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폭력 유발? 글쎄... 되레 긍정적 효과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게임이 공격적인 행동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많이 발표됐다. 게임과 폭력의 인과적 관계는 특히 국내 언론 보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임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의 뇌는 감정을 통제하는 전두엽 부위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뇌가 거의 비슷한 형태라고 보도한 언론이 많다. 그러나 이에 대해 게임과 뇌의 관계를 연구 중인 중앙대학교병원 게임과 몰입 치료센터는 ‘이미 실험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실인 양 알려져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한덕현 중앙대학교병원 교수는 지난해 초 게임과 몰입치료센터 성과식에서 “아직 게임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이영식 과장은 게임중독자와 마약중독자 뇌 비교 실험의 허점을 지적하며 “게임을 많이 해서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보다 우울증에 빠져서 게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게임에 대한 다각도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05년에 있었던 미국 법원의 판결도 주목할 만하다. 게임 비판론자들이 폭력적인 게임의 판매를 금지하기 위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법원은 원고가 제출한 게임이 폭력을 유발한다는 증거의 효력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는 심리학자들의 기여도가 컸다. 심리학자 골드스타인과 윌리암스는 법원에서 게임 비판론자들이 제출한 증거를 학문적으로 검토했다. 이들은 앤더슨의 연구가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는 법원이 게임 비판론자들의 주장을 기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즉, 모든 심리학자가 게임과 폭력적인 행동에 연관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또 최근 있었던 ‘폭력적 게임의 판매 제한에 대한 소송’ 또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긴 법정 싸움 끝에 2011년 게임 비판론자의 패배로 대법원 판결은 마무리됐다.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평소 폭력적인 게임을 즐겼다고 해도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을 원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범죄학자 케이시 조단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이뤄진 연구들에서 심리학자들의 입장이 심하게 엇갈리고 있으며,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게임이 공격적 행동을 유발한다는 과거 연구의 결론에 반박하는 연구가 나올 뿐만 아니라 게임을 잘 활용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연구도 많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시각 훈련이다. 심리학자 그린과 베이브리어가 수행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메달 오브 아너’라는 FPS 게임을 하게 했더니 ‘시각 주의력이 향상됐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들의 다른 연구에서는 게임을 즐겨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시각적으로 사물 탐지하는 일을 잘 숙달한다’는 결론를 얻었다.
게임의 시각 훈련 효과를 시각적 재활 치료에 응용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특히 게임을 통한 재활 치료는 전통적인 방식의 치료보다 더 광범위하다. 게임은 그 자체로 재미있어서 지루하게 마련인 다른 시각 훈련보다 환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 외에 퍼거슨과 그라자는 ‘부모가 게임에 대해 적절히 지도하고 관심을 가지면 자녀의 사회성은 더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 심리학자 더킨은 게임을 적당히 즐긴 청소년이 게임을 전혀 하지 않은 청소년에 비해 평균 성적이 더 높았다’는 의외의 조사를 보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