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헬스는 서비스를 왜 중단했을까?
<"가필드의 헬스 InsighT" 칼럼 3번째>
요즘 사람들이 1일1식(1日1食)을 입에 올릴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고(故) 곽연식 성균관대 의료정보학과 교수다. 곽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 IT 가 뿌리내리는 것을 앞당기기 위해서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연구와 교육에 매달렸다. 많은 후학들이 존경하는 ‘대한민국 의료IT의 선지자’이다.
필자는 2005년 경북대에 재직 중이던 곽 교수를 초청하여 전자건강기록(EHR)에 대한 세미나를 가졌다. 곽 교수는 이 자리에서 EHR을 ⑴의료기관 보관용 전자건강기록(Institutional EHR), ⑵공유용 전자건강기록(Sharable EHR), ⑶공중보건용 전자건강기록(Public Health EHR), (4)개인용 전자건강기록 (Personal EHR)으로 분류했다.
수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성과는 어떠할까? 각각을 EMR, sEHR, pubHR, PHR로 다시 이름 짓고 이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우선 EMR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앞선 분야로 볼 수 있다. 병원의 수익과 직결되는 보험청구 중심으로 의무기록 소프트웨어가 구성돼 있어 진정한 의무기록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수많은 병의원이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EMR은 체계적인 병원 업무 처리와 의무기록의 디지털화라는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충족하고 있어 미국 오바마 정부가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EMR 도입 인센티브 제도의 1단계는 뛰어넘는 수준이다. 최근 일부 EMR 소프트웨어는 스마트디바이스를 활용하여 펜으로 기록을 남기거나 성형수술시 시술전후를 마우스클릭으로 예상하여 환자에게 보여주는 등 종이차트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이르렀고, 클라우드 기반으로 인프라를 변경을 고려하는 시점까지 와있다.
둘째, sEHR은 지난번 칼럼의 유헬스 시스템 구성도에서 보았듯, 기본적으로는 의료기관끼리 의무기록을 CD로 복사할 필요 없이 전자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골격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A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B병원으로 옮겼을 때 진료 기록을 CD에 복사할 필요가 없어진다. B병원 의사가 환자 이름과 암호 등을 입력하면 A병원의 자료를 볼 수가 있다.
진료기록을 하나의 서버에 모으는지, 권역별 서버에 모으는지, 아니면 필요시점에 보내주는 지로 한참 논쟁을 벌였지만, 후자의 방식이 특히 보안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를 가장 선도적으로 구현한 사례가 분당서울대병원(연구책임자 하규섭교수, 현 국립서울병원장)이 지역의원과 펼친 ‘진료정보교류 시범사업’이다.
셋째, pubHR의 대표적 성공사례는 2000년부터 단계적으로 구축한 ‘예방접종통합관리 시스템’일 것이다. 보건당국은 국민에게 언제 예방백신을 맞아야 하는지 알려주고 언제 맞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여기에다 백신수급 상황까지 모니터할 수 있으며 감염병이 어느 지역에서 집중 발생할 때 신속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PHR은 요즘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것이다. 소비자 중심의 헬스2.0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관리 사업을 펼치려는 대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에서도 ‘My Health Bank’라는 PHR 유사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PHR이 실타래처럼 얽힌 의료문제를 풀어주고 황금알을 가져다준다는 지나친 낙관은 경계해야 한다. PHR 플랫폼으로 각광받았던,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의 헬스스페이스(HealthSpace)와 미국의 구글 헬스는 지난해 서비스를 중지해서 의료IT 연구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헬스스페이스의 실패는 사용자가 계정을 만들기 어렵고 이용하기에도 불편한 것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구글 헬스는 데이터 수집에는 성공했지만 활용 면에서 실패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글에 소비자 데이터의 60%를 공급했던 뉴욕소재 Noom사(아래 회사 홈페이지 캡처)의 정세주 대표는 “소비자로부터 생성된 수많은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서 소비자에게 가치를 주는 일을 의료인이 해야 하는데 거부감이 너무 많았다”면서 “구글은 보수적 의료집단의 이해를 구하고 수많은 의료규제를 뚫으며 사업을 추진하기에 투자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라고 의견을 전해왔다.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공단과 민간보험의 중간정도가 되는 ‘건강관리기구(HMO)’ 카이저 퍼머넌트나 대형 기업들의 필요성에 의해서 만든 PHR 운영 기업 도시아, 건강의료 포털 웹MD와 레볼루션헬스 등이 오히려 차근차근 PHR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모두 의료공급자와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시장의 한계가 무엇인지 구글보다 더 잘 알고 있는 회사로 보인다.
국민 건강을 위해 PHR 사업을 추진하려고 한다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PHR은 의료시스템의 주체인 의료인과 소비자들의 요구와 이익을 양분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사용하지 않은 플랫폼과 이득이 없는 서비스는 가차 없이 중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