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후유증 적게”…췌장암 복강경 수술 개척자
2013년 9월 초 세계췌장학회가 열린 서울 광장동 W서울워커힐호텔 대회의실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강을 넘어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수술실에서는 이 병원 외과 김송철 교수(52)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긴장의 끈을 풀었다. 입가에서는 미소가 번졌다.
이날 김 교수는 췌장암 환자와 췌장양성종양 환자 각 1명에 대해 배에 구멍을 4개 뚫고 복강경과 수술 장비를 넣어 수술하는 시연을 했고, 이 장면은 강 건너 호텔로 실시간 중계됐다.
많은 의사들이 췌장암의 복강경 수술에 반대하고 있어, 이 수술시연은 논란을 정리하는 의미가 컸다. 특히 두 수술 모두 복강경 수술 가운데 위장의 아랫부분을 보존하는 최고난도의 ‘췌두부 절제술’이었다. 췌장 끝자락과 십이지장, 공장, 담낭, 담도 등을 절제한 뒤 췌장과 공장, 간과 공장을 연결하는 어려운 수술이다. 10여 시간에 걸쳐 두 사람의 수술이 끝나자 사회를 맡은 분당서울대병원 한호성 교수가 “놀랍다”고 감탄사를 내뱉었고, 100여 명의 의사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김송철 교수는 췌장암을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칼잡이로 꼽힌다. 췌장은 뱃속 깊숙이 다른 장기와 겹쳐 꼭꼭 숨어있기 때문에 암 진단도, 수술도 쉽지 않다. 또 수많은 혈관이 연결돼 있는 복잡한 구조여서 자칫하면 과다출혈, 췌장액 누출 등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나기 십상. 논리적으로는 복강경 수술을 받으면 개복수술보다 통증이 적고 회복이 빠르며 흉터도 적게 남지만 많은 의사들은 “개복수술로도 어려운데 무슨 복강경 수술?”하며 회의적 시선을 보내왔다. 복강경수술 반대론자들은 췌장암 수술은 8, 9시간 걸리는 대수술인데다 수술 뒤 여러 장기를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크므로 시야가 확 트인 개복수술이 정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런 논란을 잠재우며 복강경 수술의 교과서를 써가고 있는 의사다. 그는 지금까지 췌장, 담도, 십이지장 등에 각종 병이 생긴 환자 1200여 명을 복강경으로 수술했다. 최고난도의 췌두부절제술이 170여명이었고 췌장암 환자는 150여명을 수술했다. 모두 세계 최다이며 기록상으로는 일본 모든 병원에서 시행된 췌장 복강경 수술과 맞먹는다.
김 교수는 어릴 적부터 새 영역을 개척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는 중1 때 형과 함께 고향인 충남 부여를 떠나 무작정 서울로 유학 왔다. 아들에 대한 교육열이 강했던 어머니가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가야한다”면서 두 살 위인 형과 함께 무작정 서울행 야간 고속버스에 올라타게 한 것. 그는 중학교 때부터 자취를 하면서 공부해서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 때 교련반대시위를 하다가 유급됐고 예과2학년 때 서울대 의대 등반대장으로 한라산에 갔다가 후배 1명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때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황하다가 기독교에 귀의했고 봉사에 눈을 떴다. 본과4학년 마치자마자 군대에 입대해서 강원 태백시의 탄광촌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다. 그는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환자들을 치유하면서 외과에 가야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느꼈다. 군 복무 후 서울시립보라매병원에서 남들이 꺼리는 행려환자들을 도맡아 보면서 외과의사가 천직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병원에서 외과 전공의로 있을 때 위 수술을 주로 담당했다. 위 수술의 세계적 대가였던 김진복 교수의 제자로 논문을 쏟아내고 수술에도 열심이었지만 스승이 병원을 퇴직하는 바람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이때 서울아산병원의 한덕종 교수로부터 러브콜이 왔다. 한 교수는 “서울대 윤여규 교수에게 소개받았다. 장기이식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김 교수는 한 교수의 넉넉한 인품과 연구열정에 끌려 서울아산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교수는 간, 신장, 췌장 이식에 밤낮없이 매달렸다. 1999년에는 스승과 함께 췌장 수술 뒤 당뇨병이 온 50대 환자에게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섬세포를 이식하는 수술에 국내 처음으로 성공했다. 2000~2001년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췌장 섬세포 이식에 대한 연구를 하다 귀국해서 한 해 150~200명에게 신장이식, 10여명에게 취장이식을 하면서 췌장암 수술을 병행했다.
김 교수는 “장기이식은 종합적으로 수술을 설계해서 시행하는 눈이 있어야 하고 어려운 혈관수술에 능숙해야 하는데다가 사명감,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장기이식의 경험이 췌장수술에 도움이 된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식학회에서 ‘차세대 대표주자’로, 간담췌학회에서는 ‘어려운 수술을 개척하는 의사’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췌장암이 증가하는 현실을 보면서 스승에게 “이제 이식보다는 담췌장 수술에 집중하게 해달라”고 제안했고 3년 전부터 담췌장 수술만 담당하고 있다.
김 교수는 복강경 췌장수술의 국제표준을 만드는 ‘대표선수’다. 올해 미국 메이요클리닉, 프랑스, 스웨덴 연구진과 함께 췌장암의 복강경 수술의 효과에 대해 공동연구에 들어갔다. 내년에 리핀코트 윌리엄스 앤 윌킨스와 윌리-블랙웰 출판사가 각각 발간하는 췌장암 교과서에서 복강경 수술 부분과 췌장종양 수술 부분을 맡기도 했다.
김 교수는 최근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아산의공학연구개발센터장, 로봇수술센터장을 맡아 각종 연구개발의 리더로 나서게 된 것. 특히 아산의공학연구개발센터는 김 교수가 2년 동안 준비해 동료 교수 70여명과 함께 문을 연 곳으로 정부출연기관, 대기업, 벤처기업 등과 함께 첨단 의료기기, 재료, 영상, 정보 분야의 연구 개발을 통해 차세대 의료산업을 이끌게 된다. 그는 또 아산병원기독봉사회 멤버로 매년 한 번 캄보디아에서 무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췌장암은 재발이 잘 되기 때문에 조기진단, 정확한 수술, 맞춤 치료제가 나와야 ‘마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수술법도 개선할 여지가 많습니다. 췌장 몸통과 꼬리를 함께 절제하는 원위부 수술의 입원기간은 개복수술이 10~14일 걸리지만 복강경 수술은 5~7일밖에 안 걸립니다. 췌두부절제술의 경우 복강경수술이 7~10일로 개복수술 2~3주에 비해 훨씬 짧지만 많은 의사들이 꺼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술 최일선에서 가이드라인을 잘 만들고 수술법을 발전시키는 것이 제 임무라고 믿습니다. 이와 함께 의공학 연구에도 노력해 후배 의사들에게 새 영역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담췌장 수술’ 베스트 닥터에 김송철 교수
●김송철 교수에게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