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의 수술... 영원한 ‘열혈청년 의사’
식도의 우리말은 ‘밥줄.’ 이곳의 암을 치유하는 수술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암 부위를 잘라내고 밥통(위장)을 통째로 가슴까지 끌어올리거나 튜브 모양으로 만들어 목구멍의 남은 밥줄과 이어야 한다. 식도암은 ‘밥줄과 밥통을 잇는 수술’ 자체가 고난도인데다 다른 암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수술이 더 복잡해진다. 위에 암이 있으면 위 대신 대장을 연결해야 하고, 대장에도 암이 있으면 소장을 연결해야 한다. 이어놓은 부위가 썩으면 떼어내고 다른 장기를 연결해야 한다. 가슴과 뱃속의 장기 전체에 대해 통달해야 칼을 들 수가 있다.
그래서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식도암 수술은 대한민국 의사들이 겁을 내는 암이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수술이 성공하고 있었지만 그야말로 먼 나라, 선진국 이야기였다.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심영목 교수(60·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는 1987년 군의관 근무를 마친 뒤 원자력병원에서 이 어려운 식도암과 폐암 수술을 맡을지, K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맡을지 갈림길에서 고민하다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전공의 시절 당시까지 서울대병원 전체에서 식도암 환자 3명을 수술했다는 전설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막상 원자력병원에 가니 엉뚱한 전투를 해야만 했다. 주위의 의사들이 “식도암을 수술하면 의사도, 환자도 힘드니까 외래 환자가 오면 항암제나 방서선 치료를 권해라”고 당연한 듯 충고했다. 동료의사들은 ‘열혈 청년 심영목’이 “외래 환자 안보고 수술만 하겠다”고 선언하자 ‘웃기는 청년’에게 환자를 보내지 않았다. 심 교수는 식도암과의 전쟁이 아니라 주위 의사를 설득하는 ‘심리전’에 매달려야 했다.
심 교수는 한동안 텅 빈 진료실과 수술실을 오가며 ‘이미지 훈련’을 하면서 환자를 기다렸다. 가시방석에 앉아 고민하다 한두 달이 지나갔다. 그는 내과 의사들에게 한 번 들어나 보라고 사정하고는 “식도암 환자의 수술 사망률을 5% 이하, 5년 생존율을 30%로 유지할 자신이 있으니 제발 환자를 보내달라”고 읍소했다.
당시 식도암 수술 분야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 영국 유명병원도 5년 생존율이 1980년대 4~5%에 불과했고 90년대 들어 20%에 올랐기에 심 교수의 읍소는 허무맹랑한 호언장담이었다. 그러나 한 ‘착한 내과의사’가 속는 셈 치고 환자를 보내줬고, 심 교수는 원자력병원에 간 지 3개월 만에 만난 첫 환자에게 보란 듯이 수술에 성공했다.
1992년 대한흉부외과학회에서 5년 동안 수술한 300여명의 사례를 발표하자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서울대병원 노준량 교수는 “우리도 최근 들어 수술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10년 동안 100명도 수술하지 못했는데 대단하다”고 어깨를 두드려줬다.
심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지금까지 2000여명의 환자를 수술했다. 5년 생존율은 55%로 일본의 최고 병원인 국립암센터에 버금간다.
심 교수는 2008년 삼성암센터 초대원장을 맡아 올해 암병원으로 승격시키면서 해마다 “환자를 반으로 줄이고 통증 없는 암 병원을 만드는데 주력해야지”하고 다짐하지만 매번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전국에서 의사들이 환자를 보내오고 있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어 되래 환자가 늘고 있는 것.
환자가 몰리다보니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수술에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양잿물을 마셔 목구멍 입구가 들어붙은 환자의 목구조 전체를 떨어뜨린 다음 식도 아랫부분을 자르고 대장에 연결한 수술은 2005년 미국흉부외과학회지에 게재도 호평을 받았다. 식도재건수술에 실패해서 겨드랑이에 튜브를 꽂고 영양공급을 받던 환자에게 독특한 방법으로 ‘밥줄’을 만들어준 사례도 숱하다.
심 교수는 최근에는 한 해 40여 명에게 로봇수술도 시행하고 있다. 기존 흉강경 수술은 배를 10㎝ 정도 절개하고 겨드랑이 아래에 구멍을 4, 5개 낸 다음 내시경과 수술 장비를 넣어 수술한다. 로봇수술은 보험 적용이 안 되고 목에 3~4㎝ 정도 절개를 더 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통증이 적고 호흡기 장애가 덜한 결정적 장점이 있다.
심 교수는 “흉부외과 의사는 생명에 담대해야 한다. 환자가 죽는데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이익만 고집한다면 문제이겠지만 실패에 매이면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술 후 끝내 암을 못 이기고 세상을 떠난 환자들이 눈에 밟히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때에는 산을 타면서 “어제는 지나가서 없다. 내일은 안 왔다. 오늘에 충실하자”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는 10여 년 동안 삼성서울병원 산악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매년 몇 차례 후배와 제자 의사들을 데리고 백두대간을 향한다. 산에서 아픔을 내려놓고 새 환자를 수술한 기운을 얻어서 병원으로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