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B형 많아 일본보다 열등? 해괴한 일제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일제가 한국인의 혈액형 분류에 집착했다는 연구결과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정준영 교수는 대한의사학회지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일제가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1920~1930년대 조선인을 대상으로 ABO식 혈액형 분류 연구에 몰두했다고 밝혔다.
1922년 7월 ‘동경의사신지’에 발표된 당시 연구는 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교실의 기리하라 교수의 주도로 이뤄졌으며 조사 대상은 조선총독부 의원의 외래환자와 병원직원, 경성감옥 수감자 등 조선 내 일본인 502명과 조선인 1167명이었다.
이 연구는 독일 학자 힐슈펠트의 1919년 ‘인종별 혈액의 혈청학적 차이’라는 논문에 근거해 “조선은 일본보다 B형이 더 많아 열등하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내놓았다.
힐슈펠트는 진화한 민족일수록 A형보다 B형이 많다면서 ‘인종계수’라는 수치를 만들어 유태인과 동양인에게 많은 B형을 열등화하는 작업을 시도, 결국 나치의 유태인 학살의 근거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의 인종계수에 따르면 영국인(4.5), 프랑스인(3.2), 이탈리아인(2.8), 독일인(2.8) 순으로 높았고 유색인종과 흑인(0.8), 베트남인(0.5), 인도인(0.5) 등은 낮았다.
힐슈펠트는 인종계수가 2.0 이상을 ‘유럽형’, 1.3 미만은 ‘아시아-아프리카형’으로 분류했고 터키인(1.8), 아라비아인(1.5), 러시아인(1.3), 유태인(1.3) 등 2.0~1.3대는 ‘중간형’으로 분류했다.
기리하라 교수팀은 연구결과를 힐슈펠트의 인종계수와 연결해 조선에 살고있는 일본인의 인종계수는 1.78로 ‘중간형’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조선인은 전남(1.41)만 중간형이었을 뿐 평북(0.83), 경기(1.00), 충북(1.08) 등은 1.3미만으로 아시아-아프리카형으로 분류됐다는 논지를 펼쳤다.
기리하라 교수는 “인종계수가 중간형(1.41)로 나온 조선 남부(전남)의 사례로 볼 때 일본과 조선 두 민족 사이에 역사적, 언어적 유사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우리 민족을 지역 별로 해체하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림대 정준영 교수는 이에 대해 “조선인은 일본인에 비해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주장하면서 조선 남부 지역과 일본의 유사성을 강조하려 했다는 점에서 당시 일제 식민사관과 궤를 같이 한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에 대한 혈액형 조사는 1926년 경성제대 의학부가 설립된 이후에도 이어져 1934년까지 2만4929명을 대상으로 북부(0.99), 중부(1.05), 남부(1.25)로 나눠 실시한 조사에서도 평균 인종계수는 1.07로 기하라 교수의 ‘아시아-아프리카형’과 똑같은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경성제대 의학부는 1934년부터 5년 동안 만주, 내몽고 지역의 동북아시아 민족에 대한 혈액형 조사도 실시, 조선북부와 만주, 몽고인들이 유사한‘인종적 열등성’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정준영 교수는 “일제가 조선을 전체보다 북부와 남부로 지역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한 것은 조선이라는 하나의 민족범주를 해체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혈액형 분류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데 필요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정준영 교수의 이번 연구는 일제가 의료진을 식민지 사관의 첨병으로 내세우고 혈액형까지 식민지 지배의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