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이야기 24 <어머니와 아들 2-간암>
초로에 접어 든 어머니는 오른쪽 윗배가 늘 불편하였다. 이전과는 달리 쉽게 증상이 가라앉지를 않고 갈비뼈 아래로 뭔가 묵직하게 만져지는 것도 같았다. 가까운 의원에 갔더니 초음파 검사를 권한다. 초음파 결과 간 경변이 꽤 진행되어 간에 결절들이 많이 생겼노라고 원인을 찾기 위해 추가 검사를 하자고 한다. 몇 가지 피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오래전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으며 이를 적절히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여 결국 만성 간염을 거쳐서 간 경변으로까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 경변은 관리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한다.
덜컥 겁이 난 어머니는 지켜보자는 의사의 권유를 뒤로 하고 큰 병원을 찾았다. 영상 촬영을 비롯한 정밀 검사가 시행되었다. 진행된 간암이라고 한다. 암 덩어리가 크기도 하지만 간의 주요 혈관 중 하나인 문맥까지 이미 침범한 상태라서 수술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일주일 전 방문했던 다른 병원에서는 간경변증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 짧은 시간에 암으로, 더구나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진행할 수 있단 말인가? 담당의사는 가족 관계까지 물으면서, 가능하면 자녀들도 함께 검사받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분노와 함께 불신의 그림자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간암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주요 원인은 간염 바이러스의 감염이다. B, C형이 원인 바이러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단연 B형 간염바이러스 감염이 간암의 주원인이다. 음식물을 통하여 전염되는 A형 간염 바이러스와는 달리 B형은 혈액 등 주로 체액을 통하여 감염된다. 우리나라 성인의 B형 바이러스 감염은 거의 대부분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머니로부터 비롯된다. 임신 말기에서 출생하는 과정 사이에 어머니의 혈액을 통하여 감염된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만성 B형 간염, 간경변증, 간암은 가족 한사람이 환자로 진단되면서 줄줄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바이러스로 인한 간경변증, 간암을 처음 진단받게 되는 환자에게 가족도 검사하시라고 하는 것은 이런 배경이 숨어 있다. 이제는 국가 정책적으로 B형 간염 백신 주사를 유아기 때에 시행하므로 이러한 슬픈 일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간암은 영상 촬영에서 종종 주변 간과 흡사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초음파 촬영은 방사선 피폭이 없는 안전한 검사라서 장점이 크지만 이같은 경우 놓치기 쉽고 특히 매우 주관적인 검사여서 사진 결과는 검사자 본인이외 제3자가 판독하기가 쉽지 않다. 컴퓨터 단층촬영도 조영제를 주입한 후 타이밍을 잘 잡아서 촬영하고 또 경험이 풍부한 영상의학 전문의의 판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장 정확한 영상 검사는 자기공명영상 검사(일명 MRI라고 한다)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고비용 검사라서 컴퓨터 단층촬영 등을 먼저 하고 나서도 애매한 경우에 하게 되고 영상 검사의 촬영 횟수나 목적에 대해서 보험적용을 까다롭게 하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검사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초음파나 컴퓨터 단층촬영을 먼저 하고 여기서 분명한 진단이 나오면 모르되 애매하면 추가로 자기공명영상 검사까지 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검사에 쓰이는 의료비용이 늘게 된다. 비용을 염려해서 일차적인 검사만 하고 추가 검사 없이 두고 보면 질병의 진행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모든 사람을 정밀 검사까지 한다면 정확한 진단율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국민 보건 측면에서 보면 보건 비용 지출이 과다하게 된다. 우리나라 같이 전국민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대부분의 검사가 보험에 적용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보험 재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의료 정책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같이 온 아들도 B형 간염 바이러스 간염에, 이미 간암으로 진행된 상태였다. 삼십대 중반에 인물도 좋고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아 장래가 촉망받는, 어머니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아들! 아들의 병은 어머니보다 더 진행되어 있었다. 수년전부터 만성적인 피곤함을 느껴왔지만 업무상 자주 밤샘해야 하는 탓에 그러려니 하고 무시했던 것이 병을 키운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무너지는 순간 아들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으로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허물어지는 듯한 약한 모습은 잠시였다. 아들과 함께 항암 약물-방사선 복합치료의 과정을 열심히 감당하였다.
