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뜻에 따라" 수술 시작전 손을 보며...

2010년 6월 22일 오후 일부 인터넷 의학전문지들이 가톨릭의료원의 보도유예(엠바고) 요청을 깨고 기사를 내보냈다. 의료계가 웅성거릴 소식이었다. 서울대의 ‘최고 칼잡이’가 가톨릭의료원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기사였다. 뉴스의 주인공은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성숙환 교수. 삼성서울병원 심영목 교수와 함께 우리나라 폐암과 식도암 수술의 양대 산맥으로 공인받고 있던 대가가 이직한다니, 온갖 풍문이 나돌았다. 프로 스포츠선수에 버금가는 막대한 이적료를 받았느니, 저택과 수입승용차가 제공됐느니….

그러나 성 교수는 “원래 새 분야를 개척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2003년 1월 분당서울대병원 설립 때 자원해서 그곳으로 옮겨 흉부외과 팀의 얼개를 만들었으며 이 팀이 술술 돌아가자 새 일을 하고 싶었던 차에 가톨릭의료원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의료원장인 이동익 신부가 의대 교수들과 함께 독실한 천주교 신도인 성 교수를 설득하자 ‘역마살’이 발동했다는 것.

성 교수는 가슴을 열고 하던 기존 수술과 달리 겨드랑이 아래에 구멍을 1~5개 뚫고 진단기구와 수술장비를 넣어 수술하는 흉강경 수술의 국내 ‘최고수’로 꼽힌다. 이 수술은 기존 개흉수술보다 회복이 빠르고 고통과 감염이 적은 환자 친화적 수술이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폐암, 식도암 수술 분야의 국내 최고 경지에 오른 의사로 미국 하버드대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워싱턴대 의대 세인트루이스병원과 세계 최고 수준의 암전문병원인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등에서 실력을 닦았다.

성 교수는 고교3년 때 ‘가야 할 의학과’와 ‘재미있는 화학과’를 두고 고민하다가 ‘가야할 길’을 갔다. 가련한 동생 때문이었다. 4살 아래 여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우심실에서 혈액이 나가는 곳이 좁아져 있고 심실의 사이막에 구멍이 있는 ‘활로4징’ 환자였다. 부모는 늘 여동생을 안쓰럽게 봤고, 친척들은 “쯧쯧” 혀를 찼다. 유명 병원 의사도 수술하면 살 확률이 반이라면서 주저한다는, 어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귀 넘어 들었다.

성 교수는 “내가 의사가 되면 여동생을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의대에 지원했고 여동생이 밝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꿈꾸며 흉부외과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틈날 때마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져 동생이 수술을 받고 회복될 가능성이 큰 심장병임을 알아냈다. 그는 노준량 교수에게 “동생을 살려달라”고 부탁했고, 동생은 수술을 받고 건강을 찾았다. 여동생은 사업가와 결혼해서 4녀1남을 낳아 기르다 최근 첫딸을 출가시켰다.

성 교수는 처음에 심장병 수술을 맡다가 스승인 서정필 교수의 명에 따라 폐와 식도 수술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에는 폐암이나 식도암 진단이 곧 ‘사망선고’와 마찬가지여서 누구도 맡기를 꺼렸지만, 성 교수는 ‘남이 가지 않은 길’이어서 더 전의를 느꼈다.

성 교수는 흉강경이 나오기도 전에 필요성에 대해서 절실히 느꼈다. 전공의 때 비뇨기과의 방광경을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가슴 안을 보면서 치료하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하면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91년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병원 연구원으로 있을 때 한 의료기기 회사가 정말 그런 기계를 들고 왔다. 처음 보는 흉강경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젊은 여자 의사가 수술 시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처음 사용하는 장비인데다가 조수와 손발이 안 맞았기 때문. 옆에서 한 참 동안 참관하던 조엘 쿠퍼 교수가 ‘형편없는 젓가락 수술(Chop Stick Surgery)’로 규정하고 자리를 떠났었다. 그러나 성 교수의 머릿속에서는 흉강경이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어차피 서양인과 달리 젓가락을 쓰는데, 젓가락질 잘하는 우리라면 흉강경 수술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성 교수의 스승 쿠퍼 교수가 학회에서 만날 때마나 ‘젓가락 수술’을 비난했지만, 제자는 그 길을 쭉 가서 스승으로부터 흉강경 수술에 대해 인정받는 대가가 됐다.

성 교수는 1992년 귀국하자마자 자비로 흉강경을 구입해 50대 기흉 환자를 수술했다. 지금은 30분 안에 할 수술을 2시간 땀을 뻘뻘 흘리며 수술했다. 곧이어 종격동 종양에 걸린 10대 환자를 수술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7000여명의 각종 폐, 식도 환자를 흉강경으로 수술했다.

성 교수는 1994년 20대 결핵 환자의 한쪽 폐를 다 떼어내는 수술에 성공해서 언제든지 폐암 환자도 수술할 실력에 도달했지만 과학적으로 기존 개흉수술에 비해 더 낫다는 확신이 서지 않아 서두르지 않았다. 수술효과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쌓이고 장비가 개선되자 2004년부터 폐암 환자를 흉강경으로 수술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환자의 20~30%를 흉강경으로 수술하다가 2007년부터 초기 폐암은 흉강경을 우선했으며, 지금은 90% 이상이 흉강경 수술을 받고 있다. 성 교수의 폐암 수술 성공률은 98.5%이며 △수술 뒤 1년 생존율이 92% △2년 82% △3년 78% △5년 68.9% 등으로 나타나 미국 최고의 암 치료기관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성적이다.

그는 늘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보면서 기도한다.

‘환자는 스승이고 저는 신의 뜻에 따라 이 손으로 사람을 살리는 전달자에 불과합니다. 이 손으로 이 환자도 살릴 수 있도록 해주소서.’

성 교수는 의대 졸업반 때 흉부외과 예비 전공의로서 ‘흉부외과 전공의 야유회’에 갔다가 불을 지피기 위해 가시투성이 나뭇가지를 집었다 선배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외과 의사의 손은 사람을 살리는 손이다. 함부로 다루지 말라.”

이후 성 교수는 ‘사람을 살리는 손’을 섬세하게 하기 위해서 자나 깨나 노력했다. 전공의 4년 동안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왼손으로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었다. 가위나 수술집게 같은 도구가 손에 익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회진을 하거나 복도를 다닐 때 의사 가운의 단춧구멍에 실을 넣고 양손으로 매듭을 묶는 연습을 했다. 방석이나 베개가 온통 꿰맨 자국으로 가득하도록 바느질 연습도 했다. 성 교수는 “정말 손을 한시도 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성 교수는 “다른 의사도 이렇게 한다”고 말했지만, 대부분의 의사는 길어도 몇 달이면 훈련을 끝낸다.

성 교수는 “폐암 환자도 조기에 발견해서 수술 받으면 얼마든지 완치할 수있다”면서 “폐암에 걸리면 죽는다는 부정적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기발견이 중요하며 55~75세의 하루 한 갑 이상 30년을 흡연한 골초는 매년 저선량 컴퓨터단층촬영(CT)을 받을 것을 권고했다.

“담배는 폐암의 명백한 원인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아버지는 담배 피우면서 오래 살았는데 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느냐’고 따지는데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4~70배까지 올라갑니다. 담배를 피워도 좋다는 것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캐리커쳐=미디어카툰 최민 화백>

호흡기질환 수술 베스트닥터에 성숙환교수

성숙환 교수에게 물어본다

[웹툰] 침묵의 살인자 폐암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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