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암 치료후 경과가 더 좋을까
‘성진실의 방사선 이야기 28’ - “어떤 사람이 암치료 후 경과가 더 좋을까; 예후인자”
주철씨는 전직 대형 트레일러 기사이다. 퇴직 후 그럭저럭 소일 중에 직장암 진단을 받고 하늘이 무너지듯 하였다. 다행히 외과적으로 제거가 가능한 단계였고, 전문 의사의 권유에 따라 항암화학-방사선의 병용 요법과 수술을 잘 마쳤다. 1년여 쯤 지나서 간으로 암이 전이가 된 것이 발견되었다. 환자도 가족도 당황하였다. 스케줄대로 꼬박 꼬박 치료하고 하라는 것 다 따라했는데, 전이라니. 대체 치료는 제대로 한건가하고 의심이 들었다.
재직하던 시절 거칠게 살아온 그도 그렇지만 부녀회장하는 그의 아내도 한 목소리 하는 사람이다. 그동안의 치료 과정에서 느낀 크고 작은 섭섭한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내밀만한 백도 없이 대형병원에 오니 푸대접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당 의료진에게 참았던 불평을 쏟아내고, 여기만 병원이냐 싶어 의무기록 사본을 챙겨들고 몇 몇 병원을 전전하였다. 새로이 예약을 하고, 복사본인 영상 검사의 영상 품질이 떨어진다고 다시 사진을 찍고... 운좋게 전이가 더 확산되지는 않아서 아직 전이 병변은 한 개라고 한다. 수술까지 필요하지 않고 고주파를 이용한 소작법으로 치료 받았다. 1달이 지나서 결과를 확인해보니 이전 것은 치료가 잘되었는데, 주변으로 몇 개의 작은 결절들이 더 생겼단다.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라 모르지만, 어떻게 한 달 만에 이렇게 퍼졌단 말인가, 한 달 전 검사할 때 제대로 정밀 진단은 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주철씨 내외는 주변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고교 동창들, 상조회 회원들, 조기 축구 회원들, 심지어 부녀회 회원들도 뭐가 좋다더라, 뭐먹고 씻은 듯이 나았다더라 하며 위로한답시고 이것저것 사들고 왔다. 수술할 때 까지만 양의학이지 그 다음 단계는 소용없다면서 기 치료를 권하는 지인도 있었다. 처음에는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병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진행되니까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간전이가 처음 나타난 때부터 1년이 흘렀다. 한동안 식사도 잘하고 혈색도 좋아서 지인들의 권유를 따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자기를 아끼는 마음으로 좋은 것만 권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배 깊숙이 압박감과 함께 통증이 오고 음식을 먹기도 힘들어지면서 몸에 심한 탈진 증세까지 몰려들었다. 그동안 각종 민간요법을 믿고 매달렸던 것이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는 몹시 불안해졌다. 필자가 주철씨를 만나게 된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는데, 그는 누구랄 것도 없이 자신에 대한 원망에 몹시 풀이 죽어 있었다.
검사 결과 간에 생긴 전이성 결절이 개수도 늘고 크기도 1.5배가량 커져있었다. 복부 대동맥의 주변으로 암이 임파선에 전이되어(임파선 전이암) 큰 덩어리가 혈관을 압박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것이 증상을 일으키는 주범인 것으로 보였다. 이럴 때는 방사선 치료가 꼭 필요하다. 임파선 전이암 부위에 방사선 치료를 시행하는 3주 동안 다소의 구역증을 호소하기는 하였지만 잘 견뎌냈다.
방사선 치료는 그 효과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걸린다. 치료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통증은 다서 줄어드는 듯 하였고 다시 1주정도 지나니 눈에 뜨일 정도로 통증이 호전되었다. 치료가 종료되고 한 달이 지나서 영상검사를 한 결과 종양의 크기가 약간 감소하였다. 3개월이 지나자 거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정도로 줄어들었다. 간에 있는 3개의 결절은 위치가 각각 달랐는데, 그중 2개는 고주파 소작법으로 잘 치료가 되었고 횡경막 근처에 있는 또 하나의 결절은 고주파 소작법이 취약한 부위라, 고선량의 방사선을 단기에 조사하는 방법으로 역시 잘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6개월이 채 못가서 흉부까지 임파선 전이가 확산되고 광범위하게 폐전이가 진행되었다. 항암 약물치료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자 결국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숙자씨는 담도암 환자이다. 연세가 일흔이 되어서 암이 진단되니, 이전 같으면 세상을 하직하기도 하는 시기인데, 본격적인 암 치료를 받아야 하나 싶었다. 벌써 10여 년 전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자식들은 다 출가하여 이제 과년한 막내딸과 같이 지내는 터인데, 비용도 그렇고 자식들에게 부담될까봐 걱정이었다.
