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시장도 방사능 파장...유럽산에 일제 밀려
회사원 장 모 씨(32)는 2010년 가을 일본 도쿄 출장길에 슈퍼마켓에서 생리대를 산 뒤 줄곧 일본 인터넷 사이트와 구매 대행 웹사이트 등을 통해서 같은 제품을 구매해왔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생리대도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일본인의 철두철미함을 알기 때문에 한쪽 귀로 흘렸다. 그러나 올 초 소문이 다시 돌고 일본 정부가 원전 피해를 숨긴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마음이 흔들렸다. 마침 친구로부터 독일제를 추천받자 그는 미련없이 제품을 바꿨다. 독일 패드를 써본 장 씨는 “일본제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한탄했다.
‘그날’에 유독 민감한 여성들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자극이 덜 하거나 냄새를 감춰 줄 수 있는 제품이라면 과감히 투자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제품이 생리대 시장의 일정 부분을 점유해온 까닭이다. 그러나 일본 방사능 파문이 두 번에 걸쳐 일면서 일본 제품을 기피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이 틈새를 유럽의 기저귀 업체들이 만든 제품들이 파고들고 있다.
미국 USA투데이에 따르면 세계 생리대 시장 규모는 약 800억 달러. 미국의 P&G, 킴벌리 클라크, 존슨&존슨과 스웨덴의 SCA, 일본의 유니참과 카오 등의 순이다. 국내 시장규모는 1조5000억 원 정도로 한미 합작회사인 유한킴벌리와 한국P&G가 양분하고 있다. 최근 한일 합작회사인 LG유니참이 시장을 넓히고 있고, 각종 기능성을 강조한 중소기업 제품들도 도전장을 내고 있다. 10% 정도는 수입 산이 차지하고 있다. 이중 일본 제품이 유럽 제품으로 대치되고 있는 것. 일본 제품이 타격을 입는 첫째 원인은 방사능 공포, 둘째는 반일감정의 부상이다.
일부 국산 업체는 재작년 자사의 생리대가 일본제 흡수체를 사용한다는 글이 인터넷에 돌아다녀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한 회사는 자사 제품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인근에서 생산된다는 루머가 SNS에 떠돌아 사고지역과 650㎞ 떨어진 안전한 장소에서 생산된다고 해명했지만 소문이 가라앉지 않아 속을 썩이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의 게시 글들이 숨바꼭질을 하듯, 지우면 다시 올라와 야금야금 이미지를 갉아먹고 있는 것.
업계 관계자는 “여성은 남성과 달리 감성적이어서 인터넷에 한번 악평이 나면 아무리 합리적으로 설명해도 그와 관련된 상품은 쳐다보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이 때문에 일제 생리대가 우리 땅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제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대신하는 대표적 상품이 스웨덴 SCA와 독일 하트만의 제품. 둘 다 요실금 패드와 기저귀를 생산하는 업체라는 특징이 있다. 이들 제품엔 흡수력과 통풍성, 착용감 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력이 특별히 요구된다. SCA는 ‘테나’라는 브랜드의 요실금 패드를 생산하고 있으며 생리대는 리브레세, 바디폼, 나나, 누베니아, 리브라 등 나라에 따라 브랜드가 다르다.
최근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제품은 하트만의 몰리메드 여성 패드. 생리, 요로, 질 분비물에다 요실금까지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종의 다기능 흡수대다. 서울 서초, 강남구 등의 ‘민감한 여성’ 사이에 품질이 좋고 편리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찾는 쇼핑몰을 중심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유럽 위생용품 수입업체 유로파크 코리아의 이기원 대표는 “기저귀나 요실금 패드를 생산하는 업체는 산성도를 유지하거나 악취 흡수, 통풍을 위한 섬유 처리 기술이 발달해서 이를 생리대로 쓰면 여성의 섬세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다”면서 “그 때문에 유럽 최고 기술의 여성 패드가 인기를 끄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건강상품 전문 쇼핑몰인 건강선물닷컴(www.건강선물.com)의 최승미 팀장은 “최근 하트만 몰리메드 여성패드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는데 상품 페이지의 댓글을 보면 대부분 여러 문제로 속을 앓다가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했다는 글”이라면서 “유럽 제품이 생리대 시장에서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