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빈혈’ 골수이식 조건 반만 맞아도 완치
서울아산병원 임호준(사진 좌) 교수팀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을 앓고 있던 최모(17) 군은 수혈을 하기 위해 학교보다 병원에 가는 날이 더 많았다. 디자이너가 꿈이었지만 포기를 할 뻔 했다. 그러나 2011년 서울아산병원에서 어머니로부터 반일치 골수이식을 받고 완치되어 지금은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골수기증자를 찾지 못해 수혈을 받으며 힘든 투병생활을 했던 중증 재생불량성빈혈 아이들이 가족의 골수를 이식받고 완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아산병원은 14일 소아종양혈액과 임호준·서종진·고경남 교수팀이 중중 재생불량성빈혈 치료를 위해 부모나 형제 등 가족으로부터 골수기증을 받은 ‘반(半)일치 조혈모세포 이식술’을 적용해 12명의 환자를 모두 완치시켰다고 밝혔다.
이번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12명의 환자들 중 대부분이 적절한 공여자를 찾지 못해 오랫동안 수혈을 받아 이식 성공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100% 모두 성공했다는 점이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에서 반일치 조혈모세포이식에 대한 보고가 간혹 있었으나 10명 이상의 환자에서 반일치 조혈모세포이식이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반일치 조혈모세포이식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식방법의 차별화에 있었다고. 기증자의 골수에서 그동안 이식과정 중 문제를 일으켰던 면역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한 후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이식함으로써 이식편대숙주병 등의 부작용을 줄이고 이식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다. 이식편대숙주병은 골수 공여자로부터 채취한 면역세포가 이식된 후 환자의 몸을 공격하는 질병이다.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은 혈액을 만드는 골수 안의 조혈모세포가 부족해 혈액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난치성 혈액질병으로 조혈모세포이식을 받는 것이 유일한 완치법이다. 그러나 조직적합항원이 일치하는 형제로부터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은 환자가 10~20% 정도. 가족 중 완전 일치자가 없을 때는 타인과 조직적 항원이 일치해야 하는데 일치할 확률은 2만 명 당 1명 정도로 희박하다.
임호준 교수는 “적합한 기증자가 없어 조혈모세포이식의 기회조차 없었던 중증 재생불량성빈혈 환자들도 가족들을 통해 지체 없이 조혈모세포 이식의 기회를 갖게 된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성공률 100%라는 기록을 통해 더 많은 환자들에게 이식의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결과를 담은 논문은 ‘미국골수이식학회지(Biology of Blood and Marrow Transplantation)’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