기우였다. 자녀들이 나서서 역할을 분담했다. 어머니 팔순 때 쓰겠다고 그동안 매달 조금씩 돈을 모아온 것이 유용하게 쓰일 기회였다. 수술과 이후 입원하는 기간, 항암 약물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위해 계속 외래 진료 방문하는 동안, 자녀들은 스케줄을 짜서 교대로 어머니를 돌보았다. 정 어려울 때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았다. 간병의 역할이 한사람에게만 쏠리지 않다 보니 누구하나 지치거나, 각자의 가정에까지 갈등이 번지는 일이 없었다. 각자 생각이 다른 경우도 있었지만 의사 결정은 어머니와 함께 사는 막내의 의견을 따랐다. 교사인 막내는 친지들이 올 때 마다 한 말씀씩 거드는 일체의 ‘카더라’ 통신을 차단시키고, 철저하게 의사의 조언을 따르고 신뢰했다. 영양과 위생 뿐 만 아니라, 좋아하시는 음악과 옛 사진첩까지 가져다가 어머니가 정서적으로 안정되도록 하였다.
수술 후 방사선 치료에 대한 진료를 받기 위하여 진료실을 방문한 숙자씨를 보며, 필자가 오히려 당황하였다. 편안한 모습에, 나을 수 있다는 확신, 같이 온 가족들은 사랑과 신뢰의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숙자씨는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넨다. 종일 이런 암환자만 보시니 얼마나 힘드시냐고.(종일이 아니고 지금까지 30년 암환자만 보았답니다) 우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방사선 치료를 진행하는 5주간 동안 정말 좋은 경과를 보였다.
숙자씨가 바로 엊그제 다시 진료실을 방문하였다. 5년이 흐른 것이다! 암환자에서 재발이 없이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완치를 의미한다. 암에 걸릴(재발할) 확률이 이제 일반인과 같아졌다는 뜻이다. 팔순 잔치할 때 부르시겠단다.
암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은 왜 환자마다 결과가 다를까 하고 오랫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치료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 예측하는 소견들을 예후 인자라고 하는데 이를 가지고 환자마다 어느 정도 결과를 가늠하는 것이다. 몇 가지 잘 알려진 것들이 있다. 1기, 2기 하는 병기라든가, 조직을 떼어내서 정밀검사해서 확인하는 암세포의 성질(증식하는 속도, 혈관이나 임파관, 신경세포 등, 주변 조직으로 침투하는 호전성, 특정한 암유전자를 발현하는지....), 암표지자(흔히 암수치라고 한다)가 얼마나 높은지 등등. 학문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분자 생물학적인 차이도 큰 역할을 한다.
그 것 말고도 매우 중요한 인자가 있는데 바로 신체 활력상태이다. 아무 증상도 없고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한 경우부터 종일 침상에 누워 지내야 하는 말기 상태까지를 5등급으로 나누는데 같은 암의 같은 병기라도 활력상태에 따라 치료성과가 크게 차이가 난다. 활력 상태는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암은 자기가 생존/증식하기 위하여 환자의 신체에서 필요한 영양소/에너지를 다 가져다 쓰므로 암환자는 일종의 에너지 고갈 상태가 되어 기운이 없고 피곤하다. 게다가 암이 분비하는 각종물질과, 항암 치료과정으로 인한 독성 등으로 활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환자에서 활력상태가 매우 잘 유지되는 것을 보게 된다. 대개 그들의 공통점은 암을 앓기 전 건강 상태가 양호했었고, 암 치료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실제 팔순을 바라보는 췌장암 환자는 의학적으로는 완치라고 하기 어려운 상태인데도 진료실에 들어설 때마다 반가이 악수를 청하며 자랑하곤 한다, 색소폰을 배우고 있다고, 무대에 한번 서겠다고 벼르면서. 가족의 정서적인 지지도 중요하다. 암 전문 의사들끼리는 농담 삼아, 딸이 있고 없고가 또 하나의 예후인자라고 이야기한다. 위생, 섭생, 정서적인 면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예후 인자는 바로 신뢰감이다. 주철씨를 보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의료진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직장암은 간으로 전이가 잘되는데, 몇 개까지 생겨도 대개 잘 치료되며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 재발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바른 판단에 걸림돌이 되었던 것 같다. 혹은 의료진이 충분한 설명을 잘 못하여 환자와 가족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잃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문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