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심정 평생 가슴에...세계가 좁은 ‘지방 의사’

환자 심정 평생 가슴에...세계가 좁은 ‘지방 의사’ 어지러웠다. 온몸에서 기가 빠져나가는 듯, 피로가 밀려왔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본과 2년이 됐으니 이제 제대로 공부를 해야지’했던 다짐이 멀리 허공으로 번져갔다. 책을 펴도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달아났다. 온몸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에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찼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경북대병원 신장내과 김용림 교수(53)는 경북대 의대 본과 2학년 때 이 같은 증세 때문에 탈진한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했다. 병명은 급성 신증후군. 콩팥에서 피를 여과하는 사구체에서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병이다. 그는 2~3주 입원해서 병마와 사투를 벌이면서 환자의 마음을 가슴 속에 담았다. 그리고 내과 전공의가 되자 자신의 병을 치유하는 신장내과를 전공으로 삼았다.

김 교수는 30년이 지나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신장내과의 대가가 됐다. 특히 복막투석의 동물실험과 투석 및 신장이식 환자의 관리에서 세계 의사들의 교과서를 쓸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교수는 스승과 동료의사들을 믿고 얼핏 멀어 보이는 길을 가서 결국 정상 언저리에 도달했다. 그는 1989년 전공의를 마쳤지만 신장질환만을 전공할 수가 없었다. 대학에 교수 자리가 없었기 때문. ‘언젠가 부르겠다’는 스승 조동규 교수만 믿고 멀리 울산의 동강병원으로 향했다. 당시 대구에 비해서 울산은 시골이었다. 그곳에서 위내시경, 심장초음파 등을 보면서 내과에 오는 온갖 종류의 내과 환자를 봤다. 하루 외래 환자 100명에 입원 환자 20~30명을 성심껏 돌봤더니 환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다. 내과 의사들이 5, 6명 있었지만 혼자서 내과 환자의 절반을 봤다.

5년 뒤 스승이 불러 경북대병원 교수로 부임했을 때 동강병원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 김 교수는 “콩팥은 전해질, 수분, 산성도 등을 조절하는 장기여서 신장내과 의사는 만성신장염 환자뿐 아니라 병원 치료 중 몸의 항상성이 깨어진 응급환자도 치유해야 하는데 5년 동안 내과의 여러 경험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1996년부터 미주리 주립대 병원으로 연수 가서 복막투석의 세계적 대가인 칼 놀프 박사 팀에서 투석의 메커니즘을 공부했다. 귀국하자마자 국내 처음으로 쥐를 이용한 복막투석 동물실험실을 열었고 이에 대한 연구를 이끌어왔다. 쥐에게 맞는 실험기구들은 직접 미국에서 수입하거나 아쉬운 대로 만들어 써야 했다. 8~12주 동안 쥐의 투석을 유지한다는 것은 고난도의 작업이어서 실험실을 연지 3, 4년이 지나서여 연구결과물이 나왔다.

‘쥐의 스케줄에 맞춰 생활하는 의사’는 시나브로 학계에 소문이 났다. 유유상종이랄까, 서울대병원 김연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강신욱,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양철우, 고려대 안산병원 차대룡,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김순배 교수 등 ‘학구파’ 교수들과 어울리게 됐다. 2002년 이들은 서로의 연구열정에 반해서 함께 공부하기로 의기투합, 학문적 열기를 데웠다. 밤낮없이 이메일로 최신자료와 의견을 주고받았고 격월 모임에서 영어로 격론을 벌이며 서로를 채찍질했다.

이들 소장파 교수는 2008년 10월 말 보건복지부가 우리나라 10대 질환의 연구센터를 모집한다고 공고하자 이심전심으로 김용림 교수를 중심으로 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경북대병원에서 닻을 올린 말기신부전 임상연구센터에서는 전국 31개 병원의 5000여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105편의 논문을 쏟아냈다. 이 가운데 89편은 국제 권위의 학술지에 발표됐다.

