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흔적 없이 치료한다
제인씨는 명문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었다. 부모는 그녀가 태어났을 때부터 딸이 국제적인 인물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이름도 영문으로 표기할 때 전혀 어색하지 않게 지었고, 어려서부터 영어 회화 공부를 별도로 시킬 만큼 열심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다. 그러나 직장은 당연히, 대학과는 다른 곳이었다. 그저 월급받기 위한 목적으로 다닐 수도 있었지만, 이런 일하며 계속 지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었고 게다가 부모의 기대까지 한 몫 하여, 결국 3년 만에 사표를 내고 미국에 유학을 갔다. 명문 대학은 아니었지만 교수진 중에 노벨상 수상자도 한분 계시고, 많지는 않지만 장학금 혜택도 있어서 합격통지서를 받고는 자신을 꽤나 자랑스럽게 생각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3년 정도면 학위를 따고 돌아가리라 싶었다. 유학생들 모임도 마다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일정하지 않게 나왔고 그때 마다 다시 시작하는 식이다 보니 유학 생활은 5년을 훌쩍 넘겨서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가고 있었다. 연구는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어서 이대로만 하면 2년이 안되어 좋은 결과를 내고 학위를 취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전부터 그녀는 오른 쪽 가슴에 뭔가 잡히는 듯 불편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쪽 손을 쳐들면 당기는 듯 한 느낌도 들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볼까도 싶었지만 의사를 만나보는 비용만 해도 한국에서보다 몇 배가 훌쩍 넘었고, 잘 본다는 의사 진료를 예약하는 것도 한국에서처럼 쉽지 않았다. 사실 장학금이 있기는 하지만 학비와 생활비 등, 유학 생활의 비용은 전적으로 부모님께 의지하다 보니 의료 보험까지 들기까지는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직장 다닐 때는 그리 부담되지 않는 건강 보험료에, 일 년에 한 번씩 기본적인 신체 건강 검진까지 받았던 생각이 났다. 의료에 있어서는 한국이 환자에게 정말 좋은 곳이었구나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논문을 정리해 갈 무렵, 부모님이 방문하셨다. 이모 한분이 유방암으로 수술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지도교수에게 양해를 얻고 부모님과 함께 귀국하여 유방 검사를 받았다. 조직 검사 결과는 유방암이었다. 다행히 크기가 작고 전이가 없는 초기인 것으로 진단이 되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30대 여성에게 유방암 수술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유방암의 표준 치료법은 수술적으로 암 덩어리와 주변 조직을 제거하고 암이 퍼져갈 수 있는 경로에 있는 임파선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었다. 임파선이란 우리 몸 어디에나 있어서, 세균처럼 외부에서 들어오는 적에 대해 우리를 방어해 주는 역할을 한다. 암이 생긴 경우, 암세포가 처음 생긴 장소에서 이동하여 주변 부위 및 전신으로 번져 갈 수가 있는데, 임파선을 통해 번져 가는 경우는 마치 차를 몰고 갈 때 도로를 주행해 가는 것처럼, 예측된 순서대로 이동한다. 처음엔 종양 주변의 임파선으로 이동하고 나서 그 다음 단계의 임파선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또 한가지 이동 방법은 암세포가 혈관으로 진입하여 혈관이 가는 곳은 어디나 전신적으로 이동하는 것인데, 종양 마다 선호하는 장기가 있어서 유방암같으면 뼈, 폐, 뇌 등이 해당이 된다.
물론 지금도 수술적으로 암을 제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넓은 부위를 수술로 제거하는 방식-이렇게 하면 유방을 잘라낸 쪽의 가슴은 갈비뼈 윤곽이 드러날 정도가 되고 같은 쪽의 팔이 심한 부종을 겪게 된다-과 조직검사 하는 정도의 최소 부위만 수술로 제거하고 연이어 방사선 치료를 하는 방식이 같은 결과라면?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이십여년전에 해답이 나왔다. 광범위한 수술을 받은 환자 그룹과 최소 수술에 방사선 치료를 시행받은 환자 그룹을 10년 이상 추적 검사한 연구이다. 결국 두 치료 방식은 같은 성적을 보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결과가 나왔어도 실제로 진료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많은 애로 사항이 있었다. 환자가 처음 찾아가는 곳은 외과(지금은 좀더 전문화 되어서 유방 외과가 맞다)인데, 외과 의사 입장에서는 진료의 범위가 축소된다는 것에 대하여 심하게 우려하였고 이로 인해 외과 수련을 받는 젊은 의사들이 유방 수술에 대한 훈련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이전 보다 더욱 외과적 절제 기술이 정교하며, 암의 성질, 진행 특성 등에 대해 보다 많은 지식을 갖춘 유능한 외과 의사가 요구된 것이다. 더구나 진행된 유방암인 경우는 여전히 수술적으로 제거해야 하는 범위가 넓어지게 되는데 이 때, 정교한 기술과 암에 대한 깊은 지식으로 훈련된 외과 의사가 더욱 좋은 치료 결과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초기 유방암에 대한 방사선 치료를 정착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였다. 미국에서도 대중 매체를 통한 홍보는 물론이고 일부 주에서는 주법을 제정하여 유방암 환자가 두 전문분야 의사-외과 의사와 방사선 종양학 의사-와의 상담을 마친 후에 치료법을 선택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보다 늦게 1990년 이후에 들어서야 방사선 치료가 서서히 적용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완전히 정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제인씨의 유방암은 초기 상태에서 발견이 되었기 때문에 조직 검사하는 정도로만 제거해도 되었다. 떼어 낸 종양은 종양의 성질(악성도)을 여러 가지 병리학적 검사를 통하여 평가하게 되는데 결과를 보니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그녀는 약 6주에 걸쳐서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치료는 걱정한 바와 달리 아무 부작용없이 잘 끝낼 수 있었다. 치료 부위의 피부가 붉어지고 가려운 증상이 일시적으로 있었지만 곧 회복이 되었다. 수술 후에는 작게 떼어냈다고는 해도 어쨌든 암조직을 떼어낸 유방이 다른 쪽과 차이가 나는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니 거의 구별하기 어려운 정도가 되었고 방사선 치료를 받은 부위의 피부도 자세히 눈을 들이 대고 보아야 식별할 정도로 색깔이 약간 더 어두운 정도였다.
그녀는 치료 때문에 쉬었던 논문작성을 다 완결하였고 드디어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녀를 흠모하던 유학생을 만나서 이젠 결혼을 기다리고 있다.