사소한 것도 버리지 못하는 천성 역시 수집가다운 면모다. 아내가 재활용통에 가져다 둔 옷들을 발견하곤 다시 집으로 챙겨온 경험이 있을 만큼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미국 연수시절 바자회에서 귀엽고 신기해 구입한 도자기 인형 모형의 종들은 종에 매료되는 계기가 됐고 이후 본격적으로 종 수집가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국내에서 종을 구입하기는 어려웠다. 종 문화가 형성돼 있는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기면 현지에서 구입해 오는 방식으로 종을 모았다.

하지만 해외에 직접 나가 구매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 교수는 “미국 종 수집가협회(ABA·American Bell Association)에 가입한 이후로는 회원들을 통해 구입하거나 이베이·아마존과 같은 해외 경매 사이트를 수집 경로 삼아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22년간 모은 종이 현재 만여 점에 이른다. 이 교수는 “교회나 학교, 사찰 등에 있는 거대한 종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수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특히 콜 벨이라고 부르는 탁상 종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수집한 종들은 지난 5년간 충북 진천 종 박물관에서 매년 새로운 테마로 전시되고 있다. 인물종, 데스크벨, 유리종, 자명종시계나 뮤직박스와 같은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종을 전시한데 이어 현재는 ‘세계의 종, 나의 애장품 展’이라는 테마로 그동안 전시회에서 공개하지 않은 독특하고 다양한 종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교수가 소유하고 있는 종은 한·중·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미국, 유럽 등의 다양한 문화 속에서 탄생했다. 시대도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넘나들어 가장 오래된 종으로는 페르시아 루리스탄 청동기종, 로마시대 철종, 중국의 고대 종 등이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500주년 기념 종, 19세기 프랑스 플린트 유리 종, 하인이나 집사를 호출하는데 사용됐던 유럽 데스크 종 등 종마다 담긴 역사적인 의미도 다양해 이 교수가 소유한 종들의 범주는 구획 짓기 어려울 만큼 광범위하다.

경매가 600만원에 이르는 18세기 독일·프랑스 제작 인물모형 종은 얼굴과 손은 상아로, 나머지 몸체는 은으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 시가로는 1000만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종을 구입하는 데는 경매가, 운반비, 관세까지 많은 비용이 들지만 이 교수는 고가의 종이라고 해서 특별한 애착을 두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모든 종들이 남다른 의미가 있어 애정을 가지고 구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많이 소장하고 있는 탁상종이나 사람모형 종 같은 경우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종 모양이 아니다. 이런 종까지 본격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컬렉터가 되려면 종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이 교수는 “종 수집가협회에서 2달에 한 번씩 발행하는 ‘벨 타워(Bell Tower)’를 꾸준히 읽고 있고 종 관련 단행본도 많이 읽었다”며 종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넓히기 위한 열의를 보였다.

이번 전시를 마지막으로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된 5년간의 종 전시회도 마무리된다. 이 교수는 현재 소유하고 있는 종들을 향후 기증할 계획도 있다. 이 교수의 종에 대한 남다른 열정 때문에 이 교수의 직업을 수집가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교수의 본업은 의사이자 핵의학자다.

국내외 핵의학회에 우수논문을 수차례 발표하는 등 학자로서의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며 대한핵의학회 차기회장으로 선출됐다. 또 보건복지부 특성화 국책사업인 ‘선도형 당뇨병 및 대사성 질환 신약개발 연구사업단’을 이끌고 있으며 지방 유일의 ‘연구중심병원’에서 핵심 역할을 맡으며 기초연구에도 매진하고 있다. 경북대병원 핵의학과 의사로서 갑상선암 및 갑상선질환, 동위원소치료 분야에서 환자들 진료 및 치료에도 애쓰고 있다.

병원 기획조정실장 재직 당시에는 병원을 갤러리처럼 꾸미는 일에 앞장섰고 지난해에는 경북고 57기 동기회장으로서 공동수필집 ‘57 세상에 말을 걸다’ 출간을 주도했다. 이처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교수지만 종 수집은 짐이나 부담 혹은 노동이 아니다.

종 수집은 이 교수의 평생의 동반자이자 취미생활이다. 만여 점이나 되는 종을 모으다보니 종 관리가 버겁고 때로는 파손되는 일까지 생겨 속상할 때도 있지만 일상생활이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이 교수의 활력소 역시 종 수집이다.

이 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인간의 육체가 명멸하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 의사로 살아왔다”며 “수집 역시 사라져 가는 물건에 다시 혼을 불어넣어 살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영혼이 사라져가는 그 무엇에 다시 혼을 불어넣는다는 사명감을 가지면 유쾌하게 종 수집을 할 수 있다”며 종 수집을 해온 지난날에 대한 보람과 소감을 덧붙였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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