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선택진료제...이 아이를 어찌 하나요?
7년째 반식물인간 상태로 침상에 누워있는 ‘손영준’
“영준아, 안녕?”
짧은 인사에 우두커니 천정만 바라보던 눈동자가 움직인다. 움켜진 채 굳어진 손가락과 팔, 움츠러든 발가락과 휘어진 종아리,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피부는 100일 된 아이가 되어버린 영준이의 지능만큼이나 하얗기만 하다.
“2007년 2월 4일.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벌떡벌떡 일어나게 돼요. 심장이 뛰고 화가 치밀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릅니다.”
영준이 어머니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져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사진=손영준군은 선택진료 의사가 아닌 레지던트 1년차가 수술 중 혼자서 부분마취를 하다 마취가 잘 안 되어 전신마취를 하는 중에 심정지가 왔다. 심폐소생술로 생명은 구했지만 갓 100일을 넘긴 아이의 지능에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눈으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반식물인간 상태로 7년째 병상에 누워있다. 출처: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간단한 수술이라더니···. 세미코마가 웬 말
2007년 2월 3일 토요일 오후, 고 3을 몇 주 앞두었던 영준이는 학원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 친구가 아르바이트하던 치킨집에 들렀다. 여기서 사장님의 부탁으로 배달로 자리를 비운 친구 대신 다른 배달을 나섰다가 내비게이션을 보다 신호를 놓친 봉고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우측 경비골 원위 간부 골절 및 우측 족근관절 내과 개방성 골절을 진단받은 영준이는 예상과 달리 일요일에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었다. 영준이 부모님은 갑작스러운 수술 이야기에 의아했지만, 정형외과 선택진료의사가 집도하고 마취과 역시 선택진료의사인 마취과 과장님이 참여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했다.
하지만 길어야 두 시간 반이면 끝난다던 수술은 예상 시간을 넘겼고 생각보다 길어진 수술시간에 초조해 하던 부모님의 귓가에 “608호 교통사고 환자 응급상황 발생”이라는 다급한 방송멘트가 들어왔다. 영준이었다. 불안감이 엄습한 가운데 상황은 10여 분 만에 종료되었고 수술도 마무리되었지만 수술실에서 나온 영준이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월요일 아침 선택진료의사인 마취과 과장님은 “자신은 영준이가 수술을 하는지도 몰랐고 마취과 레지던트 1년 차가 혼자서 부분마취를 하다 마취가 잘 안 되어 전신마취를 하는 중에 심정지가 왔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면 회복할 것이라던 영준이는 그날 이후 저산소증에 의한 뇌 손상이 진단되었고 한순간에 19살 청년에서 갓 100일을 넘긴 아이의 지능에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눈으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세미코마(반식물인간) 상태로 지금도 병상에서 생활하고 있다.
의료관행이라 하기엔 너무도 무책임한 유명무실한 선택진료
<영상=손영준군의 여동생 지혜양이 지난 5월 14일 <환자shouting카페>에서 “어떻게 사기로 선택진료비를 받는 죄를 지었는데도 돈만 돌려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http://bit.ly/16RCzj3)>
영준이의 마취과 선택진료의사는 마취과 과장이었다. 하지만 마취과 과장은 영준이의 수술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대신 레지던트 1년 차가 수술에 참여했다. 왜 마취과 과장이 수술에 참여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묻자 일요일에 마취과 과장이 수술을 위해 출근하는 경우는 없으며 모든 수술의 마취과 선택진료에는 으레 자신의 이름이 오르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환자들은 임상 경험이 풍부한 의사를 선택해 고비용을 지불 했지만 의료현장에선 ‘선택을 받은 의사 따로’, ‘치료를 하는 의사 따로’였던 셈이었다.
이에 분노한 영준이 부모님은 의료진과 병원을 사기죄로 형사고소 했지만, 경찰은 병원측이 허위청구한 선택진료비 70여만원을 돌려주었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고 의견을 제출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했다.
그리고 의료기관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받기 위해 중환자실에 있던 영준이를 보호자의 반대에도 1인실로 옮긴 병원은 오히려 8천여만원의 1년간 1인실 병실료를 내라고 소송까지 제기했고 영준이 가족이 패소해 이 비용까지 떠안게 되었다.
지난 7년 동안 영준이 가족은 간병비 만으로 1억원 이상을 사용했고 직장생활을 하던 영준이 아버지는 영준이의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고 영준이 엄마는 허리디스크와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영준이의 동생 지혜는 “어떻게 죄를 지었는데도 돈만 돌려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끝나지 않은 싸움, “제2의 영준이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영준이 가족은 환자단체연합회의 “환자Shouting카페(www.shoutingcafe.kr)” 참여와 ‘청와대 신문고 민원신청’ 등 7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영준이의 진실을 알리고 또 다른 제2의 영준이가 나오지 않도록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각고의 노력을 펼쳤다.
“2012년 12월부터 2013년 4월까지는 길거리에서 오프라인으로 1만 2천 명의 서명을, 그리고 다음 아고라 이슈청원(http://go9.co/mA3)에 ‘검찰과 보건복지부에 바랍니다. 선택진료비를 돌려주었으니 사기죄가 아니래요! 폐지해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병원에 대한 재수사와 선택진료 폐지를 위한 청원운동을 펼쳐 지난 6월 30일까지 4,000여 명의 온라인 서명을 받았어요.”