간암이 진행되어 주요 혈관을 침범하게 되면 예상되는 경과가 매우 나쁘다. 생존 기간이 평균적으로 4~6개월정도에 불과하다. 간암은 기존의 항암약물치료 효과가 미흡하여, 국제적으로도 간암 전문가들의 치료 권고안에 따르면 1차적으로 분자표적치료제를 쓰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고안이 무색하리만큼 성과는 매우 초라하다. 생존기간 고작 1개월 정도 연장되는 수준이다. 부작용도 꽤 있는 치료인데 고비용에다가 성과가 이 정도라니 의사들도 처방은 하지만 내심 큰 기대는 하지 못한다.
국내 간암 전문팀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해서 적용하고 있는 항암약물-방사선 복합치료는 이러한 절망적 상황가운데 탄생하였다. 적용 대상은 암의 확산이 오로지 간에만 국한되어 있어서 치료 범위도 간 만을 표함하는 경우이다. 하복부 피부를 통하여 가느다란 도관을 소동맥으로 삽입하고 이를 대동맥을 경유하여 간동맥까지 진입시킨다. 도관을 통하여 투여되는 항암제는 간에만 집중 투여되고 배설되므로 간에는 고농도로 머물되 타 장기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항암제는 일시에 주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결된 주입 장치를 통해 24시간 연속적으로 투여되는데 이는 독성을 줄이고 효과를 높이는데 중요한 대목이다. 여기에 종양 부위에만 국한하여 방사선 치료를 한다. 그러면 항암제-방사선이 상호 작용하면서 암치료 효과를 상승시킨다.
이러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시작한 치료가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다. 기존에 4~6개월로 알려져 있던 생존 기간이 2배가 넘는 13개월까지 연장되는 결과를 보인 것이다. 특히 일부 환자에서는 수술로 제거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종양의 크기가 줄어들고 암수치도 거의 정상으로 떨어진다. 간이라는 장기는 일부가 제거되거나 기능을 잃게 되면 나머지 부분이 증식하여 기능을 보충하는, 신체 유일한 장기인데 이로 인해 수술이 더욱 유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즉, 방사선 치료를 받은 부위의 종양이 줄어 들면서 방사선을 받지 않은 나머지 부분의 간이 보상적으로 증식을 보이는 것이다. 불을 훔친 죄로 매일 간을 새에게 쪼아 먹히는, 그러면서 새로이 커진 간이 다음 날 또 새에 쪼아 먹히는 징벌을 받았다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기억하는가.
어머니의 치료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종양의 크기가 줄고, 종양 수치도 정상 가깝게 줄어들었다. 제일 문제가 되던 혈관을 침범한 부분도 거의 눈에 띠게 줄어들자 간암 클리닉팀의 의사들은 진지한 의논을 시작하였다. 수술적 제거를 해볼 만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머니는 수술 전까지도 완치의 꿈을 주는 수술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자신에 뒤이어 치료를 받은 아들의 경우는 좋아지기는 했어도 수술로 제거를 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런 아들을 보며 살겠다고 먼저 수술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설득을 하였다. 한분이라도 병을 고쳐야 다른 사람 병구완을 할수 있지 않겠냐고, 어머니가 아들을 돌보셔야 하는데, 이것도 하늘의 뜻이 아니겠냐고.
어머니의 치료 결과는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했다. 아들의 경우에도 항암약물-방사선 복합치료 후에 종양 크기도 줄고 암수치도 감소하여서 초기 반응이 양호하였다. 그러나 종양이 혈관을 침범한 정도가 더 심하였던 아들은 수술적 제거를 고려할 대상은 되지 못하였다. 좋은 반응을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간의 다른 부위로 암 진행을 보이는 아들. 모자간 애타는 정을 나누기에는 치료로 인하여 연장된 1년도 짧았으리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