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열린 미국소화기학회 정기학술대회. 순천향대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조주영 교수는 ‘조기 위암, 식도암의 내시경 치료’ 교육 비디오를 발표했다. 이 비디오는 학회의 특별요청에 따라 제작됐으며 세계 각국의 의사 교육용으로 쓰인다.
조 교수 팀은 지난해까지 이 학술대회에서 ‘최우수 시청각 논문상’을 7년 연거푸 받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7년째에는 출품된 130편 중 1, 2위를 독차지했다. 학회는 조 교수팀에게 이제 경쟁 부문에서 ‘하산’하고 세계 소화기내시경 의사들이 참고할 ‘교과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조 교수는 위암이 있는 점막을 떼어내 암 조직만을 절제하는 내시경점막하박리술(ESD)과 점막하층의 암을 직접 도려내는 내시경점막하수술(ESS), 복강경과 내시경을 함께 사용해서 수술하는 하이브리드 노츠(Hybrid NOTES) 등 내시경을 이용해서 소화기질환을 치료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이 때문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쁜 삶을 살고 있다. 7월에는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열린 제10회 국제위암학회 학술대회에서 우수 발표상 2개를 받았다. 9월에는 세계 각국의 의사들을 자신의 병원으로 초청해서 국제 콘퍼런스를 열었다. 10월에는 중국 상하이로 넘어가 아사이태평양 ESD 포럼을 주관했다. 오는 12월에는 난징에서 중국 전역의 의사들을 모아놓고 내시경 치료에 대해 특강한다.
의사라면 대체로 ‘범생’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조 교수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어릴 적에는 시장통과 청계천이 활동무대였다. 의대에서는 ‘운동권 독서클럽’ 활동도 열심이었다. 의대 교수이지만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골드윈 오토바이를 몰고 다녔다.
그는 어머니가 ‘또순이’로 살면서 아들이 ‘안정적 개원의사’가 되기를 꿈꿨기 때문에 삶의 방향을 몇 차례 수정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평생 속옷을 한 벌도 산 적이 없다. ‘한량 아버지’의 속옷을 기워 입으면서도 자식의 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 아들은 전자제품을 좋아했다. 면목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청계천 아세아상가에서 무전기 조립품을 사와 친구들과 납땜을 하다가 집에 불을 내 쫓겨난 적도 있다. 지금도 집에는 탱크, 헬리콥터 등 모형전자제품이 그득하다.
조 교수는 모 대학 전자공학과에 수석 입학했지만 안정적인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어머니의 꿈을 꺾을 수는 없었다. 암울한 재수를 했지만 원하는 의대에 갈 수가 없었고, 후기인 순천향대 의대에 간신히 들어갔다. 3회 입학생이었다. 사이비종교단체가 운영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도 있었고, 미팅을 나가면 여학생들이 “학교가 순천에 있느냐”고 물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들어온 동기생은 휴학 후 공부해서 다른 곳으로 가기 일쑤였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재수 삼수생들이 대체로 끝까지 남았다. 다른 대학교 병원에서 실습하며 눈칫밥 먹기 일쑤였다. 조 교수는 이런 처지에서 오히려 “다른 의대생보다 더 뛰어난 실력으로 학교를 일류를 만들자”고 이를 악물었다. 6년 동안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의사고시를 친 뒤 방위로 입대했다.
“대학교 때 아버지가 별세해서 부선망자(父先亡子) 요건으로 6개월 방위를 받았는데 3주간의 훈련을 마칠 무렵 의사고시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아마 의사 방위 1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군 복무 후 인턴 과정을 거쳐 내과를 지원했지만 또 재수를 해야 했다. 내과에는 1회생들로 꽉 차 있었던 것. 1년 동안 개원외과에서 충수염 수술부터 출산까지 올라운드 플레이로 뛰다가 내과에 복귀, 3년 동안 심장내과 전공의를 마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심장내과에 전문의 자리가 없었다. 조 교수를 지켜보던 소화기내과 심찬섭 교수의 꾐에 빠져 전공을 바꿨다. 하지만 ‘안정적 개원의사’에 대한 어머니는 계속 요구했다. 대학에서 나와 ‘안정적으로 돈을 벌라고.’
조 교수는 대림성모병원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호기심과 학구열은 식지 않았다. 부근 한림대 강남성모병원의 도서관 사서가 출입증을 끊어줄 정도로 온갖 의학서적과 씨름했다. 결국 어머니를 설득해서 모교의 교수로 돌아와서 밤을 새우는 노력 끝에 세계 최고의 대가가 됐다.
“어떤 동료교수는 대학의 브랜드가 약해서 환자가 안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그럴수록 당신의 브랜드를 키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 교수는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ESD의 세계에 들어서 고려대 안암병원 전훈재, 삼성서울병원 김재준, 부산백병원 설상영 교수 등과 경쟁하면서 이전에는 개복수술로 치유했던 환자들을 내시경으로 치료하는 분야를 발전시켰다.
2011년에는 식도 조임근이 잘 안 열려서 음식을 못 먹는 식도무이완증 환자 31명을 내시경을 넣어 식도괄약근을 찢는 경구내시경근층절개술(POEM. Per-Oral Endoscopic Esophagomyotomy)로 치유한 뛰어난 결과를 발표해 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또 레이저 ESD 치료법을 도입했다.
조 교수는 ‘전자제품 광’답게 내시경과 그 부품 개발에 관심이 많다. 200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회 유럽학술대회에서 자신이 직접 개발한 내시경 수술도구인 포크나이프를 발표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자비 2200만원을 들여 프랑스제 최첨단 현미경내시경을 임대해서 위암 환자 30여명을 치유한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하고 이보다 더 뛰어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수 소재의 내시경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 3D 프린터로 소화기내시경 부속기구를 만드는 연구 등으로도 밤을 새우기 일쑤다.
조 교수는 “어릴 적부터 기계를 좋아했고 지금도 남들이 키덜트(Kidult)라고 놀릴 정도로 기계를 사랑하는 것이 새 치료기 개발의 토대”라면서 “전자제품에 대한 호기심이 새 기구와 시술법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위암 진단을 받고 무작정 겁을 내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1기 환자는 대부분 살 수 있습니다. 이제는 암 환자도 ‘삶의 질’을 생각할 때입니다. 무작정 수술을 받기보다는 어떤 치료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인지 신중히 고려해서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