김 교수는 지방에 있지만 국제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로도 유명하다. 그는 2006년부터 70여 나라 1000여명이 회원인 국제복막투석학회의 집행위원 10여명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임기는 2년이지만 4회 연임할 정도로 학계의 신뢰를 얻고 있다. 2015년 아시아태평양 복막투석학회를 대구에 유치하고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국제학술지 ‘치료성분채집투석’의 편집위원이며 의대생과 의사들의 교과서인 ‘머크 매뉴얼’과 ‘해리슨 내과학’의 복막투석 분야를 집필했다. 김 교수는 또 노벨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미국 UCLA, 영국 카디프 대, 중국 북경대 등과 혈액 및 복막 투석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04년 싱가포르 아시아 이식학회에서 ‘최우수 초록상’을 받았고 매년 2, 3차례 국제학회에서 초청강연을 펼친다.

2007년에는 만성신부전 환자에게서 콩팥이 푸석푸석해지는 것을 빈혈치료제 에리스로포이에틴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를 ‘미국신장학회지’에 발표했고 이듬해에는 개인 유전자형에 따른 신장이식 후 거부반응에 대한 차이를 발견해 ‘이식’지와 ‘이식회보’에 잇따라 발표했다. 2011년에는 중증 신장질환과 가벼운 신장질환을 구별하는 새 진단법을 개발해서 ‘프로테오믹스’에 게재하기도 했다.

그는 만성신장병연구센터 직원 15명을 포함해서 40명의 식구들을 챙기면서 지난해부터는 병원 기조실장까지 맡아 정신없이 바삐 지내면서도 환자를 보느라 매일 오전6시에 출근해서 오후10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다고 환자 한 명 한 명 허투루 보는 법이 없다.

그는 환자가 오면 간호사에게 먼저 10~15분 문진을 보게 한 뒤 그 내용을 재빨리 읽고 진료를 시작한다. 반드시 환자와 가족의 안부를 묻고 환자의 불편한 점, 통증 등에 대해서 차분히 이야기를 들은 다음 치료경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다. 고령의 환자들은 아들 친구에게 진료를 받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주말에 학회에 가지 않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빠짐없이 병실을 방문해 환자들의 애로사항을 경청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전공의 제자들과는 365일 24시간 연락체계를 유지한다. 환자에 대한 정성이 소문나서 최근 대구, 경북뿐 아니라 부산, 울산 등에서도 개원 의사들이 환자를 보낸다.

그는 “임상의사로서 환자를 보다 더 잘 보게 하기 위해서 기초연구를 게을리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기초연구결과를 임상시험에 잘 접목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중개연구’가 화두인데, 이런 면에서 김 교수는 중개연구에서도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인터뷰 내내 손사래를 쳤다. 다른 분야의 베스트 닥터들은 쟁쟁한 고수이지만 자신은 평범한 의사일 뿐이라면서 말문을 열었고, “김 교수의 업적이 크다”는 이야기에 끝까지 수긍하지 않았다. 40대 초반의 스터디 그룹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강신욱 교수가 적극 제안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복지부의 임상연구센터도 서울대병원 김연수 교수가 적극 도와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했다고 했다. 2007년 만성콩팥병 환자와 투석 환자를 위한 정보 사이트를 개설한 공로에 대해서 말을 꺼내자 그것은 김성권 당시 대한신장학회 이사장과 서울대병원 오국환 교수의 공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제학회에서의 활약에 대해서 언급하자 그는 “스승인 조동규 교수의 가르침에 따라서 미주리대학교에 갔을 뿐이고 미국의 스승 칼 놀프 박사가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제적인 역할을 맡았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북대 선배인 핵의학과 이재태 교수(대한핵의학회 회장)는 “김 교수는 오히려 자신의 노하우를 다른 의사들에게 전하는 데 적극적이며 남들의 평판에 상관없이 밤낮 없이 진료와 연구에 매진하고 어떤 일이라도 즐겁게 하기 때문에 진정한 베스트 닥터”라고 평가했다.

신장내과 진료 베스트닥터에 김용림 교수

김용림 교수에게 물어본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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