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종현이 없도록… 환자 안전법 제정을..

"누군가 종현이 앞에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사고를 알려줬다면, 종현이는 지금 살아있지 않을까요? 순서가 바뀌었지만 제가 그 일을 하려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빈크리스틴 의료사고로 아홉 살 종현이를 잃은 어머니의 말이다.

또 다른 종현이 없도록… 환자 안전법 제정을..정종현 군은 정맥에 주사해야 하는 빈크리스틴이라는 항암제를 척수에 잘못 주사한 사고로 2010년 5월 19일 소중한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8월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와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대표의 중재로 병원과 합의는 끝났지만, 종현이 어머니의 외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종현이와 같은 희생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9일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신관에서는 '종현이 법'으로 불리는 '환자 안전법' 제정을 통해 제2·제3의 정종현 군이 더는 나오지 않게 하자는 취지의 입법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 대한약사회 조찬휘 회장,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오제세 위원장 등 정부와 의약계 관계자들이 참여해 '환자 안전법' 제정을 위한 관심을 나타냈다.

빈크리스틴 의료사고로 아홉 살 아들을 떠나보낸 종현이 어머니 김영희 씨는 종현이 사망 이후 의문을 품고 자료를 찾아보던 중 수많은 아이들이 이 사고로 숨지고, 개인의 합의로 마무리되면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종현이 이후에도 지난해 10월 빈크리스틴 사고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김영희 씨는 "종현이처럼 한 자리에서 놓은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투여했지만, 척수 주사를 놓는 의사가 냉장고에서 약을 꺼내면서 척추 약이 아닌 빈크리스틴을 꺼내 척수강 내로 투여했고 몇 시간 뒤 간호사가 빈크리스틴을 정맥에 놓으려고 약을 찾다가 쓰레기통에서 빈 주사기를 발견해 교차 투여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종현이 어머니는 이어 "종현이는 건강 차상위계층으로 치료비 전액을 국가에서 받았다. 그런데 일선 의료현장에서 주사기를 잘못 잡는 사소한 실수로 국민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의료사고가 나면 개인과 합의해서 사고가 묻히거나, 병원과 의료진은 조직적으로 침묵해 의료사고가 수집되지 않는데, 이 관행을 깨고 제도적으로 의료사고를 수집해 예방시스템을 갖추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영희 씨는 "의료진 개개인은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데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병원은 시스템 안에서 의료진이 혹사당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를 찾은 진영 복지부 장관은 "의료 현장에서 환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자발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복지부도 의료기관인증제, 의료분쟁조정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은 의료사고 예방을 위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진 장관은 이어 "환자 안전은 박근혜 정부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인 만큼 국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 만큼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수립하겠다"고 강조했다.

오제세 국회 보건복지위원장도 "환자 안전법을 제정한 나라는 아직 많지 않다. 미국도 2008년에 제정한 만큼 우리나라도 그렇게 늦지는 않았다"면서 "종현이의 희생을 기리고 오늘 이 자리가 뜻깊은 자리가 되도록 앞으로 환자 안전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법 제정을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보통 빈크리스틴 사고는 병원 원무과에서 거액으로 합의하고, 언론이나 단체에 알리지 말아 달라는 단서를 단다"면서 "처음 찾아와 제2·제3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게 해 달라는 종현이 어머니의 당부에 지난 3년간 종현이 법으로 불리는 환자 안전법 제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도 "종현이 사건 당시 소견서 제출을 거부하는 대학병원들에 많은 안타까움을 느꼈다"면서 "미국에서 1986년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 당시 존슨앤드존슨이 막대한 액수를 들여 타이레놀을 모두 회수했던 일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사건은 결국 제조공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병자가 외부에서 독극물을 주입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존슨앤드존슨의 대처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노 회장은 이어 "환자 안전법 제정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법이 잘못 설계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면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완벽에 가깝도록 만들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환자 안전법 제정을 위한 1만명의 청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오제세 위원장에게 전달됐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정종현 군 사고를 계기로 일명 종현이 법인 환자 안전법 제정을 위한 1만명 청원 운동을 지난해 8월 18일부터 벌여 왔다. 종현 군의 어머니 김영희 씨가 첫 번째 청원에 참여했으며, 지난 7일 오후 9시에 1만 번째 청원이 이뤄졌다.

    박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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