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해? 말아? 원칙 명쾌한 시원시원한 의사
남자가 사춘기를 지나면 목 가운데가 볼록하게 튀어나온다. 영어로 ‘아담의 사과(Adam’s Apple)’, 우리말로는 갑상연골이다. 튀어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여자에게도 있다. 갑상연골 아래에 인체대사과정을 조절하는 갑상선호르몬을 분비하는 갑상선이 있다. 갑상선은 방패모양의 샘이라는 뜻. 해부해서 보면 방패 또는 날개를 펼친 나비 모양으로 생겼다. 여기에 암이 생기면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손으로 혹이 만져져야 수술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송영기 교수(55)는 2004년 손으로 혹이 만져지지는 않아도 암이 진행돼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을 입증해서 영국내분비학회의 학술지 ‘임상내분비학’에 발표했다. 크기만 갖고 섣불리 수술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되므로 초음파 검사 후 신중해야 한다는 그의 연구결과에 국제학계는 주목했고, 결국 교과서까지 바뀌었다.
그러자 몇 년 동안 의료계에서 수술이 남발되는 역현상이 일어났다. 초음파 검사에서 미세한 흔적만 발견돼도 온갖 검사를 실시하고 갑상선암 진단과 수술 건수가 급증한 것.
송 교수는 2010년 대한갑상선학회 이사장으로서 여기에도 선을 그었다. 5㎜ 이하의 결절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여기에 대해선 아무런 추가검사와 진단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한 것. 일부 의사들의 반발에다 심지어는 협박까지 있었지만, 굽히지 않았다.
송 교수는 이처럼 갑상선 질환 분야에서 표준을 정하는 의사다. 그는 서울대병원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230여 편의 논문을 썼으며 100여 편이 국제 권위지에 등재됐는데 이 가운데 6편이 2009년 미국갑상선학회에서 발간한 ‘갑상선암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인용됐다.
그는 미국갑상선학회에서 발간하는 ‘갑상선,’ 유럽갑상선학회에서 펴내는 ‘유럽 갑상선지’ 등의 편집의원을 맡고 있다. 며칠 전 영국내분비학회로부터 편집위원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옛 영연방 국가 외에서는 첫 편집위원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송 교수는 또 2010년부터 아시아태평양갑상선학회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2010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태평양갑상선학회’에서 ‘갑상선질환 분야 베스트 닥터 상’ 격인 ‘나가타키 후지필름 상’을 받기도 했다.
송 교수는 “고교 때 경제학자가 되고 싶어서 문과에 지원했지만 의사가 되기를 원한 아버지 때문에 할 수 없이 이과로 옮겨 의대로 진학했고 고무 알레르기 때문에 수술 장갑을 못 껴서 내과의사가 됐다”면서 “세 스승이 아니었다면 그저 그런 평범한 의사로 머물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스승은 우리나라 병리학의 체계를 세우면서 대한의학회 회장,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초대회장을 역임하며 의학 발전을 이끌어온 지제근 서울대 명예교수. 송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서 지 교수로부터 개인수업을 하다시피 타자기를 앞에 놓고 논문 쓰는 법을 배웠다.
두 번째 스승은 서울대병원 전공의 때 스승이었던 조보연 현 중앙대 교수다. 조 교수로부터는 사고하는 방법과 실험 방법, 추리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능력 등을 배웠다. 송 교수의 책상 위에는 조 교수의 사진이 걸려있다. 송 교수는 난관에 부딪히면 사진을 보면서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매듭을 풀까’하고 생각에 잠긴다.
세 번째 스승은 독일 베를린 자유대의 홀스터 슐로이제너 박사. 송 교수는 1992년 슐로이제너의 논문을 받고 ‘한 수 가르침’을 요청했고, 스승은 훔볼트 장학금을 알선해서 제자를 초청했다. 성탄절엔 95세의 부친을 비롯해서 온가족이 모인 자리에 동양인 제자를 초청했고 틈나면 집으로 초청해 함께 식사했다. 송 교수는 ‘왜 동양의 눈 작은 저를 이렇게 아끼느냐’고 물었다. 푸른 눈의 스승은 “내가 1950년대 캐나다에서 유학할 때 스승인 맥스웰 맥킨지 교수가 나를 아들처럼 대하면서 ‘나중에 외국 제자에게 내가 하듯이 대하라’고 가르쳐줬다”고 전했다. 맥킨지는 또 아일랜드에서 캐나다로 유학 와서 스승의 따뜻한 가르침 덕분에 정착해서 권위자가 됐다는 것.
송 교수는 대를 이은 사제의 가르침에 대해 “국경을 넘어 의사정신을 발전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배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2011년 인도, 대만, 싱가포르,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전문의 15명을 초청해 갑상선에 대해서 가르치는 ‘아시아 전문가 양성 코너’를 개설한 것도 이런 정신을 바탕 삼은 것이다.
송 교수는 음식 전문가로도 정평이 나있다. 2000년 대한의사협회에서 발행하는 의협신문에 식당 기행 칼럼을 연재할 정도로 ‘미각’이 남다르다. 가족을 위해 장을 봐서 직접 요리를 하기도 한다. 최근 아들이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집에서 요리하는 일이 줄었지만, 한때 케이블TV의 푸드 채널을 보면서 아들에게 그대로 요리해서 먹이곤 했었다. 생선 요리는 웬만한 일식당 주방장 뺨 칠 수준이라는 것이 지인들의 평가다. 요리에서 레시피가 중요하듯, 진료에서는 ‘의료행위의 레시피’인 ‘가이드라인’이 중요하다는 것이 송 교수의 믿음이다.
조보연 교수에게 배운 사고 훈련에 따라, 지제근 교수에게 배운 연구방법론에 따라 밤낮없이 가이드라인의 완결성을 추구했기 때문에 송 교수의 진료는 언제나 명쾌하다. 서울아산병원의 한 직원은 “송 교수는 진료원칙이 확고해서 환자들에게 나긋나긋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언제나 시원시원하게 의문을 풀어주기 때문에 환자들이 좋아한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