이외에도 지난 7월 14일 시작한 영준이를 응원하는 메시지와 선택진료 폐지를 요청하는 메시지와 사진을 담아 SNS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영준이 병문안 운동(www.sonyoungjun.com)’은 어느새 122명의 손님을 맞이했고 오늘도 계속 진행 중이다.
<사진= 지난 7월 14일부터 영준이를 완치를 응원하고 선택진료 폐지를 청원하는 피켓을 만들어 영준이 병실에 가서 영준이와 함께 사진을 찍어 SNS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영준이 병문안 운동’을 시작했고 어느새 122명의 손님을 맞이했고 오늘도 계속 진행 중이다. 출처: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선택진료의 별칭, 돈 먹는 하마, 울며 겨자 먹기
선택진료는 환자가 임상 경험이 풍부한 의사를 선택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 받도록 하기 위해 1963년 ‘특진제’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제도이고 1991년 ‘지정진료제’로 변경되었다가 2000년부터 ‘선택진료제’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환자인식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선택진료는 상급종합병원의 100%, 종합병원의 41.4%, 병원의 12.2%가 실시하고 있다. 특히 전체 병원 중에서 상위 5개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경우에는 선택진료 비중이 93.5%였다. 선택진료 환자 중 자발적으로 선택한 경우는 59.1%였고 원하지 않은 불가피한 선택은 40.9%나 되었다.
입원환자의 비급여진료비 중에서 선택진료비 비중이 24.4%를 차지했고 암, 희귀난치성질환 등 중증질환 환자의 경우에는 그 부담이 더욱 커진다. 선택진료비는 2004년 4,368억원에서 2012년 1조 3,170억원으로 3배 이상 급증했고 매년 800~1,000억원씩 늘어나고 있다. 추가적인 재료와 인력 투입이 없이 행위별수가제에서 행위를 할 때마다 추가 선택진료비를 받을 수 있어 선택진료제는 흔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비유된다.
[도표] 입원환자의 비급여진료비 중 선택진료비 비중이 24.4%를 차지하고 선택진료비는 매년 800~1,000억원씩 급증하고 있다.(출처: 국민행복의료기획단)
현행 선택진료제는 환자의 선택이 사실상 어려운 검사, 영상진단, 마취에 대해서도 선택진료비를 부과하고 있다. 선택진료의사 비율이 80%까지 허용되어 일반의사 비율은 20%에 불과해 환자의 일반의사 선택권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선택진료비로 인한 환자의 경제적 부담도 크고 이로 인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효과도 상쇄된다. 그렇다고 선택진료의사에 의해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에 어떤 차별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환자도 많아 진료 대기시간도 길다. 이러한 이유로 선택진료제에 대한 환자들의 불만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선택진료제 개선방안, 시민&환자단체는 페지, 병원계의료계는 폐지와 축소 모두 반대
이렇듯 선택진료제가 의료현장에서 의료의 질 향상보다는 병원 수익증대 목적으로 변칙적으로 운영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4월 보건복지부는 ‘국민행복의료기획단’을 구성했다. 기획단은 7개월 동안 20여 차례의 회의를 거쳐 ‘선택진료제 개선방안’을 만들었고 이를 10월 31일 개최된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했다.
기획단이 제시한 ‘선택진료 개선방안’은 2가지이다. 1안은 특정의사 선택에 따른 추가적인 환자부담으로 대표되는 현행 선택진료제를 폐지하고 질 평가 가산을 도입해 기관 단위 보상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다.(선택진료 폐지안) 2안은 검사, 영상진단, 처치․마취는 환자의 선택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선택진료비를 부과할 수 없도록 하거나, 일반의사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현행 선택진료의사 지정률 80%를 진료과목별 50% 이내로 축소하는 것이다.(선택진료 축소안)
[사진]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행복의료기획단은 지난 10월 31일 오후 2시부터 당산동에 위치한 그랜드컨벤션센터 2층 대회의실에서 ‘선택진료제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출처: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는 2안과 같이 선택진료 형태를 일부라도 유지하면 진찰, 의학관리 등 그 외 항목의 확대를 통한 선택진료비 규모의 재확대 위험이 크고 환자들의 불만도 계속될 것이라는 이유로 선택진료제를 폐지하고 의료의 질 평가 결과를 기반으로 기관 단위로 보상하는 제도로 전환하는 1안에 찬성했다.
그러나 병원계와 의료계는 저수가와 재정 적자를 이유로 ‘1안은 병원들을 서서히 죽이는 독약(毒藥)이고 2안은 병원들을 그 즉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약(死藥)이다.’라는 비유까지 써가면서 1안과 2안 모두를 반대했다. 어쨋든 선택진료제 개선에 관한 사회적 논쟁은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4대 중증질환(암, 희귀난치성질환,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의료비 국가책임제”에 대해 야당과 시민단체는 4대 중증질환에 치우친 편협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정부가 전체 환자를 대상으로 비급여진료비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선택진료비를 건강보험제도 영역 안으로 끌어들여 환자부담을 줄이는 정책추진은 시기적절하다.
따라서 정부는 2014년부터 매년 환자가 체감할 수 있는 선택진료비 부담 감소정책을 추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임기 이내 선택진료제를 폐지할 것과 선택진료제를 대체하는 ‘의료의 질 평가 기반 보상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정책적 결단을 신속히 내려야 할 것이다. <글=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