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공포- 성진실의 방사선 이야기 26
작금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북한 핵무기일 것이다. 북한의 핵위협은 순식간에 그들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에 올려놓았고, 북한의 젊은 지도자를 세계적인 인물로 부양시켰다. 한동안 신문의 주요 면을 장악했던 호화 별장 접대니 미남배우 섹스 스캔들이니 하는 사건의 주인공들은 이제 대중의 기억에서 점차 멀어져 가니, 이들이야 말로 북한 핵위협의 최대의 수혜자가 아닐까도 싶다. 한 말씀하는 분들은 우리 국민이 너무 무감하다고 한탄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그들이 절대로 우리를 공격하지는 못할 거라는 나름 논리와 함께 우리 국민의 예지력을 치켜 세우기도 한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었지만 핵무기의 특징은 가공할만한 파괴력이다. 여기에다 “핵”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심-살아 남더라도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까지 더해진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재래식 폭탄에서 보이는 파괴력 이외에 핵폭발로 발생되는 방사선 피폭에 대한 두려움이다. 살아남은 자가 겪는 질병 또는 장애로 인한 고통의 시간들이다.
많은 량(고선량)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어떻게 될까? 이는 실험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후 생존자에 대한 자료나 마샬 군도의 핵 낙진 사고, 체르노빌 사고 등 원자로와 관련한 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축적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고선량 방사선에 피폭되었을 때 인체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인간이 고선량의 방사선에 피폭될 때 보이는 반응을 “급성 방사선 증후군”이라고 한다. 증후군이라 함은 어떤 질병 또는 건강 유해 요인으로 인하여 여러 다양한 증상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날 때 이들 증상들을 묶어서 일컫는 의학 용어이다. 즉, 방사선 피폭 후 인체가 보이는 반응은 매우 일관성있게 나타나며 이는 얼마나 많은 량의 방사선을 받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제일 먼저 전구 증후군 단계가 나타난다. 식욕이 없고, 메스꺼움, 복통에다가 결과적으로 탈수증, 체중 감소 등 주로 소화기 계통의 증상들이 있다. 전신이 피곤하고, 발한, 열, 두통과 혈압이 떨어지는 등 신경-근육계통 증상들도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 중상들이 나타나는 시기, 지속되는 기간, 심한 정도는 피폭된 방사선량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이를테면 고선량에 피폭된 경우 증상 발현의 시기가 더 이르고 증상의 정도도 중증으로 더 심하다.
그 다음 잠복기 단계가 온다. 아무 증상이 없이 멀쩡해 보이는 단계이다. 얼마나 많은 방사선량에 피폭되었느냐가 잠복기 기간을 좌우한다. 고선량에 피폭될수록 잠복기가 짧다. 극단적으로는 전구 증후군에서 보이는 증상들이 잠복기도 없이 지속적으로 나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고선량에 피폭되었다는 증거로서 매우 위험하다는 신호이다.
잠복기를 지나서 본격적인 증상의 발현이 온다. 100 그레이 이상의 고용량 방사선을 받는 경우는 24~48시간 내에 사망에 이른다. 이정도의 방사선이면 대부분의 장기가 다 손상을 입지만 무엇보다도 뇌혈관계의 손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오는 탓이다. 1958년도 미국의 로스 알라모스 원자로에서 원전 종사자가 이정도의 고선량 방사선에 피폭된 사고가 있었다. 희생자는 사고 즉시 쇼크 상태에 빠지고 의식을 잃은 후 35시간째에 사망하였다. 1964년도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어서 희생자는 사고가 발생한지 49시간째에 사망하였다.
이보다 적은, 10 그레이 정도의 방사선에 피폭이 되면 3~10일 사이에 심한 설사와 탈수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위장관의 내피를 이루는 상피세포들이 사멸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으면 위, 소장을 거치면서 소화가 되고 이 과정을 거친 최종 산물들이 장의 점막 상피세포를 통해 흡수가 되어야 비로소 신체에 영양분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장의 점막 상피세포가 모조리 소멸되면 음식물은 그냥 장을 통과해 지나갈 뿐, 영양공급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 물도 마찬가지이다. 마신다고 다 몸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도 소방수 수명이 이정도 수준의 방사선에 피폭되었다. 이들은 골수 이식을 시행 받아서 골수 기능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장관 점막의 상피세포들이 소실된 것을 복구할 방도는 없었다. 이들은 탈수, 혈압 강하 등으로 결국 10일 이내에 사망하게 되었다.
2.5~5 그레이의 방사선에 피폭된 경우, 이 수준의 방사선에서도 치명적인 손상을 받는 장기는 골수 조직이다. 골수는 혈액 세포로 성숙되어 가는 혈액 모세포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므로 방사선에 피폭되면 혈액모세포들이 사멸한다. 결국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같은 혈액세포가 만들어지지 않게 되어 이로 인한 증상을 겪게 되는 것이다. 피폭되고 나서 3주 정도 지나면 오한이 들고 심한 피곤감을 느끼며, 피하 조직에 출혈이 나타나 피부에 여러 개의 반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탈모가 나타나기도 한다. 혈액 세포는 인체의 기본적인 면역력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방사선 피폭으로 면역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세균에 쉽게 감염되기도 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에 원전 종사자, 소방수, 응급 요원 등 총 203명이 이 수준의 방사선에 노출되었다. 이들 중 35명은 심각한 수준의 골수 손상을 입었고 그들 중 14명은 결국 사망하게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고 회복되었다. 일반적으로 어리거나 연로한 층이 더 취약하게 반응하며 같은 조건에서도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적으로 방사선에 피폭되어서 희생된 경우 이외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과량 섭취하여 이로 인한 “급성 방사선 증후군”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이전 글에서 잠시 소개하였던 팔레스타인 지도자 아라파트의 경우도 그가 사망하기까지 겪었던 각종 증상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의심된다. 그의 주검을 다시 정밀 조사한다고 했으니 지켜 볼 일이다. 러시아 연방 보안부 요원으로 활약하다가 영국으로 망명 후 귀화한 알렉산드로 리트비넨코의 암살 사건도 매우 전형적인 급성 방사선 증후군 예이다. 그의 경우는 부검을 통하여 폴로늄-210이라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과량 섭취한 것이 사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섭취한 폴로늄의 양은 치사량의 수배에 달하는 과량이었는데 이는 원자로에서나 생산해낼 수 있는 수준이어서 그의 암살에는 국가 수준의 조직적인 배후가 의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